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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에 드리운 ‘빈익빈의 그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6. 2. 28. 15:02

예술계에 드리운 ‘빈익빈의 그늘
                                         이종호(무용평론가, 연합뉴스 편집국장)

’ 국민일보 10/19

남의 일이라고 쉽사리 '빈익빈 부익부'지, '빈'의 처지에서 보면 이처럼 무한대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말도 없다. '부'에서 보자면야 갈수록 상대적으로 즐겁겠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격차가 벌어지기만 하는 '빈'쪽에서는 그저 세상이 원망스러울 따름이기 때문이다.

    이 '빈익빈 부익부'가 예술계에도 적용된다 해서 새삼스러울 건 없다. 인간활동의 모든 분야에 엄존하는 현상인데, 예술계라고 예외일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하지만, 옛날엔 다 함께 가난했는데 어느 날 빈부차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면?

    예술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최근 들어 정부의 지원이 늘어나면서  역설적으로 심해지는 분위기다. 특히 작년부터 수백억원 규모의 로토 수익금이 문화계로  유입되면서부터 불균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역량이 우월한 개인이나 단체에 우선 배분하는 것이야 당연한 처사이지만, 어느 장르에는 건당 수십억원짜리 행사가 '주어졌'는가 하면 어느 장르는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어떤 축제는 10억원 이상의 비용을 썼다는데,  문화계  사람들조차 그런 행사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시행 초기라는 이유로 다들  너그럽게  지나갔지만 사실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올해는 각급 예술기관ㆍ단체에 인건비를 보조해준다고 해서 많은  민간단체들이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신청서를 제출했다. 1인당 월 60만원의 인건비를  지급해준다는 내용이다. 하찮은 액수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민간 예술단체들에게는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결과는 우울했다. 대부분 정부  산하기관이나 유관단체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우울한 일들은, 축제의 계절인 이 가을, 또 있다. 국고보조금을 비롯한 각종 공공기금의 지원을 받아 판을 벌이는 갖가지 문화행사를 보고 있노라면 이 정부가  툭하면 등록상표처럼 내세우는 '분배'라는 것을 과연 알고나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어디에 어떻게 예산을 써야 하는지를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건지 의아해진다.

    '돈이 안되는' 순수예술행사에 대한 홀대야 하루이틀 겪은 일이 아니니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같은 예술행사라 해도 관주도냐 민간주도냐에 따라 얼마나  극심한 '빈익빈 부익부'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정부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축제는 개별 예술과 예술가들을 일정한 방향성에 입각해 묶어내고 치장하고  의미부여함으로써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수단이며 그릇이다. 그러나 이  '축제라는 그릇 혹은 방식'에 대해 정부는 여전히 무관심하다. 입버릇처럼 아비뇽과 에든버러를 운위하면서도 국내 축제의 육성책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어보인다.

    돈이 모든 걸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중앙정부(문화관광부)의  순수예술행사 지원 예산을 보면 37건 정도에 50억원이 조금 넘는다. 한 건당 1억5천만원 정도이다. 무용 분야의 경우 올해 창작지원금을 1억원이나 받은 작품이 두 편이나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이건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작품 한 편에 1억원인데, 수십편의 작품과 사람을 묶어내는 축제에 불과 몇 억이라니.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관주도 축제와 민간주도 축제에 대한 지원금의  엄청난 차이다. 물론 한 공무원의 말씀대로 "누가 억지로 시켰습니까? 자기가 좋아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민간행사의 어려움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은 예의에  어긋날 터이다. 하지만 뜻있는 개인 혹은 소수가 어렵사리 만들고 이끌어 일정한 수준에 올려놓은 행사들(그런 행사들이 우리에게도 제법 있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정부와  사회가 마땅히 관심 가져야 한다. 더구나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처럼 고생하며  키워낸 축제들의 상당수가 오늘날 내용이나 인지도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이따금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훌륭한 명분을  내세워 책임을 피하곤 한다. 일리있는 말이지만, 현장과 현실을 모르는 데서  오는  핑계인 경우도 자주 있다. 깊이 알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로토기금의 배분에서건, 인건비 보조에서건, 축제 지원에서건, 정부는 이  근거없이 부당한, 그리고 좀체로 개선되지 않는 '빈익빈 부익부'의 치유를 위해  제대로 나서라. 그것이 이 정부가 늘 말하고 싶어하는 '분배의 정의'인 동시에 우리 문화예술을 실질적으로 발전시키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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