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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25] 시금치도 아는 부끄러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4. 11. 14:34

[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25] 시금치도 아는 부끄러움

입력 2024.12.11. 23:50업데이트 2024.12.12. 02:45
 
 
 

뿌리가 빨개

부끄러움이 많은

시금치

ね あか はず そう

根が赤きこと恥かしきほうれん草

 

시금치도 부끄러움을 안다. 뿌리 쪽이 발갛게 물든 채소를 보고 하이쿠 시인 스즈키 다카오(鈴木鷹夫·1928~2013)는 노래했다. 특히 추운 겨울 눈보라에 맞서 한파를 이겨 내고 자라난 노지 시금치는 뿌리가 더욱 붉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낸 시금치가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더 잘 아는지도 모른다.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악행을 미워하는 마음. 맹자는 이것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시금치의 빨간 뿌리에는 피를 만드는 망간과 철분이 풍부하다. 부끄러움을 아는 일도 우리 몸의 미네랄이나 마찬가지다. 피를 돌게 한다. 피가 돌지 않으면 이미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모른 채 살아간다면 한 줌 따스함도 없는 악귀와 무엇이 다를까.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일이다.

박완서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나’는 세 번 결혼했다. 가난 속에서 어린 동생들을 위해 몸을 팔라고 다그치는 엄마가 두려워 결혼한 첫 남편은 부자였지만 ‘자기 외의 딴 사람의 삶에 대한 상상력이 철저하게 막힌’ 돈벌레였다. 지방 대학 강사인 두 번째 남편은 공부도 게으른 주제에 서울의 알아주는 대학에서 자기를 불러 주지 않는다고 툴툴대며 허구한 날 “남들은 처가 덕을 잘도 보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세 번째 지금 남편은 “우리도 한 밑천 잡아 잘살아보자”라며 이 사업 저 사업 뛰어다니고 굼뜬 ‘나’를 질책한다. ‘나’는 이도 저도 징그러운 와중에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일본어를 배우러 간 종로 대로에서 누구도 아닌 자기 안의 부끄러움이 소멸 직전임을 깨닫는다. 학원 간판 밀림 속 그 어디에도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곳’이 없다.

 

다자이 오사무는 ‘세속의 천사’라는 단편소설에 이렇게 썼다. ‘치욕스러운 기억을 고백하는 일에 조금이나마 자긍심을 가지고 싶어서 글을 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패전 후 일본에 자신이 저지른 부끄러운 짓을 하나하나 끄집어낸 ‘인간 실격’을 던져 놓고 강물로 뛰어든 작가답다. 누구나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면 숨기고 싶기 마련이다. 자기는 고고한 척 남의 부끄러움을 까발리는 데 혈안이 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심리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인간이기를,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올해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았는가. 나의 부끄러움을 알고 있는가. 세밑이 다가오는 이 시기 화두가 아닐 수 없다. 내일은 시금치라도 한 단 사서 부끄러움의 미네랄을 보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