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
나는 말이다
심장에 광활한 초원을 품고 태어났다
그러나 나는 감옥이나 다름없는 막사와
트랙을 오가는 경주마가 되었다
신호가 울리면 눈을 가린 채로
초원을 달리는 환상을 꿈꾸며 트랙을 달렸다
나의 주인은 상금을 타서 좋아하고
나는 미친 듯이 달릴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기계가 아닌 나는
뼈가 닳고 근육이 해져서 달리기를 그만두었다
승마 초보자들을 태우고 터벅터벅 조심조심
걷는 일을 했다
관광 마차를 끄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결국은 안락사를 당하거나
도축되어 고기로 팔려나갔다
나도 폐차장과 다름없는 곳으로 끌려가
굶어 죽었다
오래전 내 주인이 지어준 이름
나는 질주였다
계간 『시와 시간들』2025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