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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남긴 것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2. 31. 15:12

 

한강이 남긴 것들

나호열 (시인)

 

 

2024년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대한민국의 소설가 한강을 선정했다. 우리나라 최초, 아시아 여성 작가로 최초, 거기다가 50대 초반의 젊은 작가가 영예를 안았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환호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2023년 통계에 따르면 연간 6만 2천 여종의 책이 출간되었는데 연간 독서량은 7권에 불과하며, 만 부가 팔리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했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이에 부응하여 그동안 발간되었던 한강의 소설집들을 다시 읽어보겠다고 서점으로 달려가는 통에 순식간에 100만부를 돌파했다는 뉴스가 잇달아 들려왔다. 나도 서가 모퉁이에서 그 책을 찾아냈지만『채식주의자』(2007)를 읽다가 중간 부분쯤에서 책을 덮어버린 기억을 갖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소설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에 나의 독해력이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문학이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허구, 즉 개연성蓋然性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6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가부장적이고 형해만 남은 유교적 가치관은 유연하게 소설의 의미를 새기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강열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한 노벨상 위원회의 수상 발표문을 읽어도 여전히 소설의 메시지가 나의 의식에 안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어째든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의 폭력성과 억압에 대한 각성을 요구하는 한강의 소설들은 이른바 세계를 휩쓸고 있는 ‘k- Culture’의 영향력과는 별개의 길을 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우연히 걸머쥔 행운이 아님은 분명하다. 소수어인 한글 번역의 중요성, 작품의 우수성과 상품성을 알리는 매지니먼트의 활성화가 이뤄낸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처음부터 순탄하게 영어권에서『채식주의자』출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으며, 재번역을 통해서 비로서 작품의 우수함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한 데버라 스미스는 한강의 소설은 비단 영어뿐만 아니라 노르웨이어, 스페인어, 네델란드어 등으로 번역되었다고 하는데 영어의 중역重譯이 아니라 한국어판을 각 나라 언어로 번역했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에서도 작품의 성과가 단숨에 이루어지는 이 아님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한강 소설이 지나치게 인간의 비극적 상황에 몰두해 있으며 우리 근현대사를 해석하는데 있어 사실과는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논의들이 노벨문학상 수상의 걸림돌이 되지 않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겪었던 시대적 아픔이 세계적인 공감을 이끌어내고. 보편적 인식을 탈각하는 위대한 작품은 시대를 앞서 가거나 초월한다. 세간의 평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이지 않으나 앞으로 실현될 세계를 걸어가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이 글을 쓰면서 한강의 노벨문학상을 둘러싼 여러 기사들을 둘러보았다. 그 중에서 이영준 문학평론가가 한강 소설의 한 특징인 ‘시적 산문’에 대해 분석한 글이 인상에 남는다. 그는 우리나라가 시의 공화국이라고 하면서 세계에서 시가 활성화된 나라가 거의 없으며 시집 시리즈가 나오고, 시 고료를 주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평가한다. 즉, 우리 시가 지니고 있는 화자와 독자와의 공감의 정서가 시를 읽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한강은 소설에 입문하기 전에 1993년 시로 등단하였으며『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시집을 내기도 하였다.

우리 시가 지니고 있는 서사의 공감력을 수련한 작가가 시적 감성을 소설에 깊이 스며들어 하였음을 노벨문학상 위원회는 높이 평가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작가에 대한 호불호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각자의 취향이나 독서 능력에 따라 작품의 평가 또한 달라질 수도 있다. 한강의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은 앞으로 한국문학이 한층 더 비상할 수 있는 첫 출발점이 될 것이며, 독서를 등한시하는 사람들에게 독서를 통한 간접 체험의 즐거움을 촉발시킬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계간 다시올 2024 겨울호 권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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