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舊石器의 사내
하루 동안 이 만년을 다녀왔다
선사先史로 넘어가는 차령車嶺에서 잠시 주춤거렸지만
돌로 도끼를 만드는 둔탁한 깨짐의 소리가
오수를 깨우는 강변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한 사내를 만났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강을 따라
목책으로 둘러싸인 움집 속
몇 겁의 옷을 걸쳐 입은 그의 손엔
날카로운 청동 칼이 번득이고
여전히 말이 통하지 않은 채
삼천년이 지나갔다
내가 노을 앞에서 도시의 불빛을 되내일 때
그 사내는 고인돌 속으로 들어가
뼈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 갔다
천 오백년 전 망한 나라의 나들목을 지나
하루의 풍진을 씻어내는 거울 앞에
수척해진 채 돌도끼를 만들 줄 모르는
구석기의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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