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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가고 싶다(신문 스크랩)

부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9. 19. 13:02

 

 

그곳이 가고 싶다(신문 스크랩)부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9. 5. 15

미소·환대 넘치는 사람들에 반했다… ‘행복의 나라’서 즐기는 무공해 여행

[박경일기자의 여행]

  • 문화일보
  • 입력 2024-09-05 09:10
  • 업데이트 2024-09-05 09:15

부탄의 수도 팀푸에서 과거 수도였던 푸나카로 가는 협곡에서 만난 다랑논. 비탈진 산골짜기에 계단식으로 만든 좁고 작은 논이 층을 셀 수 없을 정도다. 국토 대부분이 산지라 이런 척박한 지형에 폭이 겨우 두어 뼘이 될까 말까 한 논배미를 층층이 만들었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발길 닿는 곳마다… 선의 가득한 부탄 <上>

王이 스스로 권력에서 내려오고
신호등 없이 교통흐름 평화로워
첫눈 오는날 임시공휴일로 지정
전 세계 유일한 ‘탄소 음성국가’

눈 마주치면 누구나 미소 짓고
택시타도 바가지요금 걱정없어

경제인프라 부족한 빈국이지만
국민 93.6% “행복하다” 답해
돈 대신 행복을 국정지표 삼아
모든 혜안 중심엔 불교 가르침

광장에선 푼돈 걸고 도박·뽑기
일상속 소소한 즐거움 찾아내

팀푸·파로(부탄)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부탄은 ‘샹그릴라’일까

“뭐, 여기가 ‘행복의 나라’라고?” 부탄의 수도 팀푸에 도착한 날 오후, 도시 중심인 시계탑광장 주변에서 마주친 풍경이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1부터 12까지 숫자를 써놓은 판자를 올려놓은 테이블 주위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번호마다 돈을 걸었다. 꼬깃꼬깃 접은 지폐가 번호판 위에 수북하게 쌓였다.

손님 중 한 사람이 무작위로 숫자를 가득 써넣은 다트판에 핀을 던지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적중한 숫자에 돈을 걸었다면 몇 배로 돌려받는다. 다트로 하는 ‘돈 놓고 돈 먹기’ 도박이다.

이런 다트 도박판이 광장 주위를 빙 둘러쌌다. 다른 종류도 있었다. 던진 고리가 지폐 모양의 나무 표식 안에 들어가면 돈을 따는 도박도 있었고, 테니스공 3개를 던져 쌓아놓은 깡통을 다 무너뜨리면 돈을 따는 도박도 있었다.

다트 도박판에 낀 손님 중에는 붉은 가사를 입은 ‘스님’ 두 명도 있었다. 외국인이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걸 눈치챈 스님은, 민망했던지 황급하게 가사로 얼굴을 가리고 다트 핀을 던졌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광장 옆 골목의 복권판매소 앞에서는 또, 젊은이 대여섯 명이 테이블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즉석복권을 긁고 있었다. 당첨되지 않은 긁은 복권이 한쪽에 수북했다.

전설 속의 이상향인 ‘샹그릴라’로 자주 일컬어지는 ‘행복의 나라’ 부탄에 웬 도박과 복권. ‘행복한 국민이 사는 나라’에 대한 부푼 기대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어쩐지 허탈해져서 시계탑광장 층계참에 앉아 가만히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문득 ‘어디서 많이 봤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봤더라…. 통에 든 쪽지를 뽑으면 번호에 걸린 냄비나 그릇을 경품으로 주는 노점에서, 손으로 돌리는 허름한 회전목마를 탄 아이의 흥분으로 발갛게 물든 볼에서 떠올렸던 건 한 세대 전쯤 우리 시골 장날 모습이었다.

시골 마을 장날이나 이런저런 마을 행사 때면, 으레 양은냄비나 플라스틱 바가지 따위를 경품으로 건 노래자랑이나 경품 뽑기 등이 벌어졌다. 그걸 어디 요행이나 바라는 ‘사행(射倖)’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되돌아보면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 이런 행사는 저자극의 순정한 즐거움이었다.

부탄의 수도 팀푸의 중심인 시계탑광장에서 벌어진 다트 노름판. 다트를 던져서 돈을 건 숫자에 맞으면 몇 배로 돌려받는다.



나중에 안 것인데, 부탄에서는 게임에 거는 판돈이 우리 돈 1만6000원을 넘길 수 없고, 즉석복권 최고 당첨금액도 ‘고작’ 500만 원이었다. 세간살이나 조악한 장난감 따위를 걸고 하는 경품 뽑기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도박이라고 하기에는, 욕망의 크기가 작아도 너무 작아 보였다.

팀푸의 시계탑광장 풍경은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줬다. 부탄 사람들이 푼돈을 걸고 벌이는 도박과 놀이로 인해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산다’는 잘 믿기지 않는 부탄 사람들의 실존적 삶이 만져지고 체감되기 시작했다. 숫자판 위의 판돈과 낙첨된 즉석복권은, 그저 우화나 전설처럼 전해지는 부탄의 ‘행복’은 국민이 천성적으로 수도승 같다거나, 국민의 선의나 관습 덕에 저절로 이뤄진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 가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다.

부탄 사람들의 행복은 일상의 수많은 모순과 고민 속에서 내린 선택과 정책에 힘입은 결과물과 다름 없다. 부탄 사람들의 행복은 거저 주어진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동의하고 실천하면서 찾아낸 것이었다.

#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온 왕

부자끼리도 나눌 수 없다는 게 권력이다. 나누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건 그런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는 일이다. 하지만 부탄에서만큼은 통용되지 않는 얘기다.

부탄이 통일 왕국이 된 건 1907년이다. 왕조 국가인 부탄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왕추크’ 왕조가 왕위를 이어오고 있다. 지금 왕은 부탄 왕조의 5대 왕이다. 왕의 자식들이 많았는데도, 부탄에서는 왕위 계승과 관련해 단 한 번도 갈등이 빚어진 적이 없다. 거기까지는 뭐, 그럴 수 있겠다.

부탄의 운명을 바꾼 가장 극적인 왕위 계승은, 1972년 4대 왕이 왕위를 물려받은 것이었다. 도로를 닦고 부탄을 외부 세계에 개방했으며, 내각을 출범시키는 등 부탄 근대화의 초석을 놓았던 3대 왕이 43세의 나이로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4대 왕이 17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영국과 인도에서 공부한 3대 왕은 재임 내내 시대를 앞선 정책을 펼쳤다. 무리한 개발 대신 자연환경 보전을 택했으며 발전의 속도를 늦추고, 전통문화를 지켰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4대 왕이 스스로 절대군주제 대신 왕권과 민주주의가 양립하는 입헌군주제로 부탄의 정치체제 전환을 선언한 것이었다. 입헌군주제로 전환한다는 건 왕이 헌법을 수호하고 준수할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는, 의회로부터 탄핵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구상을 발표하자 왕을 신으로 받아들였던 부탄 국민이 맹렬하게 반대했다. 반대하는 국민을, 왕은 이렇게 설득했다. “부탄 왕들이 앞으로 모두 ‘좋은 왕’이 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 좋은 왕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왕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왕의 결단이 나라를 한순간에 붕괴시킬지도 모른다. 국가는 왕보다 중요하다.”

부탄에서 왕은 65세 정년이 되면 반드시 왕위를 후계자에게 물려줘야 한다. 그러나 4대 왕은 자신이 왕의 자리에 있는 게 민주화와 분권화의 장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2006년 51세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5대 왕이 아버지 뜻을 받들어서 2008년 민주 헌법을 선포하고 역사상 첫 총선을 실시해 아버지의 바람대로 입헌군주국으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이로써 부탄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쟁이나 혁명, 혹은 외압 없이 국왕 스스로가 절대군주국에서 입헌군주국으로 전환한 나라가 됐다.

국왕의 행보가 특히 돋보였던 건,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이웃 네팔이 국민들의 격렬한 시위와 희생 끝에 왕정이 종식됐기 때문이었다. 4대 왕의 업적은 뒤에서 더 얘기하겠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부탄의 4대 왕. 그의 이름은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다.

악령이 불법에 감화된다는 내용을 담은 부탄의 전통 가면 북춤.



# ‘행복지수 세계 1위’는 가짜 뉴스

왕위 이양보다 더 큰, 부탄 4대 왕의 업적은 부탄을 ‘행복의 나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영국과 인도에서 공부한 4대 왕은 재임 4년째인 1976년, 그러니까 21살의 나이에 국내총생산(GDP)이 아닌 ‘국민총행복(GNH)’을 국정 지표로 들고 나왔다. 부탄의 발전 정도를 돈이 아닌 국민 행복감으로 측정하고, 그걸 국가의 도달 목표로 삼는다는 혁신적 제안이었다.

지금이야 행복의 중요성을 누구나 인정하지만, 경제적 성취로 국가를 평가하던 당시 국제 상식으로는 ‘국민총행복’이란 너무 파격적인 이야기였다. 그 무렵 한국은 1인당 GDP가 부탄과 큰 차이 없었던 빈국이었다. 경제적 성취에 모든 걸 걸었던 한국의 국민소득은 지금, 부탄의 10배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긴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그들보다 더 행복해졌을까.

이쯤에서 부탄에 대해 잘못 알려진 이야기 하나. 흔히 부탄을 ‘행복지수 세계 1위 국가’로 알고 있다. 좀처럼 바로잡히지 않는 ‘가짜 뉴스’다. 부탄은 행복지수 1위를 기록한 적이 없다.

가짜뉴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한 계기가 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세 달 전쯤인 2016년 7월, 당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탄을 방문했다. 수염까지 덥수룩하게 기른 문 전 대표의 부탄행은 경쟁과 성장 위주의 정부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차기 집권시 정책 방향을 드러내는 정치적 메시지로 읽혔다.

그때부터 여기저기서 부탄의 이른바 ‘국민총행복’에 대한 분석이 쏟아졌다. 부탄이 ‘행복지수 세계 1위’라는 근거 없는 얘기가 폭발적으로 확산한 건 그 무렵이다.

그게 근거 없다는 건 잠깐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서구에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행복감의 총합인 ‘국가 행복지수’를 산출한다면, 1인당 국민소득 등 경제적 조건이나 의료서비스 등의 경제적 인프라를 포함하지 않을 리 없다. 그렇다면 빈국인 부탄이 1등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닌가.

‘국가별 행복지수’로 불리는 통계는 두 가지가 있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와 영국 신경제재단에서 발표하는 ‘지구촌행복지수’다. 먼저 유엔 자문기구의 2023년 행복보고서의 행복지수 국가 순위를 보자. 여기서는 핀란드가 6년째 부동의 1위고, 한국은 47위 일본보다 열 단계 아래인 57위다. 싱가포르(25위)나 칠레(35위)보다 낮다. 전체 137위까지의 순위 안에 부탄은 없다.

영국 신경제재단의 지구촌행복지수는 기대수명, 삶의 만족도와 함께 환경 훼손방지나 복원노력이 주요 평가지표다. 이 지표는 결과가 통념과 사뭇 다르다. 가장 최신 결과가 2021년의 것인데, 여기서는 그나마 부탄이, 우리보다 순위가 높은 50위다. 1위가 남태평양의 소국 바누아투라는 것도, 한국이 72위로 중국(51위)에도 뒤진다거나 한참 뒤에 미국(102위)이 있고, 룩셈부르크의 행복지수가 토고나 콩고보다 아래인 132위라는 것도 좀처럼 수긍할 수 없다.

마치 세트장 같은 구멍가게 풍경. 한 장면의 네 곳에다 각각 핀 조명을 비춘 연극무대 같다. 길 가다가 수시로 만나는 이런 장면이 오래전의 우리 시골 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 여전히 행복한 부탄 국민들

서구 기준의 행복지수 순위에서 하위권을 차지했다고 해서 부탄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라는 건 절대 아니다. 부탄은 ‘행복한 국민’이 사는 ‘행복한 나라’다. 그 증거가 있다. 지난 2005년 부탄이 인구 센서스를 진행하면서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란 주관적 행복감을 묻는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전체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답했다. ‘불행하다’고 답한 비율은 3%에 불과했다. 이 같은 사실이 둔갑해서 ‘행복지수 세계 1위’란 가짜 뉴스가 된 것이다.

가짜뉴스는 ‘우리끼리 그렇게 잘못 알고 마는’ 차원을 넘어, 부탄 사람까지 적잖이 당혹스럽게 한다. 부탄을 여행하는 한국 사람들은 부탄 사람에게 집요하게 ‘행복하냐’고 묻는단다. 숫제 ‘네 나라가 행복감이 세계 1위인 걸 어디 한번 증명해보라’는 투라고 했다.

사실 ‘행복하지 않은 나라’에서 온 국민이, ‘행복한 나라’의 국민에게 비결을 묻는 거야 당연한 일. 그래서 부탄의 리옹포 남걀 도르지 산업통상부 장관을 수행한 관료에게 물었다. 그는 “우리는 ‘그런(세계 1위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한국인들은 안 믿는다”며 “부탄 국민이 행복한 건 맞지만, 그게 세계에서 몇 등인지 우리는 상관하지 않는다”며 웃었다.

부탄 국민이 누리는 행복감은 아직도 굳건한 편이다. 1999년 TV와 인터넷이 보급되고, 2003년부터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 외부 세계와의 소통이 잦아져서 행복감이 뚝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지난 2022년 부탄 정부가 실시한 국민 행복지수 조사결과, 국민의 9.5%는 ‘깊이(deeply) 행복’하며, 38.6%는 ‘광범위하게(extensive) 행복’하고, 45.5%는 ‘약간(narrowly)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전체 국민의 93.6%가 행복하다는 얘기다.

부탄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건 관광객의 눈으로도 확연하게 보인다. 노숙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구걸하는 이들도 물론 없으며, 관광지마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행상도 없다. 저개발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차량 경음기의 소음과 질주하는 차량과 오토바이가 큰 스트레스인데, 여기는 길을 건널라치면 운전자가 멀찌감치 차를 세우고 길을 건너가라 손짓한다. 택시를 타도 기사와 신경전을 하거나 바가지요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눈이 마주치면 누구나 웃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친절했다. 시장 근처에서 부탄의 만두인 ‘모모’를 파는 식당을 물었는데, 한 행인이 척 앞장서더니 ‘부탄에서 가장 맛있는 모모를 파는 곳’이라며 식당까지 안내해줬다. 좀 이른 시간이었는데 행인은 주문처럼 ‘제발 문을 열었어라’를 외면서 앞서 걸었다. 거기서 맛본 치즈 모모 맛이 일품이었던 건 물론이었다.

부탄의 수도 팀푸에는 신호등이 없다. 전 세계에 ‘수도에 신호등이 없는’ 나라가 둘인데, 그중 하나다. 신호등 대신 시내 중심 딱 한 곳 교차로에서 교통경찰이 수신호로 차량을 소통시킨다. 경찰 퇴근 후에도 교차로는 양보운전으로 차량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다.



# 첫눈이 오면 공휴일이 되는 나라

부탄의 수도 팀푸는 전 세계에서 딱 두 개뿐인 ‘신호등 없는 수도(首都)’다. 신호등을 세우긴 했는데, 국민의 반대로 가동도 하기 전에 철거했다. 신호등 대신 중심가 교차로 한 곳에서 교통경찰이 수신호로 교통을 정리한다. 도로 한복판에서 개 한 마리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팀푸에서는 수신호도 필요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통경찰이 일찌감치 퇴근한 이후에도 교차로의 차량 흐름은 내내 평화롭고 순조로웠으니까 말이다. 부탄의 팀푸와 함께 신호등 없는 또 하나의 수도는, 팔라우의 ‘응어룰무드’다.

이건 좀 다른 얘기일까. 부탄에서는 ‘첫눈 오는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 첫눈은 부탄에서 행운의 상징이다. 눈이 내리면 모두 행복해한다. 어떤가. 이런 게 국민의 행복감을 증진하지 않겠는가.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을 때, 문밖에 눈사람이 있으면, 그걸 가져다 놓은 사람에게 한턱 내는 풍습도 있다고 했다. ‘행운을 부르는 눈이 왔는데도 늦잠을 잔 벌’이란다.

환경이나 생태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없던 1970년대부터 부탄은 이미 ‘지속 가능한 사회’를 고민해왔다. 그 결과 한정된 지하자원 채굴이나 마구잡이 개발 대신, 재생 가능한 자원인 나무를 심고, 순환하는 수자원으로 전기를 만들고, 농사를 지어 해마다 곳간을 필요한 만큼만 채우며 살고 있다.

그래서 부탄은 탄소 중립을 넘어 전 세계에서 유일한 ‘탄소 음성국가(Carbon Negative Country)’다. 부탄의 삼림이 나라 안에서 배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제거한다는 뜻이다.

이 모든 혜안의 중심에는 종교, 그러니까 티베트 불교가 있다. 욕망을 절제하고, 자연 앞에 겸손하며, 인간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나보다 주변을 먼저 챙기는 부탄의 전통은 모두 불교의 가르침에서 온 것이다.

신호등이 없는 나라, 첫눈 오는 날은 공휴일이 되는 나라, 지하자원이 있어도 캐지 않는 나라, 국토에서 삼림의 비율을 법으로 정한 나라, 국민이 왕에게 ‘땅을 나눠달라’고 청원할 수 있는 나라, 왕과 왕비가 20시간 넘게 차를 타고 14시간을 꼬박 걸어 산간 오지 마을 주민을 만나러 가는 나라…. 하나같이 동화책 속 이야기 같은 얘기지만, 지금 당장 부탄에 간다면 목격할 수 있는 것들이다.

부탄의 유적지나 자연경관 얘기를 굳이 다음번으로 미뤄두고, 부탄에서 보고 느낀 얘기를 먼저 꺼내놓은 데는 이유가 있다. 여행이 끝나고 나면 경관이나 유적의 기억은 금방 휘발해버린다. 인두로 지진 것처럼 기억 속에 진하게 남는 건 부탄사람들의 친절과 그들이 사는 평화로운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단언할 수 있다. 부탄을 다녀온다면, 곧 다시 가고 싶어질 게 틀림없다. 이유는 분명하다. 선의로 가득한 부탄 사람들의 미소와 환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내는 평화로움 때문이다.



# 부탄 여행이 비싼 이유

자 이제, 부탄 여행의 실전이다. 부탄 여행은 비싸다. 누가 많이 ‘남겨 먹어서’ 그런 게 아니다. 부탄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 체류비용을 받는다. ‘지속가능한 개발비’ 명목으로 걷는 기금이다. 부탄을 여행하려면 사전에 기금을 송금하고 여행사를 통해 정부에 여행계획서를 제출해 여행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을 받지 않으면 입국은 물론이고 항공권 발권도 할 수 없다.

여행자들이 내야 하는 기금은 하루 100달러(13만4000원)다. 일주일 체류하면 이 비용만 100만 원에 육박한다. 그래도 많이 싸진 거다. 하루 250달러(33만5000원)까지 받은 적도 있다. 2017년 수교 30주년을 맞아 150달러로 낮췄다가 코로나19 이후 여행이 재개된 작년 9월 1일부터 100달러로 한 번 더 내렸다. 인하는 오는 2027년 8월 말까지 4년간 한시적이다.

체류비용이 절반 이하로 낮아졌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리 많이 깎아준 건 아니다. 250달러를 내야 했을 때는 그 안에 숙박비와 밥값, 차량비용, 가이드와 운전자 인건비, 생수 하루 2병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0달러로 금액을 낮춘 뒤에는, 숙소나 식비, 가이드 비용은 별도로 자기가 따로 내야 한다. 저렴해진 건 분명하지만, 많이 싸진 건 아니란 얘기다.

코로나 이전에 부탄 여행을 하려면 공인된 부탄 현지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는 게 필수였다. 여행 중에도 에이전트 소속 가이드와 항상 같이 다녀야 했다. 번거롭고 불편했지만, 한편으로는 편한 점도 있었다.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부탄 현지 에이전트가 다 해줬기 때문이다. 지금은 규제가 좀 느슨해졌다. 부탄관광위원회가 인증한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고, 위원회가 인증한 가이드와 운전기사, 차량을 대동한다면 개별여행도 가능하다.

지금은 전적으로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부탄 정부는 ‘여행사를 통한 예약’을 강력하게 권한다. 가이드 없이는 이름난 유적지도 들어갈 수 없고, 트레킹이나 체험프로그램도 즐길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현지 여행사와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문제는 스스로 현지 공식 에이전트를 골라서 접촉하고, 코스를 협의하고, 금액을 협상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 여행 준비과정의 가슴설렘을 즐기는 여행 마니아라면, 이렇게 가는 걸 백 번 추천한다. 그렇지 않다면 부탄 패키지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국내 여행사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비용도 좀 절약되고, 의사소통의 불편도 없다. 부탄의 아름답고 기이한 명소 얘긴 다음번에….



■ ‘행복’에서 ‘믿음’으로

부탄은 최근 새로운 국가 브랜드로 ‘믿음(Believe)’을 내걸었다. 국가 차원에서 내건 일종의 ‘태그’다. 부탄이 ‘믿음’이란 국가 브랜드에 담고 싶었던 건 ‘낙관적 태도’인 듯하다. 치솟는 청년실업률로 고통받는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확신을 갖고 부탄 스스로의 가치와 미래를 믿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해발 3120m 암벽위 ‘수행 성지’… 욕망 깎아낸 자리에‘행복’이 들어왔다

[박경일기자의 여행]

  • 문화일보
  • 입력 2024-09-19 09:00
  • 업데이트 2024-09-19 11:54

부탄을 총체적으로 대표하는 명소인 탁상곰바. 사진으로 찍어놓으면 이상하게도 납작한 평면적 풍경으로 보여 감흥이 떨어지는데, 실제로 가서 보면 ‘우와∼’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탁상곰바의 해발고도는 3120m. 딛고 선 직벽의 높이만 북한산 인수봉보다 높은 900m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불교를 따라… 순례하듯 걷는 부탄 <下>

부탄 대표하는 명소 ‘탁상 곰바’
불교 전파자 파드마 삼바바가
호랑이 타고와 100일 명상한곳

차에서 내려 고도 520m 등반
중간전망대까지 조랑말 타기도
막판 깎아지른 계단 올라 도착

부탄노선 운항 항공사 두곳뿐
비행기 창으로 히말라야 감상
입국때 보는 경치 훨씬 감동적

파로·팀푸·푸나카 3대 관광지
건축미·경건함 더한 푸나카종
팀푸의 타쉬초종 등 둘러볼만

부탄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에베레스트 산을 목격하는 기분

부탄의 파로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에베레스트(8848m)를 봤다. 에베레스트 왼쪽에는 눕체(7861m)가, 오른쪽에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로체(8516m)가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목적어로 쓰는 서술은 ‘보았다’보다는 ‘목격했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한 듯하다. 그래서 다시 쓴다. 부탄항공의 에어버스 A319 여객기에서 에베레스트산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구름 위로 솟은 만년설 뒤덮인 히말라야 준봉은 ‘지도의 영역’이 아닌 ‘지구의 영역’으로 느껴졌다. 에베레스트를 지나자마자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 칸첸중가(8586m)가 다섯 개의 거대한 산군(山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만년설로 뒤덮인 7000∼8000m급의 산봉우리 능선이 선명했다.

비행기가 부탄 영공으로 들어서자 이번에는 양날의 칼처럼 생긴 조몰하리(7326m)가 마중 나왔다. 흰 눈으로 뒤덮인 봉우리 아래로 고산준봉의 능선이 첩첩이 겹쳐졌다. 조몰하리는 부탄에서 두 번째로 높다.

부탄 여행의 시작과 끝에는 히말라야가 있다. 부탄을 들고 나는 비행기는 ‘세상의 지붕’ 위를 날아간다. 이 노선을 운항하는 항공사는 딱 두 개. 드루크에어와 부탄항공이다. 두 곳 모두 부탄 국적 항공사. 비행기 안에서 히말라야를 또렷하게 볼 수 있는 최적기는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그러니까 딱 지금쯤이다. 맑고 건조한 이 시기에 가장 또렷하게 히말라야를 볼 수 있다.

히말라야를 보겠다면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부탄으로 들어간다면 왼쪽 창가 자리를, 부탄에서 나온다면 오른쪽 창가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그쪽 자리를 배정받으려면 공항에 일찌감치 나가야 한다. 에베레스트산을 내려다보는 감흥에 대면 그 정도 수고는, 일도 아니다.

첨언하자면 ‘부탄에서 나올 때’보다 ‘부탄으로 들어갈 때’ 보는 히말라야가 훨씬 더 감동적이라는 것. 당연히 ‘여행을 시작하는 기대와 흥분’ 때문이다. 같은 이유 때문에 부탄에서 나올 때는 오른쪽 창가 자리 확보가 쉽다.

식자재 등을 조랑말에 실어 중턱의 전망대 겸 카페까지 나르는 모습.



# 가장 위험하지만 안전한 공항

부탄 공항은 수도 팀푸가 아니라 팀푸에서 차로 1시간 20분 거리인 ‘파로’에 있다. 산지 협곡의 지형 탓에 팀푸에는 공항을 건설할 수 없었다. 그나마 낫다는 파로에 건설한 공항도, 비행기 이착륙의 난도가 높기로 악명 높다. 산과 산 사이로 파고들어서 고도를 낮추다가 마치 자동차가 드리프트하듯 오른쪽으로 급선회하자마자 착륙한다. 지상과 점점 가까워지는데, 창밖으로 산등성이가 스치듯 지나갈 때의 아찔한 기분이란….

이륙도 마찬가지다. 파로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예외 없이 1시간 안에 다른 공항에 착륙한다. 이륙할 때, 연료를 가득 채우면 급상승이나 급선회를 할 수 없어 최소한의 연료만으로 우선 이륙한 뒤에 내려서 연료를 다시 채우고 출발하기 때문이다. 파로 공항에서 태국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가 손님이 별로 없는 인도의 콜카타 공항을, 마치 시외버스 정류장처럼 들렀다가 가는 이유다.

파로 공항을 흔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걱정할 건 없다. 그렇게 위험하다면야 비행기가 취항할 리 없다. 결정적으로 파로 공항에서는 단 한 번도 사고가 난 적이 없다. ‘파로 공항을 이착륙할 수 있는 기장이 전 세계를 통틀어 딱 25명뿐’이란 얘기도 비슷한 경우다. 이 이야기는 버전에 따라 기장 숫자가 15명으로, 9명으로 줄어들기도 한다. 큰 의미 없는 얘기. 파로 공항에서 이착륙할 수 있는 기장의 숫자는, 그저 부탄의 두 항공사 조종사의 합계 숫자일 따름이다.

‘지구의 지붕’ 위를 날아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에 내리는 경험은, 부탄 여행이 가장 먼저 선사하는 ‘원 투 스트레이트’다. 여행하다 보면 부탄에는 이것 말고도, 더 많은 펀치가 있다.

부탄의 수도 팀푸를 한눈에 굽어보는 자리에 높이 54m의 ‘도르덴마 좌불상’이 있다. 좌불상 주위에 빙 둘러 세워진 황금색 보살상 너머의 구름에 잠긴 협곡 아래가 팀푸 시내다.



# 부탄 여행에서 종교를 이해하는 법

부탄의 중심에 종교가 있으니, 부탄 여행의 중심에도 종교가 있다. 부탄은 스님이 개국한 불교국가다. 불교국가라면 익숙한 듯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부처를 믿는다는 건 같지만, 종파에 따라 수행 방식이나 의례 등이 같은 종교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르다.

부탄이 국교로 삼은 건 대승불교의 발전된 형태인 ‘금강승 불교’다. ‘티베트 불교’나 ‘밀교(蜜敎)’라고도 부른다. 종교적 스승인 ‘라마’를 모신다고 해서 ‘라마교’라고도 한다.

대뜸 종교 얘기부터 꺼낸 건, 부탄의 관광지나 유적 대부분이 ‘종교 공간’이어서다. 부탄에서는 사찰과 유적지는 물론이고, 도시 속 삶의 공간이나 심지어 자연경관에까지 종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부탄의 금강승 불교는, 우리가 아는 불교와는 사뭇 다르다. 스승과 제자 간 구전을 통해 전수되는 비밀스러운 가르침으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밀교의 전통부터가 낯설다. ‘비밀스럽다’는 점에서 밀교는 곧잘 ‘컬트(cult)’쯤으로 오해받곤 하는데, 비밀스럽게 전수되는 까닭은 기괴하거나 이상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심오하고 소중해서’ 그렇단다.

금강승 불교에는 8개의 수행 법맥이 있으며, 법맥마다 다시 10여 개씩의 분파로 나뉜다. 그걸 다 헤아리기도 어려운데, 분파 간 차이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다. 하기야 불교의 가르침의 방식이 ‘팔만사천’이나 된다니, 어찌 그걸 다 이해할 수 있을까.

그저 어디서든 종교적 경건함을 지키고 수행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만 갖추자. 출가하거나 거기 살 것도 아니고. 여행하는 데는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부탄의 절이나 사원에 가기 전에 알아둘 게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모두 ‘절’이나 ‘사원’이 되겠지만, 부탄의 절은 ‘종(Dzong)’과 ‘라캉’ ‘곰바’, 이렇게 셋으로 나뉜다. 먼저 ‘종’은 행정기관과 사찰이 한 몸을 이룬 곳이다. 종교와 정치·행정이 한 몸을 이루던 시절의 유적이다. 보통 높은 성벽과 해자 등으로 둘러싸인 자리에 있다.

‘라캉’은 우리의 사찰과 가장 비슷하다. 스님들은 법당에서 수행하거나 기도하고, 신도들은 자유롭게 드나든다. ‘곰바’는 깊은 계곡이나 접근이 어려운 곳에 세상을 등지고 들어선 수행의 공간이다. 부탄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곳으로, 충만한 상상력과 상징으로 가득한 신화가 새겨져 있다.

수도 팀푸에서 푸나카 가는 길의 풍경. 부탄의 소는 대부분 주인이 없다. 부탄은 불교 교리에 따라 살생이 금지돼 육류를 이웃 인도에서 수입한다. 부탄의 소도 인도로 데려가 도축한다.



# ‘부탄에는 탁상곰바가 있다’

부탄을 대표하는 명소는 단연 ‘탁상곰바’다. 부탄 사람들도, 관광객들도 모두 동의하는 얘기다. 탁상곰바는 총체적으로 부탄을 대표한다. 부탄의 대표 경관이면서, 대표적인 종교적 상징이고, 정신의 뿌리이기도 하다. 이집트에 피라미드가 있고, 중국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부탄에는 탁상곰바가 있다.

‘탁상’은 부탄 말로 ‘호랑이 둥지’를 뜻한다. ‘곰바’는 앞에서 말한 대로 ‘수행처’다. 여기뿐만 아니라 부탄의 명소를 여행하다 보면 자주 튀어나오는 이름이 있다. ‘파드마 삼바바’. 서기 8세기쯤 부탄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이다. 연꽃에서 환생했다고 해서 ‘연화생(蓮花生) 보살’이라고도 하고, ‘구루 린포체’라고도 부른다. 린포체란 ‘살아 있는 부처’라는 뜻. 전생에 수행하다 죽은 자가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아 환생한 것이 증명된 사람을 말한다. 앞에 붙은 ‘구루’는 소중하다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파드마 삼바바는 서기 746년 암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부탄으로 날아와 잡신을 차례로 굴복시킨 뒤 동굴 속으로 들어가 100일 동안 명상에 들었다. 부탄에 불교가 전해지는 최초의 장면이다. 탁상곰바는 바로 그 자리에 지어졌다. 부탄 사람들이 탁상곰바를 경배해 마지않는 이유다.

탁상곰바를 신성시하는 이유는 또 있다. 파드마 삼바바가 다녀간 900년쯤 뒤에 부탄을 통일한 영웅 ‘샤브드롱’이 탁상을 방문했다가 동굴에서 보물 ‘테르마’를 발견한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다시 파드마 삼바바 얘기로 돌아가 보자.

파드마 삼바바는 생전에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1000권이 넘는 경전을 썼다. 다 쓴 경전을, 그는 비밀에 부치고 공개하지 않았다. 세상이 그 내용을 이해할 준비가 안 됐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비밀의 경전을 히말라야 산중의 동굴 속에 한 권씩 숨겼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사후에 환생해 숨겨둔 경전을 찾으라는 사명을 맡겼다. 믿거나 말거나 지금까지 찾아낸 비밀의 경전이 65권에 이른단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티베트 북부 지방 동굴에서 찾아냈다는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書)’다.

탁상곰바에서 발견했다는 보물은 파드마 삼바바가 불교 박해를 예감하고 동굴 속에 숨겨놓은 비밀의 경전이었다. 그는 죽었으되 죽지 않았다. 끊임없이 발견되는 ‘비밀의 경전’으로 그는 불자들의 마음에서 되살아나 메시지를 전한다. 탁상곰바뿐만 아니다. 부탄의 사찰과 사원 어디에든 윤회와 환생 이야기가 있다.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태어나 윤회한다는 가르침. 죽음이란 허물처럼 벗어놓는 껍질일 따름이라면, 그래서 지은 업보에 따라 내세에 환생한다면, 욕심을 가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부탄이 ‘행복의 나라’로 불리는 건, 그렇게 욕망의 크기를 줄인 결과가 아닐까.

# 탁상곰바, 봉정암과 겹쳐지다

탁상곰바는 파드마 삼바바가 명상에 들었던 까마득한 벼랑 위 동굴 자리에 1692년 세워졌다. 330여 년의 시간을 건너오는 동안, 사원에는 화재가 끊이질 않았다. 1951년에는 사원 일부가 불탔고, 1998년에는 큰불로 본당 전체가 다 타버렸다. 지금의 모습은 2004년 대대적인 복원 공사로 다시 일으켜 세워진 것이다.

탁상곰바 해발고도는 3120m다. 한라산보다는 1170m가 더 높다. 게다가 사원이 딛고 선 자리는 900m 높이의 깎아지른 암벽 위다. 숫자만 보면 입이 딱 벌어지지만, 오르기 쉽지 않을 거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출발 지점인 주차장 해발고도가 이미 2600m여서 올라야 하는 고도차는 520m쯤이다. 난이도는 서울 근교 산 등반과 비슷한 정도. 다만 고산지대라 빨리 숨이 차 속도를 늦춰야 하고, 사람에 따라서 걷는 게 좀 더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탁상곰바 가는 길의 중간쯤에는 전망대가 있다. 20달러를 내면 여기까지 조랑말을 타고 오를 수 있지만, 전망대부터는 누구나 걸어서 올라야 한다. 고비는 마지막에 만나는 가파른 내리막과 오르막 계단이다. 코앞의 허공 너머로 사원이 빤히 보이는데, 거기까지 가려면 가파른 내리막 계단을 딛고 저 아래까지 내려간 뒤 계곡을 건너서 다시 깎아지른 오르막 계단을 올라야 한다.

탁상곰바는 본당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사원 이름을 가진 부속 건물이 옆으로, 또 위로 잇대서 지어졌다. 4개 사원이 하나의 집합건물을 이루고 있는 형상이다. 어두운 통로와 계단을 지나니 법당의 스님이 파드마 삼바바가 암호랑이에서 내린 자리와 그가 명상했던 자리를 손짓으로 가리켜 주었다. 좁은 통로 끝 법당에는 파드마 삼바바 형상의 불상도 있었다. 탁상곰바 어디서든 간절한 기도와 절이 이어졌다.

탁상곰바의 사원을 둘러 보다가 떠올린 건 설악산 봉정암이다. 탁상곰바에 파드마 삼바바가 있다면, 봉정암에는 신라의 자장율사가 있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기도 도중 출현한 문수보살로부터 부처의 사리와 옷을 받아들고 귀국해 찾아낸 자리에 세운 암자가 봉정암이다. 탁상곰바와 봉정암이, 파드마 삼바바와 자장율사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순례하듯 산을 오르는 이들의 모습이며 법당에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도 닮았다. 따져보니 자장율사가 파드마 삼바바보다 100년쯤 앞서서 먼저 왔다 갔다.

협곡의 다랑이 논. 벼가 익어가고 있다.



# 부탄 여행의 중심지 세 곳

부탄은 크지 않은 나라다. 전체 면적은 3만8394㎢. 남한의 40%쯤 된다. 경남·북에다 충남을 합친 정도의 크기다. 한국인 여행자들은 부탄에서 보통 세 곳의 도시를 본다. 국제공항과 탁상곰바가 있는 ‘파로’와 부탄의 수도 ‘팀푸’, 그리고 팀푸로 수도를 옮기기 전, 250년 동안 부탄의 수도였던 ‘푸나카’다.

세 곳은 모두 부탄 서쪽에 몰려 있다. 크지 않은 나라지만, 여행자의 발길이 닿는 건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분이라는 얘기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부탄에는 더 많은 경관과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뜻도 된다. 부탄에서 여러 곳을 가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도로 사정’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험악한 지형’ 탓이다. 부탄에서는 3000∼4000m급 산이 보통이다. 이런 산에다 놓은 길은, 말 그대로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인 구절양장(九折羊腸)이다. 곧은길은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터널을 뚫지 않는다. 터널 굴착이 곧 자연 훼손이라 생각해서 그렇다는데, 가만 보면 부탄 사람들은 ‘빨리 갈 생각’ 자체가 별로 없어 보인다.

부실한 도로는 여행자에게 여간 불편한 요소가 아니다. 여행 지형이 험준하고 도로 사정도 좋지 않으니, 하루 종일 멀미 나는 길을 차로 오가면서 딱 한두 곳만 보고 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푸나카종’을 보고 온 날이 그랬다.

수도 팀푸에서 옛 수도 푸나카까지 거리는 76㎞ 남짓. 이 정도의 거리가 편도 3시간쯤 걸린다. 왕복하면 6시간이다. 도로의 경사는 가파르고 길은 갈 지(之) 자로 휘었다. 차량의 평균 주행 속도는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 최고 속도’인 시속 30㎞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도 이 길의 이름이 ‘동서 하이웨이’다. ‘시속 25㎞로 달리는 고속도로’다.

푸나카에는 푸나카종이 있다. 앞서 말했다시피 ‘종’이란 행정기관과 사찰이 한 지붕 아래 있는 시설이다. 푸나카종 건축을 둘러싼 이야기 속에는, 탁상곰바에서 익숙해진 이름, 파드마 삼바바가 등장한다.

1200여 년 전 그는 “먼 훗날 이곳에 나타난 사람이 나라를 통일하고 큰 성을 지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900년이 지난 뒤에 나타나 푸나카종을 지은 이가 바로 탁상곰바에서 보물을 발견했던 사람, 샤브드롱이었다.

# 질문하는 여행…부탄 여행의 매력

두 개의 강이 만나는 자리에 지어진 푸나카종은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건축적 미감에다 종교적 경건함까지 스며들어 있다. 창 주위를 장식한 부탄식 문양도, 회벽과 목조의 어울림도, 마당 한쪽의 거대한 보리수도 근사했다.

압권은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석양빛에 물든 푸나카종의 모습이었다. 진정으로 아름다웠다. 건축이 만든 미감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니…. 이걸 보기 위해 왕복 여섯 시간의 멀미나는 여정을 감수해야 했지만, 보람은 충분했다.

푸나카에 푸나카종이 있다면, 수도 팀푸에는 부탄의 사상적 중심이라고 추켜세워지는 타쉬초종이 있다. 화재와 지진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것을 1902년 완전히 새로 지었고, 1962년 팀푸가 수도가 되면서 대대적으로 증축했다. 이 건축의 가장 튼튼한 뼈대가 ‘종교적 헌신’이란 게 단번에 느껴질 정도로 타쉬초종은 훌륭했다. 성벽 같은 벽체 위에 목조 창이 덧대지고, 거기에 섬세한 부조와 문양이 그려졌다. 부탄 전통건축 특유의 낮은 경사 지붕 여러 개가 만들어내는 장식미도 근사했다. 타쉬초종에는 유심히 보아 둘 부조가 있다. 나무 옆에 코끼리가 있는데, 코끼리 등 위에 원숭이가, 원숭이 머리 위에 토끼가, 토끼 머리 위에 새가 앉아 있는 장면을 묘사한 부조다. 티베트 불교 경전에 나오는 우화에 깃든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나무에 열린 열매를 놓고 동물들이 제 것이라며 다퉜다. 코끼리는 ‘나무를 처음 본 건 나’라고 했고, 원숭이는 ‘열매를 먼저 본’ 권리를 주장했으며, 토끼는 ‘어린 나무 잎을 먹고 자란’ 과거를 들먹였다. 다툼을 단번에 정리한 건 새였다. 새는 ‘내가 뱉은 씨가 자란 나무이니 내 것’이라고 했던 것. 그 말에 수긍한 코끼리와 원숭이, 토끼는 새를 맏형으로 인정하고 의기투합해 나무 열매를 나눠 먹으며 평화롭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투숙했던 팀푸의 호텔에도, 시내의 작은 만두집 벽에도 걸려 있던 네 마리 동물의 이야기는, 행복의 근원을 드러내는 상징처럼 읽혔다. 가진 게 적어도 욕심내지 않고, 서로 나누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은 어디서든 가능한 것일까.

부탄 여행이 다른 여행과 다른 건, 여행 내내 이런 질문이 수시로 형태를 바꿔가며 떠올려진다는 것이다. 고요한 수도원의 회랑을 걸으면서, 다랑이 논의 고된 노동을 가늠해 보면서, 거대한 도르덴마 불상 앞에 두 손 모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질문의 답을 생각하게 된다. 답이야 저마다 다를 것이고, 여행이 끝나고 나면 이런 생각도 금세 잊히고 말겠지만 말이다.



■ 해발 3000m에서 올려다 본 별

수도 팀푸에서 푸나카까지 가려면 해발 3140m의 도출라 고개를 넘어야 한다. 도출라 고개 정상에는 108개 불탑이 있다. 인도 시킴 지역의 반군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불탑이다. 푸나카 가는 길에 도출라 고개에서 볼 수 있다는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 영봉의 파노라마는 구름이 가득해 보지 못했다.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준 건 돌아오는 길에 도출라 고개 정상에서 본, 밤하늘에 가득한 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