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196] 순인자시(詢人者是)
제나라 왕이 활쏘기를 좋아했다. 왕은 신하들이 강궁을 잘 쏜다고 말해주면 아주 흡족해했다. 실제 그가 쏜 활은 3석(石)에 불과했지만, 좌우에서 아첨하느라 굉장히 센 9석짜리 강궁이라고 칭찬했다. 윗사람이 칭찬만 원하는지라 신하들은 거짓말로 칭찬해 주었다. 그것이 끝내 거짓인 줄 모르니 허물을 고칠 기회가 없고, 종내 남의 비웃음만 사고 만다.
안동 사람 이시선(李時善)이 멀리 남쪽 바닷가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날은 저물고 비까지 내려 왔던 길을 놓치고 말았다. 길 가던 이에게 묻자 왼쪽으로 가라고 했다. 자기 생각에는 암만해도 오른쪽이 맞는 것 같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왼쪽 길로 가니 마침내 바른 길이 나왔다. 한번은 북쪽으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두운 새벽에 고개를 넘는데, 틀림없지 싶어 묻지도 않고 성큼성큼 갔다. 막상 가보니 엉뚱한 방향이었다. 그가 말했다. "스스로 옳다고 여긴 것은 잘못되었고(自是者非), 남에게 물은 것은 올발랐다(詢人者是). 길은 정해진 방향이 있는데, 의혹이 나로 말미암아 일어났으니, 땅의 잘못이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졸렬함을 쓰지 않고, 어리석은 사람의 능한 바를 쓴다고 했다. 요순(堯舜)은 남에게 묻기를 잘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요순보다 훌륭했던 것은 아니다. 능력을 과신해서 자기가 하는 일은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순간 독선에 빠져 실수가 생긴다. 난리가 나서 사람들이 피란길에 올랐다. 장님이 절름발이를 등에 업고, 그가 일러주는 길을 따라 달아나 둘 다 목숨을 건졌다. 장님은 두 다리가 성하고, 절름발이는 두 눈이 멀쩡했다. 둘은 서로 장점을 취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시선이 쓴 '행명(行銘)'이란 글에 나오는 내용이다. '성호사설'에 실려 있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스스로 고명하다 자처하여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늘 남을 이기려고만 들면, 어찌 능히 모르는 것을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리더의 귀가 얇아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은 큰 문제지만, 쇠귀에 경 읽듯 남의 말을 도무지 안 듣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툭 터져 시원스러워야 리더십이 발휘된다. 내가 못나 남의 말 듣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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