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8경중 최고 ‘벼랑위 누각’ 잠자던 ‘삼척의 매력’ 깨우다
[박경일기자의 여행]
- 문화일보
- 입력 2024-03-28 09:23
- 업데이트 2024-03-28 09:25
오십천 건너편에서 바라본 야간 조명을 받은 죽서루 모습.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죽서루’ 국보지정… 다시 발견한 삼척
오십천 변 내려다보는 죽서루, 선비들 남긴 문장 읽는 재미
울퉁불퉁한 지형에 맞춘 기둥 · 용이 뚫고 지나간‘용문바위’
복원된 객사 ‘진주관’엔 출입금지 대신‘신을 벗고 올라오라’
삼척항엔 높이 50m ‘지진해일 안전타워’ 전망대 무료 이용
백두대간 산촌에 숨은 ‘가곡온천’… 근사한 경치 보며 스파
해안절벽 ‘초곡용굴촛대바위길’ 걸으며 기기묘묘 바위 구경
삼척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관동팔경의 최고 경관은 어디?
관동지방의 아름다운 명승지 8곳을 이르는 관동팔경(關東八景). 그중에서 첫 번째 경치는 어딜까. 그걸 가린 심판이 있다. 조선의 19대 왕 숙종이다. 숙종이 뽑은 이른바 ‘원픽’은 울진의 망양정이었다. 숙종은 망양정에 ‘關東第一樓(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내렸다. ‘관동에서 제일 가는 누각’이란 뜻이다. 망양정은 경북 울진 왕피천 물길이 바다와 만나는 산포리 언덕 위에 서 있는 정자다.
명쾌한 승부 같지만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 시빗거리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심판의 자격 조건. 사실 숙종은 생전에 한 번도 망양정에 가본 적이 없었다. 망양정뿐만 아니라 관동팔경의 다른 명승도 본 적 없다. 숙종이 망양정을 ‘최고’라 말했던 단서는, 오로지 ‘그림’이었다. 숙종은 화공이 그린 그림으로 관동팔경을 보았다. 가보지도 않고서 그림 속 경관을 보고 ‘관동 제일’이란 이름을 현판까지 하사한 것이다.
숙종의 단호한 원픽의 배경이 망양정이 아니라, 망양정을 그린 그림의 미감이었다는 얘기다. 숙종이 세상을 뜬 이후인 1738년 완성한 겸재 정선의 ‘관동명승첩’에 실린 그림 속 망양정만 봐도, 깎아지른 바닷가 벼랑을 두르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 비장미가 두드러진다. 그림만으로 본다면 관동팔경 중 가장 인상적이다. 숙종이 보았던 망양정 그림도 혹시 이랬던 건 아닐까.
또 하나의 시비가 망양정의 ‘제자리’ 논란이다. 지금 망양정은 ‘망양리’가 아니라 ‘산포리’에 있다. 본래 망양정은 망양리 해변 언덕에 있었는데, 정자가 퇴락하자 1471년에 근처인 현종산 기슭에 옮겨 세웠다. 그 자리가 조선의 선비들이 경탄해 마지않았고, 숙종 임금이 최고로 꼽았던 망양정이었다. 그런데 울진군수쯤 되는 이가 1860년에 현판을 떼어다가 14㎞ 북쪽인 산포리 언덕에다 정자를 옮겼다. 그게 지금의 망양정이다.
그러니까 지금 망양정은 정철이 시를 읊고 겸재가 그림을 그렸던 그 망양정이 아니다. 숙종이 내린 ‘관동제일루’의 현판도, 정철의 ‘관동팔경’도, 김시습의 시도, 조선의 스타급 화가였던 겸재 정선의 관동명승첩과 단원 김홍도의 화첩 속 그림도 지금의 자리에 있던 망양정을 노래하거나 찬탄하거나 그려낸 것이 아니란 얘기다.
‘관동팔경의 진짜 원픽’을 꼽는다면, 유력한 곳은 삼척의 죽서루가 아닐까. 우선 관동팔경 중 처음 지어진 장소를 지키고 있는 건 죽서루가 유일하다. 누각의 규모와 위용도 남다르다. 정자가 앉아 있는 오십천 변 수직 벼랑의 끝자리도 훌륭하고, 벼랑을 휘돌아가는 흘러가는 물길의 경관도 풍류가 넘친다. 결정적으로 죽서루는, 작년 연말에 국보(國寶)가 됐다. 국보가 주로 역사적 의미나 보존 가치 등을 평가해 지정하는 것이라지만, 주변 지형이나 경관을 포함한 미감(美感)에 대한 비중도 높다.
초곡 용굴촛대바위길. 바위 벼랑에다 잔도처럼 길을 매달았다. 왼편에 우뚝 솟은 게 촛대바위다.
# 왕도 부러워한 오십천의 밤 뱃놀이
죽서루에는 그동안 여행자들의 발길이 그리 자주 닿지 않았다. 명성에다 대면 방문객 수가 적다. 죽서루를 그냥 지나치게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관동팔경에서 다들 기대하는 건 ‘바다’니까…. 도시를 떠나온 여행자에게는 ‘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것도 탐탁지 않았던 점이다. 죽서루 말고는 도심까지 관광객을 불러들일 만한 이렇다 할 매력이 없다는 점도, 삼척을 그냥 지나치게 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국보 지정 이후 분위기가 달라지는 듯하다. 죽서루를 방문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죽서루 자체는 이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으니 순전히 ‘타이틀이 가진 힘’ 때문이다. 국보가 된 죽서루를 새삼 다시 보러온 이들은 시내로 한 발짝 더 들어오고 있다. 그러면서 그동안 미처 몰랐던 삼척의 명소와 매력이 하나둘 발견되고 있다. 지금부터는 새삼 다시 보는 죽서루의 매력과 여행하기 좋은 삼척 도심의 매력적인 공간 얘기다.
죽서루는 관아와 객사에 딸린 누각이다. 객사는 외국 사신이나 외지에서 온 벼슬아치들이 묵는, 지금으로 치면 ‘국립여관’ 격. 죽서루는 바로 이 객사에 딸린 누각이었다. 중앙에서 온 관리를 접대하고 잔치를 벌이거나, 지방의 양반 사대부와 시인 묵객이 정신수양을 하는 휴식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죽서루에 글깨나 하는 선비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고, 누정에 걸린 수많은 현판에 기문이 쓰이고, 죽서루가 등장하는 남아 있는 시편만 500편이 넘는 이유다.
죽서루에는 숙종과 정조의 시를 비롯해 이곳을 다녀간 유명인사들이 남긴 문장으로 그득하다. 역대 삼척부사가 릴레이하듯 써서 걸어놓은 현판 글씨를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삼척부사는 지금의 삼척시장과 강원지사의 중간쯤 되는 벼슬. 이들이 남긴 글씨에서는 하나같이 죽서루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삼척부사 허목이 최고의 정자란 뜻으로 ‘第一溪亭(제일계정)’이란 글씨를 걸었고, 뒤이어 역시 삼척부사였던 이성주가 숙종이 망양정에 내린 글과 똑같은 ‘關東第一樓(관동제일루)’ 글씨를 현판으로 매달았다. 두툼한 획으로 쓴 ‘海仙遊戱之所(해선유희지소)’는 100년 전쯤 삼척부사를 지낸 이규현이 쓴 글씨다.
숙종의 시 ‘죽서루’도 편액으로 걸려 있다. “위태로운 벼랑에 드높이 솟은 백 척 누각/아침 구름 저녁 달그림자 청류에 비치고/맑고 깨끗한 물결 속에 물고기 뛰노는데/한가히 누각 난간에 기대 물새 희롱하네.” 정적이고 좀 따분한 느낌. 정조가 김홍도의 죽서루 그림을 보고 나서 소감을 담아 지은 시는 그래도 덜 지루하다. “바위 쪼고 절벽 깎아 누각을 세웠는데/누각 옆 푸른 바닷가에 갈매기 노니네/죽서루에 있는 고을 태수 뉘 집 아들인가/미녀들 가득 싣고 밤새 뱃놀이하겠네.” 김홍도의 ‘금강사군첩’에 있는 죽서루 그림에는 오십천에서 뱃놀이를 하는 배 한 척이 그려져 있다. 정조 임금은 죽서루 아래에서 뱃놀이하는 ‘팔자 좋은 태수’가 그렇게 부러웠던 모양이다.
가곡온천의 3층 메인 풀. 전면 창 너머로 병풍바위와 가곡천 물길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 멀리서, 또 가까이서 보는 죽서루
죽서루가 보여주는 미감은 다층적이다. 안에서 볼 때와 바깥에서 볼 때가 다르고, 위에서 볼 때와 아래에서 볼 때가 다르며, 낮에 볼 때와 밤에 볼 때가 서로 다르다. 먼저 가까이 가서 보자. 죽서루를 돋보이게 하는 건 지형 조건에 맞춰 자연스럽게 앉힌 솜씨다. 죽서루를 바치는 17개 나무기둥은 굵기와 높낮이가 다 다르다. 비정형의 자연 암반 위에 누각을 세웠기 때문이다. 누각 마루의 반듯한 수평의 공간을 만들어낸 건 울퉁불퉁한 지형을 유연하게 받아낸 굵고 얇고, 길고 짧은 기둥들이다.
죽서루 주변에도 눈길을 끄는 것들이 있다. 누각의 벼랑 옆에는 ‘용문(龍門)바위’가 있다. 미로처럼 펼쳐진 바위 무리에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한 구멍 하나가 뚫려 있어서 ‘용(龍)이 지나간 문(門)’이라 이름이 붙은 곳이다. 바위에는 용이 되어 나라를 지켰다는 신라 문무왕이 여기까지 와서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갔다는 전설이 덧대 있다. 바위 굴이 상서로운 용이 지나간 흔적이라 믿었던 이들은, 용문을 드나들면서 장수와 다복을 빌었단다.
죽서루를 부속 건물로 거느렸던 관아의 객사 건물은 근래 복원된 것이다. 객사에는 삼척의 옛 지명인 진주(眞珠)를 따서 ‘진주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자세히 보니 객사를 뜻하는 한자인 ‘집 관(館)’자가 아니라 ‘볼 관(觀)’자다. 주변의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자 하는 뜻이었단다. 진주관이 마음에 들었던 건 ‘출입금지’의 경고 대신 ‘신을 벗고 올라오라’며 마루에 올라앉기를 권해서다.
객사에는 죽서루 말고 딸린 정자가 하나 더 있으니, 근래 복원한 ‘응벽헌(凝碧軒)’이다. 주변의 초록 대숲과 어우러지는 선명한 단청이 인상적인 정자다. 죽서루보다 규모도 작고 옛 맛도 덜하지만, 아늑하고 고즈넉해서 머물다 가기에 딱 좋다. 요즘 같은 따스한 봄 날씨라면 더 그렇다.
죽서루를 보는 가장 근사한 자리는 오십천 건너편이다. 오십천의 물길 위로 수직 절벽이 우뚝 서 있고, 벼랑 끝에 누각이 걸터앉은 형국이다. 죽서교에서 보는 측면의 경관도 좋고, 각도를 바꿔 천변의 작은 정자에서 보는 정면의 경관도 나무랄 데 없다. 여기서 죽서루를 보려면 해가 등 뒤로 오는 오후 나절이 좋은데, 은은한 조명이 비춰지는 야경도 근사하다. 해가 진 뒤에 죽서교 교각에 설치한 조명이 죽서루와 벼랑의 나무를 희미하게 비췄는데, 어둠이 주변을 다 지우고 나자 죽서루 일대의 경관은 마치 암전 속에 스포트라이트를 밝힌 무대처럼 느껴졌다. 죽서루에 자체 조명이 없어 야경이 선명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 편이 외려 도드라지지 않고 은은해서 더 나은 듯했다.
수로부인헌화공원에 설치한 용과 수로부인 조형물. 높이 10m, 무게 300t에 달한다.
# 여행자들이 안 가본 삼척의 도심
삼척에 ‘대학로’가 있다. 죽서루를 끼고 이어지는 엑스포로에서 성내동사무소를 지나 삼척시청 정문 부근으로 이어지는 길이 대학로다. 길 이름은 삼척시청 뒤쪽 언덕 위에 강원대 삼척캠퍼스가 있어서 붙여졌다. 대학로란 지명은 대개 ‘그 길에 대학생이 많아서’ 붙여지는 법. 그런데 여기는 다르다. 인근 상인들이 ‘대학생들이 이쪽으로 많이 내려오라고’ 붙인 길 이름이란다. 주민들의 기대 섞인 작명에도 불구하고, 그 소망은 잘 이뤄지지 않은 듯하다.
대학로라 불리고 있지만, 이 길은 오랫동안 삼척에서 가장 번성했던 길이었다. 대학로 일대는 관아와 죽서루와 함께 삼척 읍성이 두르고 있었던 성내(城內)마을이었으며, 가장 먼저 개발된 원도심이기도 했다. 삼척 내륙 지역인 도계나 미로, 신기 지역 주민들은 장날이면 삼척 장에 가기 위해 아리랑고개를 넘어서 여기 성내마을로 왔다.
대학로 일대는 작년까지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됐다. 전봇대를 없애고 어지러운 전선을 모두 지하로 넣는 대학로 특화 거리 조성사업도 그 일환이었다. 거리는 단정하고 말끔하다. 원도심이지만, 지금도 상권이 다 죽지는 않아서 도로변 1층에는 빈 점포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유심히 보면 중소도시 상점가의 점포는 대도시와는 좀 다르다. 양장점이 있고, 전파사가 있으며, 대학로 부근에는 군데군데 방점을 찍어놓은 것처럼 흥미로운 공간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그중 한 곳이 로컬관광상품 판매공간 겸 전시공간인 ‘모을’이다. 떡볶이집을 인수해 리모델링한 모을상점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만든 아기자기한 소품을 판매한다. 모을상점 옆 가게는 터줏대감 격이었던 금성양화점이 나간 자리에 만든 문화예술전시공간이 있다. 모을상점 뒤편에는 또 낡은 여관 금성장을 리뉴얼해 만든 체험공간 겸 전시공간이 있다. 흉물스러웠던 대성모텔이 말끔히 고쳐져 도시재생 관련 창업 업체들이 입주한 ‘어울림 센터’가 됐고, 족발집과 전파사가 ‘삼척 청년센터’가 됐으며, 내로라하는 요정이었던 1920년대 지어진 적산가옥이 도서관과 다양한 체험공간을 갖춘 지역주민 커뮤니티 공간 ‘삼락관(三樂館)’이 됐다.
원평해수욕장 백사장에 설치된 고래 조형물.
# 60년 내력 중국집, 그리고 닮은꼴 리우 예수상
대학로 거리에서 대번에 눈에 띄는 가게가 중국음식점 ‘동승춘’이다. 1963년 화교가 창업한 중국집을 1985년에 지금의 주인이 인수해 39년째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내력도 깊지만 재료도 좋고 맛도 훌륭해서 주민들이 너도나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곳이다. 자장면 팔아 번 돈으로 지금 들어선 가게의 건물을 샀을 정도니 인기나 맛, 그리고 친절까지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대학로 북쪽 끝의 작은 서점 ‘연책방’과 그 옆에 나란한 요거트(요구르트) 전문점 ‘요거영’도 눈길을 붙잡는 곳이다. 작은 책방인 연책방은 독서 모임과 강좌, 세미나 토론 등으로 지역주민과 소통하는 곳. 책방에는 판매용 책 외에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공유도서가 있다. 여행자들이 공유도서를 읽거나 책 추천을 받기도 한다. 연책방 옆의 요거영은 요거트 볼을 내는 전문점이다. 상큼한 요거트 맛도 나무랄 데 없고 분위기도 아늑해서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다.
삼척 시내 가장 높은 자리에서 도시를 굽어보는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성내동 성당은 꼭 들러보길 권한다. 골롬반외방선교회의 지원을 받아 1957년에 지어진 성당은 2004년 등록된 근대문화유산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건물은 진한 올리브색 외관이 인상적이다. 성당에서 꼭 봐야 할 건 본당 설립 60주년을 맞아 세운 예수님상. 양팔을 활짝 벌리고 삼척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형상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그리스도상을 빼닮았다. 예수상 뒤쪽에 서면 동상 시선으로 삼척 시내 경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삼척항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의 정라동 달동네. 레트로 느낌의 ‘나릿골 감성마을’로 단장됐다.
# 비교 불가의 맛, 정라진의 찹쌀떡
삼척 동쪽 바닷가의 항포구 일대를 정라진이라 부른다. 정라진에는 삼척항이 있고, 바다에 바짝 붙어 달리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인 새천년해안도로도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삼척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리조트 ‘쏠비치 삼척’이 있다. 리조트 손님을 겨냥한 세련된 카페부터 맛집까지 즐비하다. 이쪽에서는 바다를 보는 가장 전망 좋은 카페는 ‘보사노바 커피 로스터스 삼척점’이다. 맛집으로는 삼척중앙초 앞의 ‘뜰애홍합밥’을 추천한다. 비벼서 나오는 홍합밥 맛도 훌륭하고 깔리는 반찬까지 하나하나 깔끔하다. 예약을 안 받는다는 게 단점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장점. 하루 한정 수량만 선착순으로 판다.
삼척항에는 지진해일 안전타워가 있다. 30m 높이의 전망대 형태 타워 두 개를 다리로 연결한 구조물이다. 지진이나 해일, 태풍 등 재난을 대비해 만든 시설로 타워 사이에 높이 50m의 수문을 설치해 유사시에 바닷물 유입을 막는다. 재난 시설이지만, 평소에는 관광객을 위한 전망대나 전시장 역할을 한다. 타워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삼척항 일대의 바다 경관이 훌륭하다. 항구를 끼고 있는 비탈진 언덕 마을을 다듬어 조성한 ‘나릿골 감성마을’ 일대도 한눈에 들어온다. 내부에는 정라진 일대의 사진 등을 전시해 두었다. 관람료는 무료인데, 입장료를 받아도 될 만큼 만족도가 높다.
정라진에 또 간다면 꼭 다시 들러야겠다고 꾹꾹 눌러 적어둔 곳이 ‘정라진수제찹쌀떡’이다. ‘HARU(하루)’란 간판을 내걸고 카페를 겸했던 찹쌀떡 가게인데, 카페를 접고 찹쌀떡만 판다. 깨진 유리창을 반창고로 붙인 허름한 외관에 실망하기 십상인데, 찹쌀떡 맛을 보자마자 생각이 달라진다. 입안에서 무너지듯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식감과 맛이, 기존의 찹쌀떡과는 전혀 다르다.
삼척항 지진해일 안전타워.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데 전망대와 전시장 역할을 톡톡히 한다.
# 산촌 계곡에 최고의 인피니티 풀이…
삼척이라면 바닷가 풍경부터 떠올리게 되지만, 바다는 서쪽의 일부일 따름이고, 삼척의 동쪽은 내륙 백두대간 자락의 깊은 산촌이다. 그중 가곡면 일대는 가곡천이 흐르는 덕풍계곡과 동활계곡의 근사한 풍경이 있다. 가곡면사무소 부근에는 지난해 4월 문을 연 ‘가곡유황온천’이 있다. 삼척시가 온천과 스파시설을 짓고, 가곡면 주민 660명 중 3분의 1이 넘는 250명이 조합원인 영농조합법인이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온천이다.
가곡온천의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경치다. 가곡천의 물길과 그 너머의 병풍바위, 그리고 4만여 평에 달한다는 청평뜰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있다. 1층에 발권데스크가 있고 2층은 온천, 3층은 메인 풀과 스파, 4층 옥상은 인피니티 풀과 자쿠지 풀이 있다. 압권은 3층 스파의 메인 풀과 4층의 인피니티 풀이다. 3층 스파에서는 커다란 창 밖으로 가곡천과 병풍바위의 절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개방감 넘치는 옥상의 인피니티 풀에서 보는 경관은 더 근사한데, 온수가 아니어서 여름 시즌 외에는 이용할 수 없다. 인피티니 풀 옆에는 따뜻한 물을 담은 자쿠지 풀이 있어 겨울에도 이용할 수 있다.
온천과 사우나 공간은 전망이 전혀 없으니, 경관을 감상하겠다면 수영복을 입고 입장하는 스파를 이용해야 하는데, 스파 이용료가 3만 원으로 좀 비싼 편.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온천 옆의 가곡유황족욕체험장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병풍바위와 가곡천의 경관을 내다보면서 즐기는 족욕 코스 이용 요금이 6000원이다.
강원 동해안에는 촛대바위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애국가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동해의 추암해변에 있고, 다른 하나는 삼척 초곡해변에 있다. 동해 추암의 촛대바위가 훨씬 더 이름났지만, 바다 풍경은 삼척의 촛대바위가 한 수 위라 할 수 있다. 초곡해변의 촛대바위가 덜 알려진 건,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접근 불가의 벼랑 너머 바다 쪽에 있어서 그렇다. 그동안에는 배를 타지 않으면 볼 수 없었던 곳인데, 해안 절벽에다 출렁다리와 나무 덱, 전망대 등을 잔도처럼 매달아 촛대바위로 이어지는 길을 놓았으니 그게 바로 ‘초곡 용굴촛대바위길’이다. 이 길 위에서는 촛대바위는 물론이고 거북바위, 피라미드바위, 사자바위 등 기기묘묘한 기암을 볼 수 있다. 용굴 입구는 동해안의 해안 걷기길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근사한 길이다.
초곡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임원항 인근에 수로부인헌화공원이 있다. 남화산 해맞이공원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수로부인’ 이야기를 테마로 꾸민 수로부인헌화공원이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수로부인은 강릉 태수 순정공의 아내. 고전 시가 ‘헌화가’와 ‘해가사’ 속 주인공이다. 공원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수로부인이 용에 올라탄 모습을 조각한 500t짜리 거대한 석조 조형물. 해룡에게 납치당했다가 노인과 백성이 노래를 부르니 해룡을 타고 바다 위로 다시 떠올랐다는 ‘해가사’ 속의 장면을 표현했다. 거대한 조형물도 이색적이고, 맑은 날이면 울릉도가 보인다는 바다 조망도 훌륭하다.
■ 삼척에서는 곰치국을
묵은지를 넣고 끓이는 곰치국은 삼척의 향토 음식이다. 곰치는 물컹거리는 살점 탓에 어촌에서는 인기가 없어 잡자마자 버렸는데, 아까워서 가져다 고추장 양념을 풀고 해장국을 끓여 먹었던 게 곰치국의 시초다. 삼척에서 곰치국을 처음 낸 식당은 삼척시보건소 부근의 ‘금성식당’이다. 정라진의 ‘바다횟집’과 ‘만남의식당’ 등이 뒤이어 곰치국을 끓여냈단다. 곰치가 ‘귀하신 몸’이 된 지금은 곰치국 한 그릇이 2만 원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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