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안부 (2021.12)

면벽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3. 22. 16:02

면벽

 

아무도 묻지 않고

나도 묻지 않았다

한 때는 뾰족한 아픔이

새 순으로 돋아오를 때라고

믿기도 하였으나

먼 길을 걸어온

늙은 말 등에 얹힌 짐이

한 줌도 되지 않는 세월의 무게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눈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세찬 빗줄기 꽂히는 아스팔트를 쪼아대는

비둘기의 투쟁과

몇 알 좁쌀을 입에 물고

무소유의 집으로 돌아가는

콩새가 전해주는 무언의 감사와

꽃도 아니라고 코웃음 치던 들판에

십자가처럼 피어나는 개망초의 용서가

아직 뜨거운 심장에 한 장의 편지로

내려앉을 때

눈물은 오늘을 사는 나의 양식

오롯이 가식의 옷을 벗는

영원으로 가는 첫걸음

지상에서 배운 첫 낱말

혼자 울 때

아무도 호명하지 않은 꽃으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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