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벽
아무도 묻지 않고
나도 묻지 않았다
한 때는 뾰족한 아픔이
새 순으로 돋아오를 때라고
믿기도 하였으나
먼 길을 걸어온
늙은 말 등에 얹힌 짐이
한 줌도 되지 않는 세월의 무게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눈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세찬 빗줄기 꽂히는 아스팔트를 쪼아대는
비둘기의 투쟁과
몇 알 좁쌀을 입에 물고
무소유의 집으로 돌아가는
콩새가 전해주는 무언의 감사와
꽃도 아니라고 코웃음 치던 들판에
십자가처럼 피어나는 개망초의 용서가
아직 뜨거운 심장에 한 장의 편지로
내려앉을 때
눈물은 오늘을 사는 나의 양식
오롯이 가식의 옷을 벗는
영원으로 가는 첫걸음
지상에서 배운 첫 낱말
혼자 울 때
아무도 호명하지 않은 꽃으로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