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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 뜰에 찾아온 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3. 21. 18:16

국립중앙박물관 뜰에 찾아온 봄

[김민철의 꽃이야기]

<207회>

입력 2024.03.19. 00:00업데이트 2024.03.19. 14:36
 
 
 

지난 주말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뜰과 ‘오솔길’엔 봄기운이 완연했습니다. 양지바른 곳이라 그런지 다른 곳보다 봄이 일찍 찾아온 것입니다.

먼저 박물관 앞뜰엔 매화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이곳 뜰에는 꽃받침이 붉은색인 백매도 있었지만 꽃받침이 연두색인 청매가 많았습니다. 이곳 매화가 피었으니 청계천 매화거리, 봉은사, 낙선재 등 다른 서울 매화 명소에도 꽃이 피었거나 곧 필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매화.

산수유도 노란색 물을 들였고 양지바른 곳엔 벌써 진달래도 피어 있습니다. 기상정보업체 웨더아이는 올해 진달래의 개화 시기가 전국적으로 평년보다 1~5일 정도 빠를 것이라며 서울에선 29일 이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이 예상보다 빨리 핀 것입니다.

화단엔 자잘한 하얀색 돌단풍 꽃이 피고 있습니다. 돌단풍은 원래 심산유곡에서 피는 야생화였습니다. 주로 맑은 물이 흐르는 산 계곡의 바위틈에서 자랍니다. 요즘엔 공원 화단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야생화에서 관상용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꽃 중 하나입니다. 서울 남산둘레길 실개천 돌 틈에도 돌단풍을 많이 심어 놓았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돌단풍.

돌단풍은 꽃이 피면서 잎도 펼쳐지는데, 다섯 혹은 일곱 갈래로 갈라져 있는 것이 꼭 단풍잎 모양을 닮았습니다. 돌 틈에서 자라고 잎이 단풍잎 모양이라고 이름이 돌단풍입니다.

개나리 비슷하지만 하얀 꽃이 피는 미선나무 꽃도 피기 시작했습니다. 미선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 식물입니다. 예쁜 이름은 열매의 모양이 둥그스름한 고급 부채 미선(尾扇)을 닮았다고 붙인 것입니다. 희귀식물이었지만 요즘엔 증식을 통해 많이 퍼져서 수목원은 물론 고궁이나 공원에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미선나무.

멀리서보면 산수유와 구분이 어려운 생강나무도 꽃이 피었습니다.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노란색 꽃이 핍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생강나무는 짧은 꽃들이 줄기에 딱 붙어 뭉쳐 피지만, 산수유는 긴 꽃자루 끝에 노란 꽃이 하나씩 핀 것이 모여있는 것이 다릅니다. 색깔도 산수유가 샛노란 색인 반면 생강나무는 연두색이 약간 들어간 노란색으로 좀 다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생강나무.

나무 줄기를 보면 보다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생강나무는 줄기가 비교적 매끈하지만 산수유 줄기는 껍질이 벗겨져 지저분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생강나무는 산에서 자생하고, 산수유는 대부분 사람이 심는 것이기 때문에 산에서 만나는 것은 생강나무, 공원·화단이나 인가 주변 등 사람이 가꾼 곳에 있는 나무는 산수유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박물관 숲길인 ‘오솔길’로 접어들자 올괴불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연분홍색에 빨간 발레 토슈즈(toeshoes)를 신은 듯한 작은 꽃이 매달리듯 피어 있습니다. 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아닌데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꽃을 보다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이른봄 숲에서 생강나무꽃이 필 때 피는 꽃입니다. 올괴불나무라는 이름 자체가 꽃이 일찍 피는 괴불나무 종류라는 뜻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올괴불나무 꽃.

올괴불나무 비슷한데 빨간색 대신 노란 토슈즈를 신은 꽃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꽃은 길마가지나무 꽃입니다. 올괴불나무가 주로 중부 내륙에 분포한다면 길마가지나무는 주로 남쪽지방에 살고 있습니다.

히어리 꽃도 피었습니다. 이 꽃은 잎이 달리기 전에 특이하게 생긴 노란색 꽃차례가 아래로 처지면서 핍니다. 미선나무처럼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귀한 식물이었는데, 요즘엔 서울 공원 등에서도 관상수로 심어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히어리는 외래어가 아니라 순우리말입니다. 전남 순천 자생지 근처의 주민들이 이 식물을 히어리라고 불렀다는데 여러 설(說)만 무성하고 정확한 유래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히어리.

오솔길 한쪽에 꼬리 모양의 긴 노란색 수꽃이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나무도 보입니다. 요즘 산에 가면 볼 수 있는 개암나무입니다. 개암나무는 한 나무에서 수꽃과 암꽃이 따로 핍니다. 꼬리 모양의 길쭉한 것이 수꽃이고, 잘 찾아보면 작고 붉은 암꽃도 있습니다. 암꽃은 꼭 아주 작은 진분홍 말미잘 모양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개암나무 암꽃(가운데)과 수꽃.

개암나무 암꽃은 정말 작아서 초점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개암나무 꽃이 피면 봄바람이 심술이 나는지 꽃이 핀 가지도 가만 있지 않습니다. 초점 맞는 사진을 건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이유입니다. 가을에 익는 개암나무 열매는 열매를 감싸는 포가 짧아서 열매가 드러납니다. 열매는 밤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개암이 ‘개밤’에서 변한 것이라고 합니다. 보통 ‘개’라는 접두어가 붙으면 ‘질이 낮다’라는 뜻이 있는데 ‘밤보다 질이 떨어지는 열매’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뜰과 오솔길에서 요즘 산에서 볼 수 있는 웬만한 야생화는 다 본 것 같습니다. 누가 설계했는지 참꽃나무, 참빗살나무, 송악, 채진목, 노각나무, 개회나무, 꽃개회나무 등 우리 자생종들을 적절한 위치에 적절하게 심어놓았습니다. 서울 시내에, 수목원도 아닌 곳에 이렇게 다양한 우리 꽃과 나무가 있다니 놀랍습니다. 참꽃나무나 꽃개회나무 꽃이 필 즈음 꼭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