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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호열의 시와 토크 2024

문학의집 서울, 2024년 2월 "이 작가를 말한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3. 3. 23:09

 팜플렛 표지

<나호열 시인과의 대화 -

정병근 시인

나호열 , 정병근 시인

 

문학의 집 서울 수요문학광장 202 이 작가를 말한다. 나호열 시인

 

대담 : 정병근

1. 안녕하세요. 그저께 뵙고 또 뵙네요. 선생님의 최근 근황을 듣고 싶습니다. 도봉문화원에는 지금도 나가시죠?

 

그렇군요, 중랑천을 사이에 두고 정시인은 뚜벅이, 저는 거닐리우스로 우연히, 자주 만나네요, 한 동네에 오래 살다보니 연구소장이라는 직함으로 도봉문화원에 출근아닌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문화콘텐츠 개발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요

 

2. 재작년에 칠순을 맞으셨는데요. 인생의 감회가 있을 법합니다. 태어나고 살아오신 이력과 원가족사에 대해 간략히 말씀해주세요.

 

정시인께서 말씀하신대로 평범한 검수黔首로 , 그러나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지기를 소망하면서 종심에 다다랐네요. 아마도 어린 시절 가정이 해체되고 제멋대로(?) 살아온 것이 오늘의 자유분방함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후회는 없습니다.

 

3. 선생님은 건국대 철학과를 졸업하시고, 경희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셨네요 특별히 철학을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시인의 길을 걷게 된 동기도 말씀해주세요.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625 당시 공산당의 린치로 인한 후유증), 가난과 겹친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어졌는데, 전혀 잘못된 생각인데 ~~ 철학 공부를 하면 그 대답을 얻을 수 있다고 짐작한 것 같습니다. 철학의 목표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찾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런 공부를 해서인지 학문적 업적은 없어도 논리적 사유를 할 수 있는 힘은 있습니다. 요즘의 정쟁을 보면 논쟁이 아니라 그저 이전투구인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런 생각이 보다 감성이 요구되는 시쓰기와 길항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요. 저는 문재 文才는 없고, 사회적 동물로 드러나는 표면의 자아와 순수한지는 모르겠으나 내면의 자아가 마주치는 지점에서 나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욕망이 저의 시쓰기의 추동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4. 사모님도 시인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사모님과는 어떻게 만나셨는지요?

 

국문학을 전공했고, 저보다도 먼저 등단을 했습니다. 80년대말 문단의 여러 아름답지 않은 행태( 지금도 그렇지만)를 마주하면서 오래 발 딛을 곳은 아니구나 생각하고, 1989년에 시집 <<쓸쓸한 곰팡이를 아십니까>>, 저는 <,담쟁이넝쿨은 무엇을 향하는가>>를 출간하고 그해 7월 앰버서더호텔 그랜드볼룸을 빌려 멋있게 출판기념회를 하고 문단을 떠났습니다. 고향은 하동이지만 학교를 부산에서 다닌 탓에 부산지역의 문학회 회원으로 동인지에는 작품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제 친구의 후배로 만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아직도 제가 시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내의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5. 선생님은 1986년도에 《월간문학》으로 등단을 하셨고, 3년 후에 《시와시학》으로 한 번 더 등단을 하셨습니다. 시력 38년 동안 20여 권의 시집을 상재하셨는데요. 단순하게 나누면 1년 6개월마다 시집을 내신 거니까 다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작에 대한 신념이나 이유 같은 것이 있으신지요?

1989년 첫 시집을 내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철학공부를 더해 볼까 했는데요, 1990년인가, 제가 근무하던 학교 국문과에 김재홍 문학평론가가 부임해 오셨습니다. 어떻게 아셨는지 연락이 닿았습니다. 요즘도 시를 쓰냐고 물으셨는데 혹시 써놓은 시가 있으면 봤으면 하시더군요, 펜을 놓긴 했지만 그동안 써놓았던 60여편의 시 - 최준, 이재호(작고) 시인과 테마 시집을 낸 적이 있고 - 를 보여드렸습니다. 마침 김재홍 교수님의 스승이신 정한모 선생께서 급서하셔서 어쩔 수 없이 <<시와 시학>>창간을 맡게 되었다고 하셔서 잠깐 창간 작업을 도와 드린 적이 있습니다. 많은 오해가 있었지만 저는 재등단의 의사도 없었는데, 다시 시작을 시작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시면서 이미 등단한 지 몇 년이 지났으므로 중견시인상이라는 타이틀을 주셔서 시와 시학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 때 신인상을 남원의 복효근시인이 받았구요, 심사는 오세영교수가 하셨구요, 시상식은 성대했습니다. 한국일보 송현클럽인가요. 미당선생도 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앞에서 잠시 말씀드렸듯이 시인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인격체라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는 욕망의 덩어리라는 판단을 하게 되면서 나의 시쓰기는 팜플렛에 기술한 바와 같이 爲己之學, 즉 나의 욕망을 제어하는 하나의 수단으로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문학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오로지 위선에 허덕이는 나 자신을 드러내고 배설하면서 쓰는 일기!일 쁜이라고 지금도 굳건히 믿고 있습니다. 에고이스트라고 비난받을 수 있겠으나 독자를 위해서 쓰지는 않습니다. 인간 일반에 대한 불신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인간의 본질에 대한 향수가 커지는 것은 아닐까요

 

 

6. 선생님의 시에는 고독과 쓸쓸함이 깊게 배어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시선집 『울타리가 없는 집』의 해설에서 '고독과 쓸쓸함은 나호열 시인의 특징을 이루는 두 축'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이런 시적 자아를 형성하는데 특별한 영향을 받은 환경이 있는지, 왜 고독한지, 왜 쓸쓸한지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피치 못할 가난과 친족으로부터 받는 멸시는 저에겐 분노와 증오보다는 원래 인간은 그렇다는 긍정의 태도를 강화시킨 것 같습니다. 고독은 개별자로서의 나는 죽음이라는 절대절명의 질문에 해댭을 내놓을 수 없는 가련한 존재임을 자각하는데서 비롯되는 깨달음이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외로움은 사회적 존재로서 타자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때 드러나는 심리적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고독할 수밖에 없고요, 그런 고독한 자신을 바라볼 때 쓸쓸함이 오는 것이지요

7. 선생님의 시선집에 실린 시 중에서 <후일담>이라는 시가 눈에 띄었는데요. 제가 그 시를 낭독한 후에 질문을 이어가겠습니다.

 

후일담(後日譚)

 

어떤 사람은 나를 쇼핑카트라고 불렀고

어떤 사람은 짐수레라고 나를 불렀다

무엇이라 불리든

그들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나는 기꺼이 몸을 열었다

내 몸에 부려지는 저 욕망들은

또 어디서 해체되는 것일까

지금 나는 더 이상 열매 맺지 못하는

살구나무 아래 버려져 있다

탈출이 곧 유배가 되는

한 장의 꿈을 완성하기 위하여

나는 너무 멀리 왔다

누가 나를 호명할까봐 멀리 왔다

뼛속에서

한낮에는 매미가 울었고

밤에는 귀뚜라미가 우는

풀섶 어디쯤

               - 시집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시인동네 시인선 ,2017)

 

ㅡ 이 시는 선생님의 현 위치와 실존적 회한이 일깨우는 고독과 쓸쓸함의 정서가 잘 드러난 시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시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단독자(개별자)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회적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대형 마트의 쇼핑카트는 많은 물품을 담을 수 있습니다. 이 쇼핑카트는 중의적 의미로 욕망을 담는 도구인 동시에 욕망 그 자체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쇼핑카트는 타자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한 존재로서의 나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무한한 부를 축적히는데 필요한 쓸쓸한 도구일 수도 있겠지요. 토사구팽이라고나 할까요. 사실 쇼핑카트는 매장밖으로 가져갈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동전을 넣어야 시용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카트를 집까지 가져갑니다. 절도인 셈이죠. 한 마디로 규정을 어기는 것인데 손님이 떨어질까봐 대형 마트들은 그런 일들을 눈감아 줍니다. 수많은 법을 만들면 무엇합니까? 지키지 않으면 그만인 심리가 대중이라는 괴물에 이입되어 있는 냉소적 현실에 저는 분노합니다. 풀밭에 버려진 양심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8. '요즘 시'들은 어려워서 읽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전문 독자라고 할 수 있는 시인들조차 이해하기 버거워합니다. 이른바 '시의 난해화'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20세기 이후의 문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습니다. 상징적으로 현미경으로도 세상을 보고, 광학 망원경으로 아주 먼 우주를 관찰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와 같은 발견과 발명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사는 이곳이 불확정적이고 카오스의 세계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한 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미래에 대한 확고한 전망을 가질 수 없고, 그만큼 불안한 부조리에 맞부딪치고 있습니다. 프로이드가 제시한 무의식은 우리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괴물의 관념이 아닐까요. 파편화된 의식을 토로하려면 많은 시적 장치가 필요하겠지요. 저는 시의 난해성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시는 글자를 해독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상과 상상력이 필요한 현대무용과도 유사하다고 봅니다.

 

다만 자신의 생활 체험과 유리된 채, 시 구성의 논리성이 결여된 시는 난해시의 범주에 들 수 없을 것이고 한갓 유행을 추수하는 말장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9. 젊은 시인들이나 시를 배우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예술의 응전방식이 달라질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경향성이라고 할까, 시류라 할까 ... 그러나 자신의 체험이 결여된 시작 은 삶에 대한 겉핥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상식을 벗어난 자아에 대한 탐구, 그로부터 시작되는 세계관의 정립, 그리고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갖기 위해 문장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10. 우리나라 시인 중에서 선생님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시인은 누구입니까?

 

명멸하는 수많은 선대 시인 중에서 자신의 인격을 담보하며 지행병진의 내성을 추구하는 시인, 또 끊임없이 시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승훈 시인의 초기시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명편 한 작품만 고르라 한다면 이동주 시인의 시선집『散調』(1979)에 실린 「강강술래」를 꼽습니다. 시인이 병상에서 구술한 시 30 편 은 고독한 방랑자의 포즈가 은연중 드러나고요. 그는 스스로 박복한 존재라고 술회하면서 자신의 일에 성공한 바가 없다고 되뇌이기도 합니다. 남도의 유장하고 낭창한 한의 정서를 우리의 가락에 실은 시편들은 깊은 차맛이 나지요. 이 시는 숨 막히는 역동을 느끼게 하는데. 군무의 내면에 꿈틀대는 민중의 애환과 울분을 간결한 시각적 이미지와 운율로 포착해낸 솜씨는 두고두고 음미하여도 슬픔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증명해주고도 남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현대시가 잊거나 잃어가고 있는 시의 운율이 결코 지난 시절의 고답한 시류가 아니라 언제까지나 공고하게 지켜나가야 할 우리 말에 대한 사랑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가끔씩 곁눈질하게 되는 산문화되고 문법을 해체한 현대시의 조류에 흔들리지 않고 서정의 원류가 소리글자인 한글에 어우러지고 있음을 놓치지 않고 있음은 보게 됩니다.

 

여울에 몰린 銀魚떼

 

가응 가응 수워얼래이

 

목을 빼면 서름이 솟고

 

白薔微밭에

孔雀이 취했다

 

뛰자 뛰자 뛰어나보자

 

강강술래

 

뉘누리에 테프가 감긴다

열두발 상모가 마구 돈다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갈대가 스러진다

旗幅이 찢어진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 강강술래전문

 

 

오늘날의 현대시가 잊거나 잃어가고 있는 시의 운율이 결코 지난 시절의 고답한 시류가 아니라 언제까지나 공고하게 지켜나가야 할 우리 말에 대한 사랑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가끔씩 곁눈질하게 되는 산문화되고 문법을 해체한 현대시의 조류에 흔들리지 않고 서정의 원류가 소리글자인 한글에 어우러지고 있음을 놓치지 않고 있음은 텅 비어가는 서가에 꼿꼿이 자리하고 있는 옛 선비의 풍모가 죽비처럼 서늘하기 때문입니다.

 

11. 이번에는 선생님의 시중에서 선생님께서 제일 좋아하는 시 1편을 소개해주시고 낭독해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낭독 전후에 시를 쓰게 된 동기나 메시지 등을 곁들여 설명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듣게 되는 '당신의 대표시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은 당혹스럽습니다. 반 세기 가까이 써온 수 천 편의 시가 모두 대표시라고 할 수도 있겠고요, 그 반대로 단 한 편도 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어째든 한 편을 고르라하니 다음 시를 내보입니다.

 

아침에 전해준 새 소리

죽지 않을 만큼만 잠을 잔다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죽지 않을 만큼만 꿈을 꾼다

죽지 않을 만큼만 말을 하고

죽지 않을 만큼만 걸어간다

그래야 될 것 같아서

누군가 외로울 때

웃는 것조차 죄가 되는 것 같아서

그래야 될 것 같아서

아, 그러나,

그러나

모든 경계를 허물지 않고

죽지 않을 만큼만 사랑할 수는 없다

누구나 말하지 않는가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고

나는 그 끝마저도

뛰어넘고 싶다

          - 시집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2001 포엠서정시선 , 포에토피아)

 

 

모든 예술은 영원성을 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인간계에서 신의 세계로 초월해 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사즉생의 의지가 담보되어야겠지요. 그러나 저는 늘 그 문턱에서 주저앉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아침 나무가지를 오가는 새의 목소리를 들으며 노래하는 것도, 울고 있는 것도 아닌, 소통의 간절함을 그 소리에서 느끼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기에 늘 백척간두에서 되돌아 나오는 자신을 자책하는 시로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ㅡ 잘 들었습니다. 이 시는 선생님이 살아오신 인생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을 담고 있는 시로 읽히는데요. '죽지 않을 만큼만 잠을 자고,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죽지 않을 만큼만 꿈을 꾸고, 죽지 않을 만큼만 말을 하고, 죽지 않을 만큼만 걸어간다'는 표현이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12. 선생님은 움직이는 검색창으로 불릴 만큼 박학다식을 겸비한 입담꾼으로 소문이 자자한데요. 주위사람들이 지루해하거나 짜증을 내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만 모르고 계실 수도 있겠네요.) 선생님의 이런 기질과 습관에 대해 자아비판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하는 세계에 둔감해지면 시적 감각 또한 무뎌질 수밖에 없습니다. 박학다식은 시인에게 필요한 조건이 아닐까요? 말이 없으면 사람 사이가 건조해지고 말이 많으면 듣는 이는 지루해집니다. 사실 저는 단답형의 기질을 가지고 있고요, 마음 편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불편해 합니다. 많이 아는 것이 자랑이 될 수 없고요. 아마도 교단에서 딱딱한 철학 이야기를 집중력있게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개발 아닌 계발을 하게 된것이 늘어난 입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린 학생들은 잠깐이라도 말을 멈추게 되면 자세가 흐트러지거든요.

 

13. 선생님은 실제 나이보다 젊어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들으시죠? 머리카락도 안 빠지시고.제가 봐도 10년은 어려보이십니다. 특별한 건강비결이나 생활신조가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마라톤도 몇 번 완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 3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왔습니다. 젊어보이는 까닭은 한 마디로 아직 철이 안들었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철들고 싶지 않아요. 마라톤도 해왔는데 60 이후로는 뛰는 것은 무리라 걷기만 합니다. 그러고보니 정시인과 저는 오늘도 걷게 될 것 같군요

 

14. 시작 활동과 관련한 향후 계획이나 각오를 말씀해주세요.

 

어느 후배 시인이 정년을 맞이하면서 이제는 더 쓸 것도 없다고 하더군요. 창조성이 결여된 동어반복의 시편들은 아까운 나무들을 베어내는 고약한 일이라는 뜻이겠지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찔리더군요. 그래도 지난 해부터 십여년 전 영월 창령사지 에서 발굴된 나한상을 접하며 든 생각이 있습니다. 나한은 깨달음을 이루고도 이 세상에 남아 구제의 도를 실천하는 존재들이죠. 우리나라에도 나한전으로 유명한 절집이 많습니다. 대부분 근엄하고 화려한 나한상들인데 창령사지에서 발굴된 나한상은 장삼이사의 얼굴을 하고 다채로운 희로애락의 표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나한상을 친견하면서 '우리 모두가 갑인 동시에 을이며, 무등 無等을 꿈꾸는 나한이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108편의 나한 연작시를 썼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연마한 후에 인연이 닿으면 시집으로 꾸며볼까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15. 오늘 제가 준비한 질문은 여기까지고요. 청중께서 낭독하는 나호열 시인의 시 <북>을 감상하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북은 소리친다

속을 가득 비우고서

가슴을 친다

한 마디 말 밖에 배우지 않았다

 

한 마디 말로도 가슴이

벅차다

그  한 마디 말을 배우려고

북채를 드는 사람이 있다

북은 오직 그 사람에게

말을 건다

한 마디 말로

평생을 노래한다

 

-

가깝고 먼 곳에서 찾아와 주신 여러분

표지

 

1.

이 글의 끝의 시는 <북> 전문이 빠졌음

 

관람평

 

문학의집 서울, 2024년 2월 "이 작가를 말한다" 202번째 초대 작가로 나호열 시인의 대담 현장을 찾았다.

2024년 2월 28일 수요일 오후3시에 문학의집 강당에서 정병근 시인의 대담 진행으로 시작된 이날 현장은 80여 명의 독자들이 참석해 나호열 시인의 솔직한 시인의 세계를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디지털 시대에 문학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최근의 문단 상황을 생각하면 작지만 소중한 소통과 공감의 자리였다.

이날 나호열 시인은 "시는 자신에게 던지는 고독이고 자아이다"라고 밝히고 시를 쓰는 심경을 고백했다. 정병근 시인은 "고독과 쓸쓸함이 두 개의 축을 이루어 시적 자아를 이끌어 가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과 함께 "요즘 시가 어렵다고 하는데 시를 어떻게 써야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 물었다.

나호열 시인은 "시는 나 자신을 향해 가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그들만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기에 그들의 시적 취향을 존중해줘야 한다.

다만 한글의 리듬감 운율을 생각하는 시를 쓰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밝히고 앞으로도 "자만하지 않고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시인이 되겠다고 맺음말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는 대표시 '후일담'과 '북'을 낭독하며 참석한 독자들과 시로 소통하는 울림의 시간을 이어가 잔잔한 감동을 선물했다.

 

- 계간 시와 징후 발행인 시인 김남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