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업 130번 80대, 오늘도 허탕 60대, 눈 탓 눈 못 붙인 50대…대한민국 새벽에 무슨 일이
입력 2023.12.30 01:30
업데이트 2023.12.30 22:4
SPECIAL REPORT
지난 25일 새벽 경기도 고양시 차량 기지에서 차만석씨가 헤드라이트를 조정하며 제설 작업 준비를 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화이트크리스마스였습니다. 차만석(59)씨는 제설 차량(개인 소유)에 올랐습니다. 그는 고양시청 제설 하청을 받은 회사의 직원입니다. 시동을 켜고, 헤드라이트 각도를 조정했습니다. 삼날(제설 차량 앞에 달려 눈을 도로 가장자리로 미는 장치)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점검했습니다. 그는 지난밤 11시부터 5시간째 ‘대기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고, 날밤 새우겠네”라며 웃었습니다.
“새벽 아니면 못하는 일이에요.” “새벽에 나가야 한 푼이라도 더 벌죠.” “새벽에 나가야 마음도 몸도 편해요.” 지난 한 달여 간 ‘새벽’에 들은 말들입니다.
새벽은 밤과 아침의 경계입니다. 어제와 오늘의 접경입니다. 좀 더 확장하면, 묵은 지난해를 살피고 밝아오는 새해를 바라보는 완충의 시간대입니다. 그 새벽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중앙SUNDAY는 곳곳을 두루두루 다녔습니다. 22세 편의점 알바는 청년실업, 80세 경비원은 정년 연장, 75세 폐지 줍는 노인은 노인문제…. 이렇게 ‘새벽을 여는 사람들’ 수십 명이 안겨준 문제도 짚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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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지난 2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제설 차량 기지. 차씨는 컨테이너를 개조한 대기 공간에 들어갔습니다. 지난 한 주간 세 번째 컨테이너 신세를 집니다. 일단 출동하면 안 될까요. 유근영(50) 반장이 말합니다. “보통 나가면 염화칼슘 8t을 뿌리는데, t당 40만원이니까 300여 만원이고 제설 차량이 (고양시에) 90대니까 한 번 출동하면 2억5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제설로 얻는 안전도 중요하지만, 자칫 ‘세금 살포’가 될 수도 있어 타이밍을 잘 판단해야 한다”라고요. 차씨는 “아이고, 날밤 새우겠네”라고 했지만, “덕분에 술도 안 마시고 몸이 가볍다”라면서 웃었습니다. 더디게 가는 어둠의 시간을 긍정으로 버티는 거겠죠. 기자는 차씨 일행과 컨테이너에서 옹기종기 겨울의 새벽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동틀 무렵인 오전 7시, 우리는 자유로로 출동했습니다. 대기 8시간 만이었습니다. 차씨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날도 밝았습니다.
새벽 앞에는 ‘꼭두’가 붙어, 극한의 시간대임을 비유하기도 합니다. 힘든 시간임이 분명합니다. 천상병 시인이 말했지요. ‘새벽은 차고 으스스 하지만/동쪽에서의 훤한 하늘빛/오늘은 시작되다(시 ‘새벽’ 중).’
“일이 거의 끝나고 있어요. 벌써 (오전) 5시네요.”
지난 12월 19일 오전 5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 음식점에 식자재 배달을 온 정규빈(32)씨는 ″전날 오후 11시에 시작해 50여 곳을 들르는 일이 이제 끝을 보고 있다″며 미소를 짓고 있다. 식자재로 가득했던 그의 트럭 적재함이 정말 끝을 보고 있었다. 김홍준 기자
지난 19일 만난 정규빈(32)씨는 고양시 곳곳의 음식점 문을 열고 식자재를 냉장고에 넣어줬습니다. 50곳에 이르렀습니다. 대전에서 올라온 그는 오후 11시 경기도 시흥에서 식자재를 싣고 왔습니다. 몇 개 남지 않은 식자재 상자를 옮기며 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습니다. 그는 1인 사업자로 생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편의점 알바생 윤동현(22)씨는 아직 안갯속입니다.
어제와 오늘 경계의 삶을 밝히다…드러나지 않지만 꼭 있어야 할 곳 지키는 그들
16일 오전 2시경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윤동현(22) 씨가 새벽 근무 중 자신이 근무하는 편의점을 바라보고 있다. 최기웅 기자
지난 16일 오전 2시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 북한산 밑자락의 한 편의점에서 윤동현씨가 동네 어르신이 낸 커피 값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윤씨는 지난 1월 제대했습니다. 그리고 취업문을 두드렸습니다. 경찰이 되고자 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올해 1차 경찰공무원 공채 경쟁률은 18.4:1에 달했습니다. 11월 고용동향을 보면 청년층의 실업률(5.3%)은 역대 최저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단기 계약직 일자리가 늘어나 고용 안정성은 되레 낮아졌을 수도 있다는 분석입니다. 통계청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올해 3월 근로 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인 청년층 상용 근로자(249만3000명)는 전년 동월 대비 4만5000명 감소했습니다. 반면 계약 기간 1개월 이상∼1년 미만인 청년 임시직(106만8000명)과 계약 기간 1개월 미만인 청년 일용직(13만8000명)은 각각 1만3000명, 1만명 남짓 늘어났습니다. 윤씨는 이번에는 교정직 공무원(교도관) 시험을 준비 중입니다. 편의점에서 관련 서적이라도 보고 싶지만, 그는 “집중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새벽에 취객이 들어와 “커피 타 와라”라거나 “외상 해줘라”고 떼를 쓰기 때문일 듯도 합니다. 그는 미소로 대응한다고 했습니다. 윤씨와 헤어진 뒤, ‘팔팔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나 아직도 힘 좋아. 더 일할 수 있어.”
새벽 퇴근 중에 팔굽혀펴기 130회를 하고 있는 80세 경비원 박성경씨.그는 당초 100회만 하려고 했지만 취재진 때문에 30회를 더 했다. 김홍준 기자
고속철도(KTX) 행신역 앞에서 박성경(80)씨가 버스를 기다리며 팔굽혀펴기를 했습니다. 무려 100회째였습니다. 그는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퇴직한 뒤 일을 안 하니 몸도 마음도 기울어져 가는 것 같아 아파트 경비 일을 하다가 빌딩 경비로 옮겼다”고 했습니다. “내 팔뚝을 만져봐라. 대단하지 않으냐. 사람은 일해야 한다”는 이 팔팔한 노인은 오전 5시30분에 퇴근 중이었습니다. 노인의 기준은 만 65세입니다. 정년은 60세입니다. 법정 하한선입니다. 박씨 같은 팔팔한 노인이 많아 정년 연장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공개된 국민일보·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1033명 중 61%는 법정 정년을 ‘61세 이후로 연장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복귀하면서 정년 연장을 최우선 논의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죠. 정년을 5년마다 한 살씩 늘려 2033년까지 65세로 올리자는 겁니다.
지난 12월 20일 새벽 서울 강남역 앞에서 눈을 치우고 있는 미화원. 김홍준 기자
박씨 같은 ‘정년 연장’과 윤씨 같은 ‘청년 취업’은 서로 따라다닙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인구학적으로 정년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진단합니다. 하지만 송 교수는 “새로운 인력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사라지는 것이라, 완충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 “일률적으로 하면 사회·경제적 비용이 많이 들어 직종·직능 별로 차이를 둬야 하는데, 이 경우 차별로 인식될 수 있어 합의가 도출될 수 있는 과정을 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업들은 정년 퇴직자 재고용을 통해 정년 연장의 대안도 제시합니다. 지난 15일 오전 5시33분 서울 대림역 첫 차를 타고 경기도 이천의 SK하이닉스로 출근하던 김모(64)씨가 그런 경우입니다. 그는 “기술직으로 근무하다가, 2년 전 퇴직한 뒤 계약을 연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박씨는 “82세까지는 일하겠다”고 합니다. 그의 팔굽혀펴기는 130회를 넘었습니다. 하지만 일은 마음만으로 되지는 않는 걸까요.
“요즘 열 번 나와 한 번 (일을) 나갈까 말까 하네. 오늘도 허탕이구먼.”
지난 12월 27일 오전 5시30분 경 서울시 1호선 남구로역 근처 인력시장에서 일감을 구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원동욱 기자
지난 27일 오전 5시30분.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4번 출구 앞에는 200여 명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정만(63)씨는 일주일째 일이 없습니다. 그는 “요즘 일 나가는 건 하늘에 별따기”라고 했습니다. 그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60대 허모씨도 “4시30분부터 나왔는데…완전 서바이벌 게임”이라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씨는 “30분만 더 기다리겠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년에는 건설 경기가 좋아져서 일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네”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건설 시장은 얼어 붙었습니다. 고금리와 자재비 상승 때문입니다. 아파트 등 주택 착공 물량은 올해 들어 10월까지 14만1595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33만997가구)보다 57.2% 급감했습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2024년 건설수주가 전년 대비 1.5% 감소한 187조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이란 폭탄도 있습니다. 이씨의 바람이 이뤄질까요. 아니면 마음에 품고 있던 실업급여를 신청할까요.
올해 초 출범한 고용보험개선 TF는 지난 21일 마지막 회의를 끝으로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습니다. 특히 실업급여가 논란입니다. 최저임금의 80%를 보장하는 하한액을 폐지하거나, 조정하는 방안이 나오고 있는데,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습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는 “실업급여는 구직자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유일한 생활자원”이라며 “제도 정비는 하되, 노동시장의 현실과 동떨어지면 안 되고 요건을 강화해서 구직에 대한 열망이나 노력이 감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씨는 “한 번이라도 일터에 나가는 게 실업급여를 받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낫다”며 구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에서 2년 예정으로 건설 중인 지축지식산업센터 건설 현장. 지난 12월 27일 오전 6시 작업자들이 지축역 방향에서 창릉천을 건너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12월 27일 동이 트자마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 건설현장에서 직원들이 타워크레인에 올라 작업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같은 날 오전 6시 고양시 동산동에서는 일꾼들이 내년 4월까지 예정된 지식산업센터 공사 현장으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박건우(26)씨는 “쉬지 않고 큰일을 맡아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제법 큰 건설현장의 새벽 불빛이 찬란했습니다.
새벽 연탄불이 밝았습니다. 서울 영등포 쪽방촌입니다. 이병건(67세·가명)씨는 작은 가게를 꾸리고 있습니다. 그의 하루는 새벽 연탄불 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쪽방촌의 겨울은 춥습니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집들이 많기 때문이죠. 새벽은 더 춥습니다.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낮은 시각이 바로 취재진이 찾은 오전 5시~6시 사이입니다. 이씨는 “경기가 안 좋아서 우리만 힘든 게 아닐텐데 뭐. 그래도 몸 누일 집이 있는 게 어디냐”고 되물었습니다. 한 평 남짓한 크기, 목조 건물 43.2%, 부엌 없음 68.8%, 샤워실 없음 69.8%, 평균 거주기간 12년…. 2020년 서울시 실태조사에서 나온 쪽방의 주소입니다.
지난 12월 27일 오전 6시 경 서울시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에서 한 주민이 새벽길에 나서고 있다. 원동욱 기자
#“뭘 힘들게 일해요. 그럴 필요도 없고.”
유통업을 하는 정모(57)씨는 이제 새벽 작업을 안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품귀 현상으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던 2020년 상반기 8억원을 들여 마스크 제조 설비를 설치했습니다. 그러다가 오히려 마스크가 넘쳐나면서 헐값에 설비를 팔았습니다. 정씨는 “그때의 타격을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영업자 비중이 역대 최저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장사를 접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겁니다. 지난 10월 자영업자는 573만3000명으로, 전체 취업자 수 2939만명의 19.5%. 올해 들어 자영업 비중이 20%를 밑돈 건 2월(19.98%), 3월(19.86%), 9월(19.96%)에 이어 네 번째입니다. 자영업자 비중은 코로나19 유행 때도 20%대를 유지해왔지만, 고금리가 이어진 올해부터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올해 6월 말 기준 전국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743조9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177만8000여 명의 자영업 다중채무자가 1인당 평균 4억1800만원의 대출을 갖고 있는 것이죠.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개인택시 기사 박성재(41)씨도 자영업자입니다. 그는 새벽 4시에 출근합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만난 법인택시 기사 고덕일(65)씨는 오전 5시에 퇴근 중이었습니다. 이들처럼 새벽에 일하는 사람은 대체 몇 명일까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밤 근무 근로자의 비율은 9.4%입니다. 여기서 ‘밤 근무’는 ‘오후 10시부터 오전 5시까지 2시간 이상 근무한 경우’로 규정합니다. 단순히 전체 취업자 수 2939만명을 놓고 계산하면 279만명입니다. 하지만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밤 근무, 새벽 근무 근로자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업종별로는 장치·기계 조작 및 조립 종사자(22%)가 가장 많습니다. 서비스 종사자(15%), 단순노무 종사자(11%)가 그 뒤를 잇습니다. 사전적 의미의 ‘새벽’과는 조금 다릅니다만, 새벽으로 이어지는 시간대를 포함하고 있어서 근무의 연속성을 고려하면 ‘새벽 근무’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부산 공동어시장에서 만난 어선 선원들처럼 말이죠.
지난 12월 20일 오전 3시 무렵의 부산 자갈치시장. 상인 정민숙(가명·61)씨는 ″오전 2시 경에 나와 마트에 보낼 어패류를 트럭에 실어 보내고 5시에 경매에 참여했다가, 9시면 하루 일과가 거의 끝난다″고 말했다. 원동욱 기자
손모(59)씨를 비롯한 6명은 지난 20일 자정 직전 함께 부두에 나와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며칠간 강풍으로 출항을 못 해 애가 탔습니다. 그들은 오전 5시에 시작하는 수산물 경매 시간에 맞춰 들어와야 합니다. 새벽 5시에 이 배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던 자갈치시장의 정민숙(가명·61)씨는 이미 3시간 전인 2시에 출근했습니다. 그는 “시계 알람도 안 쓴다. 그냥 눈이 떠진다”고 말했습니다.
#새벽에는 아픔과 신음도 있어
인천에서 출발해 새벽에 제주 앞바다에 닿은 ‘비욘드트러스트호’의 조타실. 김홍준 기자
눈이 내려 화이트크리스마스가 된 지난 12월 25일 오전 5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서 김흥배(75)씨가 폐지를 수거하고 있다. 그는 ″일찍 일어나면 조금이라도 더 번다″며 ″오전 2시부터 8시까지 작업해 하루 7만원을 번다″고 했다. 김홍준 기자
지난 25일 오전 5시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에서는 김흥배(75)씨가 폐지를 1t 트럭에 싣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가득 실어서 팔면 6만~7만원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김씨는 “새벽이 아니면 못하는 일” “새벽에 나와야 한 푼이라도 더 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그나마 사정이 좋은 편입니다. 보건복지부는 28일 폐지 줍기로 생계를 잇는 65세 이상 노인은 4만2000명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이 노인들은 일주일에 6일, 하루에 5시간 넘게 폐지를 주워도 한 달에 고작 16만원을 법니다.
강찬호(33)씨는 자살예방상담센터(전화번호 1393, 내년부터 109번) 사례관리사 6년 차입니다. 그는 유명인 사망 뉴스를 살펴봅니다. 배우 이선균씨의 극단적 선택 때도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5년 전 유명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도 30통 넘게 콜이 남아있던 그때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죠. 강씨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죽고 싶다’ ‘내일 아침 눈을 안 떴으면 좋겠다’입니다. 그는 야간에 평균 10~15통의 전화를 받고, 최소 30분, 길게는 1시간 통화를 합니다. 통계청이 지난 9월 발표한 2022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자살사망자는 1만2906명으로, 2021년보다 446명 감소(3.3%)했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률도 25.2명으로 지난해 대비 3.2% 감소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 이상입니다.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까지 나올 정도죠. 강씨는 “그래도 피상담자가 전화를 끊으면서 ‘감사합니다’ 한 마디가 피로를 싹 녹인다”며 “새해엔 이런 전화가 줄어 더 나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경기도 고양시의 더자인병원은 종합병원 승격을 앞두고 있습니다. 중환자실 구축공사가 한창입니다. 이 병원 홍성민 원장은 “코로나19 때 전담 병원으로 새벽 근무를 했는데 중환자실에서 회복한 환자가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줘 고맙다‘는 편지를 남겼다”며 “새벽 근무가 고되지만 뿌듯함을 느꼈다“고 전합니다. 이제 내년 중환자실을 운영하면서 더자인병원의 새벽은 더 바빠질 것입니다.
지난 12월 19일 오전 5시30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흥국사에서 스님이 사찰 곳곳을 돌며 비로 바닥을 쓸고 있다. 김홍준 기자
체감 영하 20도로 떨어진 지난 19일 새벽, 북한산 흥국사에 한 장년의 여성이 조심스레 발을 옮겨 기도합니다. 올해 수능을 치른 자식이 대학에 꼭 붙도록 말이지요. 스님은 살금살금 발을 옮기며 싸리비로 곳곳을 쓸고요. 새벽 산사의 적막 속 쓰레질 소리가 한 편의 시입니다. ‘단단한 어둠이 밤을 내리찍고 있다/허공에 걸려 있는/칠흑의 도끼/밤은 비명을 치며 깨어지고/빛나는 적막이 눈을 말똥처럼 뜨고 있다(‘새벽 세 시’ 홍해리).’
적막한 산사 바로 밑에는 치열한 삶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오늘(30일) 또 눈이 옵니다. 혹시 자유로에서 제설 차량을 본다면, 차만석씨가 있을 겁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중인 윤동현씨가 계단 위에 쌓인 눈을 치울 겁니다. 김지원(26)씨는 주말에도 을지로3가의 직장으로 출근할지는 잘 모르겠군요.
김지원(26)씨가 서울 을지로3가에 있는 유통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지난 12월 26일 오전 6시 30분 지하철에 오르고 있다. 그는 ″보통 10시까지 출근하면 되는데, 오늘은 여유있게 일 처리를 하기 위해 일찍 출근한다″고 했다. 김홍준 기자
지난 12월 19일 오전 4시, 주민들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이정희 선임연구위원은 “우리가 누군가의 노동으로 일궈진 토대 위에 살고 있다”며 “돈만 주면 끝이 아니라, 그 누군가라는 근로자 역시 안전하고 건강했을 때 나 역시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노동의 가치가 사회에 선순환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여는 새벽의 노동은 아침으로 낮으로, 밤으로 이어져 다시 새벽으로 돌아옵니다.
갑자기 웬 경어체이냐고요? 연말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는 특별하고, 특집이 되는 연말이지만 ‘새벽을 여는 사람들’은 변함없이 뛰고 있습니다. 12월 29일 새벽 4시35분. 이 글을 씁니다.
김홍준·신수민·원동욱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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