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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가난(歎貧)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 8. 14:57

[최영미의 어떤 시]

[85] 가난(歎貧)

입력 2022.08.29. 00:40업데이트 2022.08.29. 00:41
 

안빈낙도(安貧樂道)하리라 작정했지만

막상에 가난하니 그게 안 되네

마누라 한숨 소리에 낯빛을 잃고

굶주리는 자식에게 엄한 교육 못하겠네

꽃과 나무 모두 다 생기를 잃고

책 읽어도 글을 써도 시들하기만

부잣집 담 밑에 쌓인 곡식은

들 사람들 보기에 좋을 뿐이네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송재소 옮김)

/일러스트=박상훈

7행의 “부잣집 담 밑에 쌓인” 곡식은 한시 원문에 의하면 ‘보리(麥)’다. 쌀이라면 모를까 보리를 부러워했다니. 다산의 어려운 처지와 당시의 사회상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난(歎貧)’을 쓰기 1년 전인 1794년에 다산은 경기 암행어사가 되어 연천 지방을 순찰하며 굶주린 백성들을 많이 보았다. 1801년 강진으로 유배 가기 전에 작은 벼슬을 했지만 청렴한 그의 살림은 넉넉하지 않았다. 가난은 죄다. 안빈낙도(安貧樂道)? 가난하면 편안하지 않다. 부양할 처자식도 부모도 없는 고아라면 가난해도 편안할 수 있다.

다산보다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내겐 더 대단해 보인다. 귀양지로 이것저것 보내달라는 다산의 편지를 읽고 그 허다한 잔소리를 견디고, 아비의 편지와 수백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를 보존해 후세에 전해준 자식들이 없었다면 오늘 나는 이런 글 못 쓴다. 벼슬아치들이 다산시선을 정독해 낮은 곳을 살피는 그 마음을 배운다면 세상이 조금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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