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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 창립 멤버 김병익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2. 26. 15:51

1970년 낸 ‘문학과지성’ 창간호… 네 살 아래 김현 “말 놓자”에 깜빡 넘어갔다

[나의 현대사 보물]

[34] ‘문학과지성’ 창립 멤버 김병익

 
김병익 문학평론가는 60년대 당시 ‘우리 사회는 앞으로 어느 쪽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하는 고민을 시작으로 계간지 <문학과 지성>을 통해 순수파를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하며 자신의 첫 번째 보물로 <문학과 지성> 창간호 초판본을 꺼내 보였다. /장련성 기자
입력 2023.12.26. 03:00업데이트 2023.12.26. 10:49
 
 
문학평론가 김병익이 작업실에서 옛 사진이 담긴 앨범을 펼치고 있다. 그는 “1980년대까진 끊임없는 체제의 변란이 있었지만, 이제는 정치적으로 안정됐고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됐다”며 “민족이 치를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역사를 겪었던 만큼 성장·자유·평화에 대한 열망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지난 20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문학평론가 김병익(85)의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종이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허리 높이까지 쌓인 책 더미, 반듯하게 잘린 신문 기사… 종이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집히는 대로 책을 읽어요. 최근엔 ‘지구를 살린 위대한 판결’과 ‘발견하는 즐거움’을 번갈아 보고 있습니다. 기억력이 안 좋아져 제목도 저자도 조금 지나면 잊어버리지만요.”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책 내용을 포스트잇에 적었다가, 컴퓨터로 문장을 옮기는 게 일과다.

김병익의 삶은 독자에서 시작해 독자로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4·19세대의 삶과 한국문단사가 그 안에 있다. 동아일보 5년 차 문화부 기자였던 1970년 문학평론가 김현·김치수·김주연과 함께 계간지 ‘문학과지성’을 창간했다. ‘문지의 4K’로 불렸다. ‘문학과지성’은 언론과 출판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기 한국 지성의 상아탑 역할을 했다. 1974년 한국기자협회장을 맡으며 중앙정보부에 연행됐고, 이듬해 신문사에서 해직됐다. 1975년 4K와 함께 문학과지성사를 설립, 2000년까지 대표를 지낸 뒤 물러났다. 현재 ‘문학과지성사 고문’을 맡고 있지만 그의 명함엔 오직 이름뿐이다. “실제로 직함이 없습니다. 매일 과거를 추억하는 게 소일거리입니다. 낙은 아니고요.”

◇김현 “우리 다음부턴 말 놓지”

평소 오래된 물건을 잘 신경 쓰지 않는 그이지만, ‘문학과지성’ 창간호만큼은 곧바로 찾아냈다. 3000부 인쇄돼 희귀본으로 꼽히는 잡지다. “1970년에 김현이 제게 와서 순수 문학지를 내보자고 하더군요. 1960년대란 시대는 6·25전쟁, 5·16 군사정변을 치르고 우리 사회가 어느 쪽으로 지향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때였습니다. 지식인들의 현실 참여를 이끌었던 ‘창작과비평’과 달리, ‘문학과지성’은 문학을 문학으로, 지식을 지식으로 다루는 순수파였죠.”

         문지의 4K - 1972년 서울 청진동 골목에서 찍은 사진. 왼쪽부터 김현,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 /문학과지성사

 

김병익은 한글 문학비평 1세대를 대표하는 평론가 김현(1942~1990)과의 만남을 잊지 못한다. 동아일보 문학 담당 기자였던 1968년이다. 첫 만남이 끝날 때쯤 네 살 아래인 김현이 말했다. “우리 다음부턴 말 놓지.” 김병익은 그때를 회상하며 “며칠 후에 두 번째로 만나니, 정말로 말을 놔서 놀랐다”고 했다. “다시 ‘말 놓지 말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도전받듯 뜻밖이었고 못마땅하긴 했지만, 문단으로는 저보다 선배였으니까요.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한 건 아니지만 말만은 거리낌 없었죠. (김현은) 오생근·김종철 등 위아래 사람을 마구 흡인시키는 힘이 있었어요. 문학 청년 재질에 머리가 뛰어나, 식민지 시대 태어났으면 이상(李箱)이 아니었을까요.” 김병익은 김현을 중심으로 1968년 결성된 동인 ‘68그룹’에 발을 들였고, 이 만남이 계간지 ‘문학과지성’과 문학과지성사로 이어졌다.

1975년 12월 세운 문학과지성사는 당대 지식인들의 공론장이면서, 한국 문학·출판계의 안정화에 큰 기여를 했다. 최인훈의 ‘광장’과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비롯해 한국인의 의식 형성에 영향을 미친 수작을 다수 발간했다. 문학과지성사 대표를 맡게 된 것에 대해 김병익은 “(4K 중에) 나이가 제일 많기도 했고, (해직돼) 자유직업인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직 이후에도 출판사 창립에는 망설였지만, 김현의 권유가 컸다. “제 생애에 대해 좋게 말하면 김현 덕을 본 셈이고, 나쁘게 말하면 김현 때문에 제가 망했다는 말을 할 수 있죠. 평생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그 소망을 깨뜨리도록 이끈 게 김현이었으니까요.”

 
 

“세상을 노닐며 천지를 곁눈질한다”

김병익의 집 거실 벽면 가운데에는 ‘소요일세지상(逍遙一世之上) 비예천지지간(睥睨天地之間)’이란 휘호가 걸려 있다. 세상을 노닐며 천지를 곁눈질한다는 뜻. 그가 존경하는 언론인 천관우(1925~1991)가 1975년 동아일보 해직 기자들의 생활비를 마련하는 바자회에서 선물해준 것이다. 천관우는 김병익이 기자협회장을 맡던 1974년 동아일보 주필이었다. 김병익은 “한국기자협회장 활동이 외부 활동이라는 이유로 해직됐다”며 “그래도 개인적 글쓰기를 통해 보상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제가 추구하던 언론 자유, 사상의 자유, 지적인 함양 등을 이후 글쓰기나 출판을 통해 추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1970년 발간된 ‘문학과지성’ 창간호, 정현종 시인이 자신의 시 ‘시간의 그늘’을 써서 2015년 선물한 액자, 언론인 천관우가 선물한 휘호. 휘호는 1975년 동아일보 해직 기자들의 생활비를 마련하는 바자회에서 받은 것이다. 김병익은 “신문사에서 쌓은 문인들과의 친교가 출판사를 하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김병익은 전쟁·군부 독재를 비롯해 자유가 제한됐던 과거를 회상하며 “우리 세대는 참 다양한 시대를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우리말로 공부하고 우리글로 읽고 쓰는 최초의 세대인 ‘4·19 세대’로 스스로를 인식한다. “일제 말과 해방 후의 혼란과 한국전쟁의 고통, 60년대 근대화를 위한 억압, 80년대까지 끊임없는 체제의 변란이 있었죠. 제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 일어난 4·19입니다. 저는 시위엔 나간 적 없는 아주 소극적인 인물이었지만, 직업적으론 언론인 혹은 문필가였고,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자였습니다.” 그가 2000년 문학과지성사 대표를 관두고, 회사를 공동 운영의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한 건 이런 시대 흐름 때문. “21세기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 혹은 참여할 수 없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니 제 역할이 다했다 생각했죠.”

◇”이제는 과학책 위주로 독서를 한다”

김병익의 작업실엔 50년 지기 정현종 시인이 자신의 시 ‘시간의 그늘’을 적어서 2015년 선물한 액자가 있다. ‘김병익형의 압력에 따라 2015년 歲暮(세모)에 쓰다’라고 시 말미에 써 있듯 문인들의 흔적이 가득한 방에서 책과 교류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문학·인문학 등 독서에서 이젠 과학책 위주의 독서를 한다는 점이 달라졌다. “사회적·정치적 현실과 달리, 과학 세계는 진리 자체를 탐구하는 거니까요. 이 늙은 나이에는 보다 선명하고, 추리 소설을 보는 것 같은 긴장도 느끼게 하는 과학책을 집게 됩니다.”

지금까지 낸 비평집, 산문집 등 저서가 30여 권, 번역서도 10권이 넘는다. 지난 10월엔 그간 발표했던 글을 묶어 ‘기억의 양식들’(문학과지성사)을 냈다. 문학평론가로 데뷔했던 1967년 ‘사상계’에 발표한 글 ‘문단의 세대연대론’을 처음으로 책에 묶었다. ‘세대교체론’이 아닌 세대 간의 대화를 강조한 내용. “책을 여러 번 내면서 제외했지만, 그동안 빠뜨린 원고들을 다 모아서 넣고 있어요. 세상을 보는 눈이 현명하지 않았던 느낌이 들지만, 제 모자랐던 것까지 다 드러내야 제 전모가 다 나오니까요.”

책과의 끈질긴 인연에 대해선 이렇게 썼다. “책이란, 그리고 그 책 읽기란, ‘인생’이란 진지한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그것의 존재론적 무화(無化)를 깨닫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독자→기자→편집자→저자→역자→발행인, 다시 독자로의 귀환이란 끈질긴 인연에도 불구하고, 나는 충만했던 것도 아니지만 공허를 벗어난 것도 아니었다. (중략) 책과의 미진한 인연은 내게 삶을 덧없이 얽는 장식일지도 모른다.”

조선일보 이영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