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안부 (2021.12)

일용직 나 씨의 저녁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9. 11. 17:23

일용직 나 씨의 저녁

 

곧바로 천국에 닿을 것만 같은

쭉 뻗은 대로의 의붓자식 같은

외로움을 한 번 꺾어들면

음지식물이 독버섯처럼 웅크린 뒷골목

해고가 없는 일용직에서 해고당한

나씨의 컵라면 앞에 말라비틀어진 김치쪼가리

마침 저녁이면 저 세상을 보여주는

맛집 기행 덕에 만찬은 풍요롭다

컵라면은 한 입에 사라지지만

잡을 수 없는 화면 속에 시선을 넣으면

온갖 산해진미가 내 것인 양 한 상 가득하다

나씨가 일 년 동안 먹어도 남을

허기에 대한 헛가락질이

인생을 지휘하는 마스터 같다

오늘 저녁은 또 뭘 먹을까

곰 사냥을 나갔다 곰에게 쫓겨 돌아온

배고픈 안도감으로

일용직 나씨의 밥상은 보이지 않는

풍요로 가득 찬다

몽유의 이 짜릿한 육즙이라니

 

 

'안부 (2021.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주름이거나 목걸이거나  (1) 2023.10.05
일용직 나 씨의 아침  (0) 2023.10.01
사랑의 온도  (0) 2023.08.28
비애에 대하여  (0) 2023.08.21
이십 리 길  (0) 2023.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