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116] 저녁 식사
입력 2023.04.17. 03:00
저녁식사
교도소로 가야 합니다
남자에게 통역하고 법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
백화점에 들려 가다랑어 다타키를 사서
전철에 뛰어올라 좁은 자리에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오늘 맡은 사람은 생각보다 담담했나
(…)집에 들어와 바로 쌀을 씻는다
반성하고 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남자의 말들이 질끔질끔 쌀뜨물을 타고
흘러 내려간다(…)
갓 지은 흰쌀밥의 고소한 김을 맡고(…)
교도소로 가야 합니다
남자에게 통역한 말 따위는
차가운 맥주를 목 뒤로 넘기면서
완벽하게 잊은 것처럼 들이켰다
-정해옥(丁海玉 1960~)
(손유리 옮김)
정해옥은 일본의 가나가와 현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시인이다.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980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역사를 공부하며 언어 문제로 고민하다 시를 쓰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30년 동안 오사카의 법정에서 한국인 피고인들의 통역사로 일했다.
‘저녁식사’에는 ‘법정 통역인(法廷通譯人)’으로 활동하다 집에 돌아와 밥을 지어 먹는 그의 일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한국과 일본, 두 개의 언어를 이어주는 일을 해온 그 정성, 조국을 잊지 않는 마음이 애틋하다.
“남자에게 통역한 말 따위는 완벽하게 잊은 것처럼”이라고 썼지만, 잊지 않았기에 그의 마음에 남은 앙금을 시로 꺼내 보여준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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