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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원의 말글 탐험

'매료시킨다'고, 누구한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2. 27. 14:51

[양해원의 말글 탐험]

'매료시킨다'고, 누구한테?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11.03 03:03
 
 
 
 
 

지아비를 잃은 여인은 살길이 막막했다. 자식은 먹여 살려야겠고. 살림 줄이느라 집부터 옮겼다. 공동묘지 동네면 어떠랴. 어린 아들은 곡(哭)하며 놀았다. 이대로 눌러앉을 수는 없는 노릇. 그나마 갈 만한 데가 전세금 덜 비싼 시장통이었다. 일수(日收) 찍고 나면 끼니 잇기도 버거운 나날. 밤낮으로 베를 짰다. 아이 돌볼 짬이 어디 있으랴.

 

어느 날 옆집 아줌마가 그랬다. 가(軻) 엄마는 좋겠어. 나중에 돈 잘 벌겠던데. 허구(許久)한 날 보고 들은 대로 물건 사고파는 놀이를 한 모양이었다. 장사보다 공부를 잘하면 좋으련만. 그래, 빚을 더 내서라도 학원가로 가자. 보람이 나타났다. 이 녀석 몸가짐부터 달라진 것이다. 공자 왈, 노자 왈, 입에 달고 살았다. 훗날 사람들이 그 아이를 아성(亞聖)이라 불렀다.

 

천하의 맹자(孟子)도 시킨다고 공부한 게 아닌가 보다. 장사(葬事) 흉내며 흥정 시늉인들 시켜서 했을까. 환경 따라 달라서, 시킨다고 다 되지 않는 건 말글살이도 마찬가지.

'바닷물 색깔은 코발트 색 같기도 하고 로열블루 같기도 하다. 에게해는 물 색깔이 사람을 매료시킨다.'

'매료(魅了)하다'는 목적어를 끌고 다니는 타동사(他動詞). 목적어인 사람이 물 색깔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다. 이미 사동(使動)의 뜻을 지녔다. 한데 다시 사동 접미사 '-시키다'를 붙이는 바람에 의미상 이중 사동이 된 셈이다.

 

물론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다만, 물 색깔이 제3자를 시켜 사람을 홀려야 한다. 또 다른 주체(제3자)가 생기는 것이다. 다만 여기선 제3자가 드러나지도 않고, 문맥상 있을 수도 없다. 타동사에 '시키다'를 잘못 붙이면 그렇다. '교육, 단련, 배제, 소개, 연결, 적용, 충족, 포함, 환기' 따위 어근(語根)이 같은 성질. 한자어 뜻을 제대로 알면 풀릴 일이다.

 

거꾸로 '시키다'를 써야 문장이 성립하기도 한다. 자동사(自動詞)와 어울릴 때 문제가 없다.

'프로축구는 2011년 승부 조작 사건으로 현역 선수 40명을 퇴출시키는 초강경책을 썼다.'

'퇴출하다'는 물러난다는 뜻의 자동사. 그런데 스스로 물러난 게 아니라 물러나게 했으므로 '퇴출하는'이 아니라 '퇴출시키는'이 맞는다.

시켜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다. 나랏일은 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