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30년 고독, 내면의 자기중심 세워야 우울 다스린다
[지혜를 찾아서] 월정사 교무국장 자현스님
월정사 내 전통찻집 청류다원에서 자현스님이 생각에 잠겨 있다. 김경빈 기자
‘그 누구도 혼자서는 지혜로울 수 없다.’ 로마의 희극작가 플라우투스의 말이다. 파편이 된 지식과 쓸모없는 정보가 넘치는 세상. 우리를 참되고 행복한 길로 이끌 지혜는 어디에 있을까. 누구를 찾아가야 할까. 새 시리즈 ‘지혜를 찾아서’를 시작하게 만든 질문이다. 고승대덕과 성직자와 인문학자…. 뿐만 아니라 동네 식당 쥔장 아줌마, 마을길을 쓸고 있는 할아버지까지,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만나러 갈 것이다.
첫 행선지는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교무국장 자현스님을 뵈었다.
월정사의 가을이 깊고 붉었다. 한해살이를 마친 나뭇잎이 전통찻집의 나무 탁자 위로 내려앉았다. 계곡물이 괄괄괄 소리를 내며 흘러갔다. 한강의 시원지인 금강연을 보며 스님이 입을 열었다. “한강은 고정돼서 존재하는 게 아니고 유사 이래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줄기를 한강이라고 합니다. 현상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그것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현상을 다르게 보는 게 대승불교의 반야 사상입니다.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 즉 어떤 세계관을 갖느냐가 지혜롭고 행복한 삶을 결정하는 거지요.”
기도와 명상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
중국 쓰촨성에 있는 한 사찰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자현스님. [사진 자현스님]
법문 같은 스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붓다는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에 투자하라고 가르쳤어요. 진정한 행복은 외적인 만족이 아닌 내적인 각성입니다. 세상을 보는 명확한 기준을 갖고, 흔들리지 않는 행복을 추구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내면을 컨트롤하는 거죠.”
지난여름, 지인의 권유로 자현스님이 진행하는 1박2일 명상 템플스테이에 참가했다. 명상은 세상 편하게 누운 상태로 진행됐다. 눈을 감은 채 미간에 의식을 두고 천천히 호흡을 한다. 호흡 길이에 맞춰 들이쉬면서 ‘현성법신(現成法身)’, 내쉬면서 ‘현법열반(現法涅槃)’을 조용히 읊조린다. ‘지금 진리가 성취되니,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언제나 고요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온갖 상념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라는 말씀에 따르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스님은 “작은 빛 또는 구체적인 형상이 보이거나 귀에 뚜렷한 소리가 들리는 경우도 있고, 유체이탈까지 하는 사람도 있는데 큰 의미는 없습니다. 명상의 효과는 내면을 정리하고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니까요”라고 설명했다.
스님과의 대화는 기복(祈福)과 기도로 옮겨갔다.
자현스님이 진행한 명상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누워서 명상을 하고 있다. [사진 자현스님]
박사학위 6개, 등재 학술지 논문 수 국내 1위, 공저 포함 저서 60권…. 자현스님의 별명은 ‘논문 제조기’다. 끊임없이 쓰고, 발표하고, 강의하고 유튜브를 찍는다. 그는 ‘어려운 걸 어렵게 말하는 건 죄악’이라고 주장한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고 ‘쩌리’(중심이 못 되고 주변을 맴도는 사람), ‘쌉소리’(헛소리라는 뜻의 SNS 신조어) 같은 말도 즐겨 쓴다.
종교, 합리성만 갖고 살아남을수 없어
자현스님이 경주 남산 보리사에 있는 석불을 만져보고 있다. [사진 자현스님]
헤어질 시간이 됐다.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만 알려달라고 했다. 스님의 대답이 죽비처럼 떨어졌다.
“너 자신은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다. 유일한 것은 비교 대상이 없고 비교 대상이 없는 것은 언제나 행복하다. 이게 ‘인식 주체의 확립’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 세상에 똑같은 존재는 없어요. 모나미 볼펜 100만 자루를 찍어내도 미세하게 다릅니다. 하물며 인간은 그 누구와 비교되어서도 안 돼요. 그 유일성을 깨달으면 영원한 행복이 옵니다.”
자현스님, 동국대(미술·미술사·역사교육·국어교육), 성균관대(동양철학), 고려대(철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정사 교무국장, 중앙승가대 교수 및 불교학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선불교 관련 연구와 명상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으며, 유튜브 〈자현스님의 쏘댕기기〉, BTN 불교TV의 〈붓다로드〉 등을 진행하고 있다. 〈사찰의 상징체계〉 〈붓다 순례〉 〈스님의 공부법〉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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