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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공중전화 부스, ATM·충전소로 변신 중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7. 26. 14:16

추억의 공중전화 부스, ATM·충전소로 변신 중

중앙선데이

입력 2022.06.25 00:02

업데이트 2022.06.25 16:15

 

박물관으로 간 공중전화 

1980년대 공중전화 이용 모습. [중앙포토]

 

“공중전화요? 어렸을 때는 많이 사용했죠. 삐삐가 오면 곧장 공중전화로 달려가 확인하고 통화해야 했으니까요. 중간에 전화가 끊기지 않게 옆에 동전도 쌓아두고요.”

대전에 사는 손대승(44)씨는 최근 초등학생 아이의 등굣길에 공중전화를 보고 반가움을 느꼈다. 과거 전화를 걸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를 찾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개인 통신 수단이 많지 않았던 시절, 손씨를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공중전화는 대체할 수 없는 통신수단이었다. 가족 또는 친구에게 전하는 안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고백 등 매일 수많은 얘기가 공중전화를 통해 오갔다. 공중전화를 배경으로 한 가요도 나올 정도였다.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 눈물을 흘리며 말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 1990년 발라드 그룹 015B의 데뷔곡 ‘텅 빈 거리에서’의 가사 내용 일부다.

손씨는 공중전화를 사용하던 때를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대학생 때 휴대전화가 생기고 나서도 한동안은 공중전화를 썼다고 한다. 당시 휴대전화 요금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을 때는 휴대전화를, 걸어야 할 때는 공중전화를 많이 썼다. 인기를 끌었던 한정판 공중전화 카드부터 반환되지 않는 100원 미만의 돈이 남아있으면 다음 사람을 위해 수화기를 올려놓는 배려까지 모두 추억이다. 그는 공중전화를 “많은 사람의 입과 귀가 되어준 친구”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한 가지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추억이 있다. “마지막으로 공중전화를 사용한 때요? 잘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부터 사용한 기억이 없네요. 안 쓴지 한참 된 것 같아요.”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공중전화 이용자가 사라졌다. 삐삐 보급 후 수요가 급증해 동전 혹은 카드를 들고 공중전화 앞에 섰던 1990년대와 비교해 통신 환경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체 수단이 마땅찮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휴대전화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공중전화 수요는 점차 줄었다. 현재 국내 휴대전화 보급률은 99%, 스마트폰 보급률은 94%에 달한다. 유동인구가 많은 시내에서조차 공중전화 이용자를 찾기 힘든 이유다. 공중전화 운영사 KT에 따르면 현재 공중전화 한 대당 하루 평균 이용량은 3.6건에 불과하다.

 

수요 감소에 따라 공중전화도 줄었다. 1999년 15만3000대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05년 12만8000대, 2010년 8만9000대로 감소했다. 지난달 기준으로는 3만1000대만 남아있다. 공공성이 높거나 유동인구가 많아 비상시 대체 통신수단의 필요성이 높은 지역 등 우편권역 별 적정대수를 최대 5대로 산정해 초과하는 지역의 공중전화는 철거한다. 공중전화 유지·보수를 담당하고 있는 KT링커스 관계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통신환경 변화에 따른 보편시설인 공중전화 단계적 축소에 따라 시설을 축소하고 있다”며 “올해 5월까지 공중전화 2000대를 철거했고, 하반기에도 비슷한 규모로 철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초에는 2만8000대 가량만 남는 셈이다.

 

뉴욕선 마지막 전화 부스 박물관행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마지막 공중전화 부스가 철거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공중전화 철거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는 마지막 남은 공중전화 부스를 철거했다. 뉴욕시는 2014년부터 공중전화 부스를 없애고 무료 전화, 와이파이, 전자기기 충전 등을 지원하는 키오스크 형태의 링크(LINK) NYC를 설치해 공중전화 부스를 대체해왔다. 뉴욕시는 “철거한 공중전화 부스는 박물관에서 컴퓨터 상용화 이전 도시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자료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 영화 슈퍼맨 속 주인공이 사용하던 구형 공중전화 부스 4개는 관광용으로 유지한다. 영국의 상징과도 같은 빨간 공중전화 박스 역시 매년 철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중전화 부스도 사라질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다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전기통신사업법에서 공중전화를 전기통신사업자가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할 필수 서비스인 ‘보편적 역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역무란 모든 이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적절한 요금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전기통신역무를 의미한다. 시내전화, 공중전화, 도서통신, 인터넷, 장애인·저소득층 요금감면 서비스 등을 포함한다. 쉽게 말해 통신 복지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공중전화 서비스를 중단하기 위해서는 법을 개정해야 한다. 연 109억원(2019년 기준)에 달하는 유지·보수비용에도 불구하고 운영사가 임의로 공중전화 사업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유다. 현재 손실액은 연 매출 300억원이 넘는 통신사업자가 매출액 비율에 따라 분담하고 있다.

 

연 유지비 109억, 법 개정해야 없애

 

사실상 수요가 거의 없는 상황이지만 공중전화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손씨는 “도심지가 아닌 일부 수요가 있는 지역에서는 유지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초등학생 때와 군 휴가 때 공중전화를 많이 사용했다는 이광민(36)씨는 “부대 내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된 지금은 군인들조차 공중전화를 안 쓰는 상황”이라며 “무용지물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보단 철거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이씨의 말처럼 2018년 4월부터 일부 부대에서 시작한 영내 휴대전화 허용 조치는 점차 확대돼 2020년 7월부터 전군에 적용됐다. 군 장병조차 공중전화를 이용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이에 지난 2019년 KT링커스는 부대 내 공중전화 부스 8400개를 철거했다.

 

취약계층을 위한 통신복지 차원에서는 공중전화보다 다른 수단이 더 효율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유지되고 있는 공중전화의 이용 통계를 바탕으로 공중전화 철거가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고, 수요가 있다면 무상으로 휴대전화를 지급·대여하는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뉴욕 사례처럼 장소와 공간에 따라 보존할 필요가 있는 곳도 있겠지만, 복지의 효율성 차원에서 보면 없애는 방향이 맞다”며 “법을 개정해서라도 당장 어려우신 분들을 위한 기기 지원이나 통신비 지원 등으로 재원을 달리 활용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사회적 논의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재난 등 비상상황과 휴대전화를 이용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을 고려하면 완전히 없애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법에서 보편적 역무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공중전화 서비스 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2018년 11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 아현지사 화재로 인해 서대문구, 마포구 등 서울 서북부 지역에서 통신 장애가 발생했을 때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었던 통신수단은 공중전화뿐이었다. 지하철역 내에 설치된 공중전화 앞에 간만에 긴 줄이 늘어설 정도였다.  KT링커스 관계자는 “공중전화는 땅에 매립된 구리선을 이용하는 유선통신수단이기 때문에 무선통신수단과 달리 기지국에 화재가 발생해도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기이륜차 공유배터리 스테이션 결합 부스. [사진 서울시]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설치돼 있는 공중전화 부스. [사진 KT]

 

운영사인 KT는 다방면으로 공중전화 부스 활용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공기질 측정기(934대), ATM 결합부스(710대), 전기이륜차 공유배터리 스테이션(111대), 휴대전화 배터리 대여소(103대)로 쓰이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중 KT링커스가 디앤에이모터스와 협의해 구축한 전기이륜차 공유배터리 스테이션 활용 사례가 최근 주목받고 있다. 배터리를 교체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1분 남짓으로 전기오토바이의 짧은 주행거리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서울시는 올해 공중전화 부스 150곳에 전기오토바이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는 교환형 충전소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거 학창시절에 앞사람이 올려둔 수화기로 부모님과 통화를 하곤 했다는 한모(53)씨는 “이용량은 많이 줄었지만 휴대전화를 분실했거나 전원이 나갔을 때 통화할 수 있는 방법은 공중전화뿐”이라며 “지역 중심지에 위치한 만큼 추억의 장소를 넘어 실용성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혜인 기자 yun.hy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