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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사람살이를 위해 사람이 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숲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7. 14. 13:47

[나무편지] 사람살이를 위해 사람이 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숲

  예고했던 대로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함양상림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숲 전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이곳의 문화재 명칭은 ‘함양상림’입니다만, 이 숲을 시민 누구라도 편안히 이용할 수 있는 곳이어서 흔히 ‘함양 상림공원’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숲은 총 넓이가 이십일 헥타아르, 익숙한 넓이 단위로 환산하면 육만사천 평 정도 되는 큰 숲입니다. 함양읍 서쪽을 흐르는 위천(渭川)강가에 있는 이 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인공림이라는 점이 문화재로서 높은 가치를 가지는 곳입니다.

  숲을 처음 이룬 건 통일신라 진성여왕(재위 887∼897) 때 고운 최치원에 의해서입니다. 최치원이 함양의 태수로 있던 때의 일입니다. 그때에는 앞에서 이야기한 강인 ‘위천수’가 지금과 달리 함양읍의 중앙을 가로질러 흘렀는데, 큰 비만 내리면 강물이 넘쳐 한해 농사를 망가뜨리곤 했습니다. 그러자 태수로 부임한 최치원은 고을 농민의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큰 공사를 시작합니다. 최치원은 강물을 읍 중앙에서 벗어나도록 둑을 쌓아 물길을 돌리고자 했지요. 그리고는 이 둑을 견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둑 위에 나무를 심어 숲을 이뤘습니다.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치산치수였습니다.

  숲을 이룬 뒤에도 홍수는 이어졌던 모양입니다. 처음 숲을 이루었을 때에는 대관림(大館林)이라고 불렀는데, 그 뒤로 이 숲에 닥쳐온 홍수로, 숲의 가운데 부분이 심각하게 훼손되면서 숲이 둘로 나눠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쪽의 숲을 상림(上林)으로, 아래쪽의 숲을 하림(下林)으로 부르게 된 겁니다. 그러나 하림으로 불리던 구역의 숲은 완전히 사라지고 상림만 온전히 남았습니다. 하림 구역은 저도 찾아보지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몇 그루의 큰 나무가 좀 남아있고 마을이 형성돼 있다고 합니다.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살아남은 상림은 넓을 뿐 아니라 다양한 나무들이 평화로운 식생을 이룬 훌륭한 숲인 건 사실이지만, 천백 년 전의 흔적을 찾아보는 건 쉽지 않습니다. 처음 조성한 숲이 그대로 이어오기는 어려웠겠지요. 신라시대의 최치원 때라면 무려 천백 년은 더 된 옛날 일인데, 상림에는 그토록 오래 된 숲의 흔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숲을 샅샅이 살펴보아도 천년 쯤 된 나무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 사이에 숲은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산책로의 길이가 일점 육 킬로미터쯤 되는 함양상림은 지난 주에 얼핏 말씀드렸던 이끼원에서 시작합니다. 이끼원은 최근에 새로 조성한 구역인데, 제게는 큰 감동을 주지 않았습니다. 한 마리의 뱀과 눈싸움을 하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특별히 사진으로 담아야 할 포인트도 찾지 못했습니다. 상림의 산책로를 걸으면서 가장 만이 볼 수 있는 나무는 갈참나무와 졸참나무였습니다. 그밖에도 줄기 껍질이 눈에 띄는 개서어나무 종류가 주로 눈길을 붙듭니다. 천년 넘은 나무는 찾을 수 없지만, 대개의 나무들이 크게 잘 자라서, 숲길에는 햇살이 들어설 틈도 없습니다. 이 여름에 걷기 좋은 곳입니다.

  시간은 좀 많이 흘렀지만, 1993년에 문화재청에서 이 숲을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상림 전 구역에서는 백열여섯 종류의 식물을 찾았고, 무려 이만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했습니다. 대개는 가을에 잎지는 넓은잎나무가 주종을 이루어서, 가을 단풍도 아름다우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숲 사이로 개울이 흘러서 걷다가 잠시 개울물 흐르는 소리를 벗삼아 쉬기에도 아주 좋습니다.

  또 걷다 보면 옛 사람들의 사람살이 흔적을 볼 수 있는 유적들을 저절로 만나게도 됩니다. 유형문화재로 지정한 ‘이은리 석불’과 ‘함화루’가 있고, 문화재자료인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 ‘척화비’도 있습니다. 그밖에 지정문화재는 아니어도 사운정과 같은 정자는 상림의 운치를 한층 돋보이게 합니다. 길 끝에서는 새로 지은 물레방앗간도 만나게 됩니다. 연암 박지원이 함양군 안의현감으로 있던 때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함양 땅에 물레방아를 만들었다는 걸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띄엄띄엄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살이의 흔적들이 지루할 수도 있는 숲길을 흥미롭게 한다는 것도 상림의 특징이 될 겁니다.

  함양상림을 이야기하자면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숲이지만,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습니다. 물론 산책로를 제외한 숲 안쪽으로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지만, 산책로에서도 충분히 오래된 숲의 울창한 싱그러움을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비록 천년 된 나무를 만나는 건 아니라 해도 천년 전에 심어 키운 나무들이 세대를 여러 차례 바꾸며 이어온 크고 아름다운 숲, 바로 이 계절에 찾아보기 좋은 우리의 숲입니다.

  주말에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장맛비가 이번 주에 다시 활성화한다고 합니다. 기상청의 일기예보도 아주 빠르게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이번 한 주의 날씨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그만큼 더 건강에 유의하셔야 할 때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쨌든 더 건강한 한 주 보내시기 바라며 《나무편지》 여미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칠월 열하룻날 아침에 …… 솔숲에서 고규홍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