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편지] 어지러웠던 우리의 봄날이 꼬리를 접고 멀리 돌아갑니다
봄날의 끝자락이면 우리 곁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들이 있습니다. 모란 작약이 그 중의 하나이지요. 이미 오월 지나 유월 들어서서 한 주일이 지나는 참이어서, ‘아직 작약 꽃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은 하릴없이 심드렁했습니다. 예상대로 널따랗게 조성한 작약 화원의 꽃들은 한창 때를 지났습니다. 인천 장수동 인천대공원의 인천수목원 작약원 이야기입니다. 한참 때에 더 없이 화려하게 피었던 갖가지 작약 꽃들이 거개는 시들어 가는 중입니다. 그나마 뒤늦게 피어난 몇몇 꽃송이들만 작약의 화려함을 내려놓지 않았을 뿐입니다.
꽤 많은 작약들이 어우러진 곳이어서, 그 가운데 아직 싱그럽다 할 만한 몇 송이의 꽃을 찾아내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거개의 꽃들이 시들어 고개를 숙여가는 초여름 꽃밭에서 싱싱한 작약 꽃을 찾는 게 무리이겠지요. 여느 꽃송이에서도 한창 때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미 이곳 작약원의 꽃송이들은 모두 봄과의 작별 인사를 마무리한 뒤였습니다. 그저 가는 봄을 아쉬워 하는 마음을 달래려 몇 송이의 작약 꽃 앞에 무릎을 구부리고 쪼그려 앉아 이리 저리 꽃송이를 탐색해 보는 수밖에요. 다시 찾아올 한해 뒤의 봄을 기다려야 이 꽃들의 싱그러운 모습을 볼 수 있겠지요.
봄꽃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장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한창 때를 이미 지난 꽃송이들이어서, 반가움보다는 아쉬움이 더 큽니다. 세상의 모든 식물 가운데에 아마도 가장 많은 품종이 선발된 장미는 특히 화려한 겹꽃이 많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장미 품종의 꽃들 대부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잎을 지닌 종류들입니다. 빛깔이나 모양이 너무 화려해 어지럽습니다. 조금 시들었다 해도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압도하는 매력은 여전합니다. 그 많고 많은 장미 품종 가운데에 조금은 단아하게 피어난 품종의 장미 꽃이 없을까 둘러보았습니다만, 지금 남아있는 꽃들 중에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장미원이라 불리는 넓은 꽃밭에 무리지어 피어난 장미 꽃들은 모두 시들어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다양한 빛깔의 꽃들이 이뤄내는 원경의 아름다움은 아직 생생합니다. 가까이 다가가 꽃잎 하나와 무수한 꽃잎들 사이에 숨어있는 꽃술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펴보는 게 아니라면 이 정도로도 충분히 떠나는 봄과의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자리로 이만큼 좋은 꽃밭도 없으리라 생각해야 할 겁니다. 여유로이 쉬는 날을 이용해 수목원과 장미원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호들갑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봄이 우리 곁을 어지러이 지나갑니다. 그나마 아직 안심할 수준은 아니라 해도 얼굴을 가렸던 마스크를 잠깐씩 내려놓고 바람의 기운을 한껏 들이마실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지난 봄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언제라도 나무보다 많고 꽃송이보다 더 많은 일과 일,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말과 말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지난 봄에는 말과 말의 홍수로 귀가 따갑고 머리가 지끈거리던 날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주말에 비가 찔끔 내렸지만, 워낙 극심했던 봄가뭄을 해갈하기에는 태부족입니다. 다가올 여름은 여느 때보다 더 뜨거울 것이라는 예보가 벌써부터 불안함을 일으킵니다. 그래도 이제는 차분하게 여름을 맞이할 채비를 해야 합니다. 목 마르고 날 뜨거워도 사람의 마을에서 사람을 지켜온 나무와 함께 더 평안한 여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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