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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수목장…… 그리고 오래된 숲에서 신비롭게 피어난 자귀나무 꽃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7. 4. 15:57

[나무편지]

수목장…… 그리고 오래된 숲에서 신비롭게 피어난 자귀나무 꽃

  아내 부모님의 묘지를 수목장으로 옮겼습니다. 제가 뵈온 적 없는 아버님은 사십오 년 전에 돌아가셔서 천주교회 묘원에 계셨고, 십삼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은 묘원의 아버님 바로 곁에 계셨지요. 세월 지나며 더 좋은 곳에 모시기 위해 오래 준비한 일이었습니다. 주말의 분주한 시간을 피해 이른 아침에 수목장례를 치르기 위해 수목장지 근처의 한적한 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오백 년 된 큰 나무가 마을 한가운데에 서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그리고 뽀얀 안개가 자욱한 이른 아침, 수목장 묘원에서 두 분을 한 그루의 잣나무 아래에 전보다 더 가까이 바짝 붙여서 한 자리에 모시고 돌아왔습니다.

  칠월 초순의 더위로는 그 동안의 경험치를 훨씬 뛰어넘는 무더위입니다. 칠월 오기 전부터 열대야 소식이 이어졌고, 이번 주에는 태풍도 온답니다. 지난 봄부터 올 여름 더위는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기상예보를 보면서, 틀린 예보이기를 바랐지만 기대와는 다르네요. 아무래도 이번 여름은 단단히 대비해야 하겠습니다. 더위를 피할 도리야 없겠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대비가 중요하겠지요. 나무들에게도 이번 여름은 만만치 않을 듯합니다. 밝은 햇살과 따뜻한 바람을 싫어할 리 없는 나무들이지만, 이전 경험 값을 뛰어넘는 뜨거운 더위를 견디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지난 봄의 극심했던 가뭄을 이려내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나무들이니 더 그렇습니다.

  며칠 전에 다녀온 함양 상림이 떠올랐습니다. 상림에 다녀온 며칠 뒤에 뉴스에서 마침 ‘함양 상림’ 이야기가 뉴스에 나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곳에 새로 조성한 ‘이끼원’을 알리려는 기사였습니다. 아마도 상림 공원 측에서 홍보용으로 보낸 자료를 바탕으로 한 기사로 보였습니다. ‘상림 공원’이라고 부르는 이 ‘함양 상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구역에 조성한 이끼원입니다. 저도 관심을 갖고 둘러본 곳이지만, 아직은, 어쩌면 제게만은 큰 느낌을 주지 않았던 구역입니다. 이끼원 입구에서 큼지막한 한 마리의 뱀을 만나 짧게 눈싸움을 했던 것 말고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풍경은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달라질지 모르지만, 최소한 지금의 제게는 그랬습니다.

  상림 전 구역을 돌아보면서 그때 가장 반가웠던 나무, 꽃은 곳곳에 서서 신비로운 모양의 꽃을 피운 자귀나무들이었습니다. 어느 사진가께서도 페이스북 담벼락에 ‘사진 찍기 어려운 꽃’으로 꼽으신 걸 본 적이 있습니다만, 제게도 자귀나무 꽃은 사진으로 제대로 담기 어려운 꽃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게다가 함양 상림의 자귀나무는 유난히 잘 자란 나무들이어서, 특별한 장비를 갖추지 않았던 그 날,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피어난 꽃을 사진에 담는 건 더더구나 어려웠습니다. 하긴 가까이에서도 하늘거리는 자귀나무 꽃을 온전히 표현하기는 늘 어려웠습니다.

  하여간 자귀나무 꽃이 곳곳에서 활짝 피어난 함양 상림을 천천히 걷고 돌아왔습니다. 함양 상림은 팔 년 전에 찾았던 적이 있습니다만, 그 사이에 나무들은 더 울창해졌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강산이 한번 바뀔 정도인 십 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니까요. 세상의 모든 숲이 다 그렇겠지만, 특별하달 것이 없어도 상림 안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긴 세월을 거치며 나무들은 여러 차례의 세대교체를 이뤘겠지요. 그 사이에 감동을 일으킬 만큼 큰 거목들은 명을 다해 스러졌고, 지금은 이 숲이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담긴 오래 된 나무는 없습니다. 그래도 이 숲에서는 세월이 남긴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앞에 쓴 것처럼 특별하달 것도 없고, 대단한 노거수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편안히 걸을 수 있는 함양 상림 이야기는 다음 《나무편지》에서 넉넉히 보여드리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그 숲에서 만났던 자귀나무 꽃 이야기로 짧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은 마음을 평안히 하고, 큰 나무 곁으로 자리를 옮기신 아내 부모님의 땅 속 안부부터 찬찬히 챙겨야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칠월 사일 아침에 …… 솔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