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슬며시 다가와 손을 잡아주네
어디에든 따라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인이 되든 종이 되든 넉넉하게
머리도 좋고 꼬리라도 좋아
그저 몸통에 스며들어
날 선 미움도 부드러운 꽃바람
가여운 회초리로 만들어버리네
세월이 남긴 그리움은
표정을 알 수 없는 울음의 뒷모습 같은 것
나는 어느덧을 사랑하네
어느덧이면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있네
한 나무에서 돋아나 하나 둘 떨어지는
꽃잎들이 이룩하는 뼈없는 문장들처럼
고요히 다가와 하염없이
나를 감싸안는 어둠처럼
잠시 발길을 멈추게 하는 숨처럼
그 한 마디가 멀리서 나를 살리네
계간 《동안》 2022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