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편지]
조선 세조의 각별함으로 일으킨 절집 풍광을 아름답게 하는 나무
[나무편지]
조선 세조의 각별함으로 일으킨 절집 풍광을 아름답게 하는 나무
충청북도 영동의 우매리(友梅里)에는 백화산으로 불리는 낮은 산이 있습니다. 석천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백화산 기슭에는 통일 신라 때인 서기 720년에 상원(相源)이 창건한 고찰, 반야사(般若寺)가 있습니다. 여러 차례의 중건을 거쳤지만, 조선 세조 연간인 1464년에 임금의 허가를 얻어 진행한 중창이 가장 컸다고 합니다. 세조에게 각별했던 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조가 반야사 대웅전에 참배하던 때에 문수동자가 나타나 절 뒤쪽 계곡인 망경대(望景臺) 영천(靈泉)으로 이끌어 목욕을 권했다는 거죠. 세조가 문수동자의 말을 따라 목욕을 마치고 절에 돌아와 남긴 어필(御筆)은 지금까지 보관돼 있다고 합니다. 절집 이름을 반야사라고 한 것도 이곳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수의 반야를 상징한 것이지요.
아늑한 절집 ‘영동 백화산 반야사’의 극락전 앞 계단 참 양쪽에는 한 쌍의 아름다운 노거수가 있습니다. 배롱나무입니다. 오백 년쯤 됐다고는 하지만,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야기대로라면 조선 세조 때에 절집을 크게 중창하고, 절집의 사세(寺勢)를 일으키는 중에 심은 나무라고 전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여느 오백 년쯤 된 배롱나무에 비해서는 작은 편입니다. 언제나 전해오는 이야기 속의 나무나이와 실제 식물학적 나무나이의 차이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할 문제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래 된 나무, 특히 보호수로 지정한 나무를 찾아가 보면 보호수 입간판이나 표지석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 나무나이를 단단위까지 정확하게 표시한 경우를 종종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이곳 영동 반야사 배롱나무의 경우에도 나무나이를 499년이라고 표기해 두었습니다. 정확한 기록 없이 이런 식으로 표기한 건 명백한 잘못입니다. 이처럼 정확하게 나무나이 값을 정확히 추산하려면 누가 언제 심은 나무인지에 대한 기록이 명확해야 합니다. 기록이 있다 하더라도 처음에 씨앗을 심어 키운 나무가 아니라면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습니다. 묘목을 심었다면 몇 년생 묘목을 심었는지까지의 기록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는 수 없이 나무나이는 대략 십 단위로 끊어서 이야기해야 사실에 가까워집니다.
다시 〈영동 반야사 배롱나무〉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영동 반야사 배롱나무〉 두 그루는 보호수 표지판에 높이나 굵기를 모두 똑같이 표기했지만, 조금 다릅니다. 북쪽의 나무가 남쪽의 나무보다 일 미터 정도 더 높이 솟아올랐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도 마찬가지로 북쪽의 배롱나무가 조금 더 굵습니다. 북쪽의 나무는 일 미터쯤 높이에서 다섯 개의 나뉜줄기로 펼치며 풍성한 수형을 이뤘습니다. 대개의 배롱나무처럼 사방으로 멀리 펼친 나뭇가지는 참으로 수려합니다. 굵은 가지 하나가 부러진 흔적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 생육 상태는 건강합니다. 남쪽으로 펼친 나뭇가지가 남쪽에 서 있는 또 하나의 배롱나무 가지와 닿았고, 동쪽으로 뻗은 가지는 극락전 처마에 닿았지만, 수형이나 생육에 지장을 미칠 정도는 아닙니다.
남쪽의 배롱나무도 생육 상태가 건강한 편이지만, 북쪽의 나무에 비하면 살아오면서 피하지 못한 상처가 많습니다. 줄기 아래쪽에 오래 전에 큼지막하게 뚫린 공동을 메워준 수술 흔적이 드러나있고, 그 위로도 여러 곳에 적잖은 구멍에 충전재로 메운 게 눈에 들어옵니다. 한때는 견디기 힘든 아픔이었겠지만, 이제는 아무 문제 없이 스스로 잘 이겨낸 상태입니다. 이 남쪽의 배롱나무는 줄기가 네 개로 갈라지면서 넓게 펼쳤습니다. 곳곳에 남아있는 상처 자국에도 불구하고 곁에 있는 북쪽의 배롱나무와 함께 아름다운 한쌍의 배롱나무가 됐습니다. 한 쌍의 배롱나무가 극락전 앞에서 매우 잘 어울리는 풍광을 이뤘습니다.
오백 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여전히 건강한 상태이지만, 외과수술 상태가 전체적으로 좋지 않다는 게 거슬립니다. 전반적으로 보수가 필요하다고 해야 할 겁니다. 썩어 뚫어진 구멍을 메운 충전재는 대부분 갈라지거나 부서져 너덜거리기까지 합니다. 또 수평으로 뻗은 나뭇가지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철제 버팀쇠는 페인트가 벗겨지고 녹이 슬어서, 볼썽사나운 상태입니다. 빨리 보수해서 〈영동 반야사 배롱나무〉를 찾아오는 누구에게라도 더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영동 반야사 배롱나무〉는 여러 모로 경관적 가치가 높은 나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한 쌍의 배롱나무 뒤편에는 단아한 전각인 극락전이 크지도 작지도 않게 나무와 잘 어울리며 자리잡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릅답습니다. 게다가 조금 멀리 떨어져 바라보면 나무 앞쪽에 서 있는 석탑과의 어울림 또한 절묘합니다. 이 석탑은 2003년에 보물로 지정한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입니다.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이 석탑은 원래 반야사 북쪽의 석천계곡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절집의 경관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심은 나무이기도 하고, 오랜 세월 동안 절집의 극진한 보호 속에서 주변 풍광을 더 아름답게 하는 나무로 더 없이 탁월한 나무입니다.
바로 위의 사진은 몇 해 전 배롱나무 꽃이 한창이던 한여름 풍경입니다. 올 여름 되면 다시 또 붉고 또 붉게 피어날 〈영동 반야사 배롱나무〉에 대한 그리움, 깊어지는 봄날입니다.
충청북도 노거수 답사를 마무리하고 보고서 인쇄까지 마무리한 지난 해 십이월 쯤부터 운전하기가 불편한 상태가 이어지는 중입니다. 나이 들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통증과 부담이겠지만, 밀려오는 목련 꽃 소식에 길 위에 오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목련 꽃 벙글어지기 전에 잘 추슬러 올에도 더 많은 나무 곁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잘 채비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나무편지》도 더 풍성하게 전해드릴 수 있겠지요.
모두 건강하십시오. 고맙습니다.
- 3월 14일 아침에 …… 고규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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