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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가질 수 없는 마티스보다 운동화에 꽂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11. 12. 14:24

“MZ세대, 가질 수 없는 마티스보다 운동화에 꽂혀”

세계 1위 리셀 플랫폼 ‘스탁엑스’ 스콧 커틀러 CEO

 

 

입력 2021.11.12 03:00
 
 
 
 
 
뉴욕 증권거래소 부사장, 이베이 수석 부사장 등을 거친 스탁엑스 CEO 스콧 커틀러. 창업자 조시 루버의 뒤를 이어 2019년 CEO 자리를 물려받은 스콧 커틀러 역시 신발 마니아이자 스탁엑스의 회원이었다. 스탁엑스는 운동화에서 시작해 지금은 게임기 등 전자 기기, 레고, 트레이딩 카드 등 15만개 정도 거래 품목을 보유하고 있다. /스탁엑스

 

“AI(인공지능)가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수집품 거래 시장만큼은 파고들기 힘들 겁니다. 그 어떤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이 인간의 소유욕과 희귀품에 대한 집착, 향유의 즐거움과 추억을 제대로 산출할 수 있을까요. 미술품부터 운동화까지 시대정신(zeitgeist)이 투영된 시장가치는 더더욱 높아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난 2016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탄생한 글로벌 1위 리셀(re-sell·재판매) 플랫폼 스톡엑스(StockX)의 스콧 커틀러 CEO는 “지금 세대의 청년 문화를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 바로 스니커즈(운동화)이고, 이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스톡엑스는 ‘스톡’이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듯, 운동화에 최초로 주식 개념을 도입한 회사. 설립 5년 만에 기업 가치 4조원대, 거래액 2조원대를 돌파한 거대 기업이 됐다. 국내 5000억원대 규모의 리셀 시장을 주도하는 네이버 크림, 무신사 솔드아웃 등의 ‘원조’ 격. 스톡엑스는 최근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김포에 검수센터를 개설하면서 공식 진출했다.

미국 본사에서 화상으로 만난 그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화 중 하나인 ‘나이키 덩크 로우’로 예를 들겠다”며 말을 이었다. “요즘 친구들은 운동화를 캔버스 삼아 자신의 이니셜을 새기기도 하고, 스타와 같은 신발을 신으며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한정판을 구매하면서 우월감을 갖기도 합니다. ‘나이키 덩크 로우’나 ‘조던 1 로우’의 경우는 스톡엑스 기준으로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2~4배 이상 많이 거래한 신발이기도 합니다. 신발을 통해 나라별, 인종별로 어떤 스타일이 더 인기 있는지 인구통계학적 지표를 보여줄 수도 있죠.”

그는 MZ 세대에게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말한 이야기를 꺼냈다. “MZ세대는 (가질 수 없는) 마티스 작품보다 운동화에 더 가치를 둘지도 모른다.” 크리스티나 소더비 등 유명 경매 회사에 희귀 운동화가 수억원에 거래된 사례 외에도 최근 영국 디자인 뮤지엄 전시회를 예를 들며 “예술 작품의 대체물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디자인 뮤지엄의 리가야 살라자르는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청년 문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각종 협업을 통해 희소성을 담보하면서 거장의 예술작품처럼 갖기 힘들지만 열망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소셜 미디어는 과시욕을 드러낼 창구가 됐다. NASA 우주선에 쓰이는 첨단 과학 기술부터 희귀 보석, 유명 건축가와 현대미술가, 패션 디자이너까지 달려들며 운동화는 기술과 예술의 격전장이 됐다.

 

패션계에선 1980년대 등장한 마이클 조던 전후로 운동화의 운명이 바뀌었다고 본다. 중력을 벗어난 듯 공중을 가르는 조던의 모습은 운동화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이는 동력 없이 하늘을 날고자 했던 인간의 오랜 숙원과도 같았다. 커틀러 CEO는 “조던 운동화를 신는 건 마치 스스로 조던이 되는 듯한 기분을 갖게 했다”면서 “인기 제품 공급이 제한되면서 재판매를 원하는 이들이 생겨났고, 이를 가리켜 ‘스니커즈 특권’이란 말이 탄생했다”고 했다. “이러한 열광적인 팬 덕분에 지금의 리셀 문화가 구축된 것이죠. 심지어 조던이 경기하는 걸 본 적 없는 요즘 세대마저도 조던 운동화에 구애합니다.” 국내에선 커뮤니티 사이에서 ‘두발자유화’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해방된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두 발(feet)의 자유화를 느낀 청년들이 운동화 마니아층을 이뤘다는 설명이다.

새 제품만 팔기 때문에 신었는지 알기 위해 ‘냄새’로 구별하는 이른바 ‘진품 감별사’도 스톡엑스의 자랑. ‘진품’을 알아내기 위해 수천개의 제품을 찢고 뜯으며 내부 구조를 알고, 가죽에 밴 냄새의 정도 차이까지 비교한다. 박스 라벨까지 온전하게 검사하고 나면 초록색의 X표시를 준다. 바로 스톡엑스의 검수를 거쳤다는 증표. 지금까지 판매 데이터를 통해 99.95% 정확성을 나타냈다. 그는 ‘데이터’의 중요성을 쉴 새 없이 강조하면서도 ‘인간’을 빼놓지 않았다.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것이 인간의 심미안이고, 수집은 인간 고유의 미덕이라고 재차 말했다.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이 만나야 거래가 성사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