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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소나무는 일제가 지은 이름, 황장목으로 부르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8. 21. 15:58

 

“금강소나무는 일제가 지은 이름, 황장목으로 부르자”

[중앙일보] 입력 2020.08.14 00:03

 

우리말 찾기 여행 ④ 황장목 숲길

강원도 원주 치악산국립공원 구룡사 입구 쪽 소나무 숲길. 9월 26일 황장목 숲길 걷기 축제가 열리는 현장이다.

지난해 9월 치악산국립공원은 1.1㎞ 구간의 ‘금강소나무 숲길’을 ‘황장목 숲길’로 이름을 바꿨다. 3년째 열린 ‘치악산 황장목 숲길 걷기 축제’ 행사의 일환이었다. 금강소나무는 조선 왕실이 썼다는 최고급 토종 소나무를 이른다. 왜 길 이름을 바꿨을까. 어쩌다 치악산은 황장목 부르기 운동에 나섰을까. 사연이 길다.

황장목 vs 금강송

치악산국립공원 황장목 숲길 어귀. 지난해 축제 때 ‘금강소나무 숲길’에서 이름을 바꿨다. 1㎞ 남짓 탐방로가 이어진다.

황장목(黃腸木)은 ‘누런 창자 나무’란 뜻처럼 속이 붉은 나무를 말한다. 여기에 의미가 더 추가된다. 조선 시대 임금의 관(棺)을 만드는 데 쓰인 질 좋은 소나무. 『조선왕조실록』에도 관련 기록이 있다.

‘대저 소나무가 자라려면 반드시 몇 갑자(甲子)를 지난 후에야 황장에 합당할 수가 있다(숙종 39년 1713년 4월 5일, 숙종실록 53권).’

황장목의 자격을 매기는 구절이다. 갑자는 60년을 이르니, 2갑자 이상 그러니까 120년 이상 된 소나무여야 임금의 관에 쓰는 황장목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치악산 세렴폭포 앞 황장금표. 실물은 비로봉 정상에 있다.

황장목이 목재로서 가치가 높다 보니 도벌이 횡행했다. 조선 왕실은 황장목이 많이 자생하는 전국 60개 산을 ‘봉산(封山)’으로 지정하고 황장금표(黃腸禁票)를 세웠다. 임금의 나무를 지키겠다고 이른바 ‘소나무 특별 보호구역’을 선포해 출입을 막은 것이다. 이 황장금표가 치악산에서 세 개가 발견됐다. 치악산국립공원이 황장목을 주목하는 까닭이다.

금강송(금강소나무)은 식물분류학에서 정의하는 학명이다. ‘백두대간 금강산에서 경북 영덕에 걸치는 산악지대에 주로 자라는 질 좋은 소나무의 한 품종’을 이른다. 정의에서 유전적, 형태적 특징은 없다. 지역적 구분에 가깝다. 이 작업을 일제 강점기 산림학자 우에키 호미키(植木秀幹·1882∼1976)가 주도했다. 그의 동경제대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한국소나무 분류 연구’였다고 한다.

소나무 축제

경북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

치악산국립공원에서는 올해도 황장목 숲길 걷기 축제가 열린다. 9월 26일 선착순 예약한 500명이 숲길을 걷는다. 코로나19 때문에 예년보다 참가인원을 절반 줄였다. 황장목 숲길 걷기축제추진위원회 김대중(56) 위원장의 설명을 옮긴다.

 



“치악산에서 황장금표가 3개, 인근 영월에서 2개가 발견됐습니다. 치악산 자락에서 황장금표 5개가 발견된 것입니다. 원주는 더욱이 옻의 고장입니다. 임금의 관은 옻칠한 황장목을 썼습니다. 금강송은 일본 강점기에 일본인 학자가 붙인 이름입니다. 이제라도 우리 이름을 찾아야 합니다.”

당장 금강송을 버리고 황장목을 쓰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황장목도 어려운 한자어다. 국내 최대 소나무 군락지의 이름도 경북 울진군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이다. ‘나무박사’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일본 강점기에 확정돼 오늘까지 계속 사용하는 학명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학명 교체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학계 전반의 연구와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적송, 홍송처럼 우리 소나무를 비하하는 듯한 뜻도 없습니다. 지역의 시민운동을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학문적 규정과는 다른 문제로 보입니다.”

원주=글·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금강소나무는 일제가 지은 이름, 황장목으로 부르자”

[출처: 중앙일보] “금강소나무는 일제가 지은 이름, 황장목으로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