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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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도 2015

스물두 살 ─ 전태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5. 13. 21:16

스물두 살 ─ 전태일

 

너도 걸었고 나도 걸었다

함께 스물두 살을 지나가면서

너는 맨발이었고

나는 평발이었을 뿐

티눈이 박이는 세월을 막지 못하다

어쩌랴 너는 스물두 살에 멈추어 섰고

나는 쉰하고도 여덟 해를 더 걸었으나

내가 얻은 것은 평발이 된 맨발이다

나는 아직도 스물두 살을 맴돌고 있고

너는 아직도 더 먼 거리를 걷고 있을 터

느닷없이 타오르던 한 송이 불꽃

하늘로 걸어 올라가 겨울밤을 비추는 별이 된 너와

그 별을 추운 눈으로 바라보는 중늙은이

걸어 걸어 스물두 살을 지나가면서

너는 맨발이었고 나는 평발이었을 뿐

같은 길을 걸었으나 한 번도 뜨겁게 마주치지는 못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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