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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혼영… 나홀로 삶 즐기는 이유? 전혀 불편하지 않으니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6. 11. 23:48

혼밥·혼영… 나홀로 삶 즐기는 이유? 전혀 불편하지 않으니까!

입력 : 2017.06.10 03:01 | 수정 : 2017.06.11 13:32

고독, 즐길만 하신가요… Why?가 묻자 5864명이 답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배우 척 매카시는 사람들과 산책을 해주고 돈을 번다. 지난해 그가 시작한 '친구 대여(Rent-a-Friend)'는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다. 매카시는 일감이 많지 않은 무명 배우였지만 이 부업은 조수들을 고용해야 할 만큼 번창하고 있다. 다른 도시와 외국에서도 '출장 산책' 주문이 쇄도한다.

매카시는 집 근처 공원과 거리를 고객과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대가로 1마일(1.6㎞)에 7달러를 받는다. 사회적 관계를 구매 가능한 상품으로 포장한 셈이다. 이름 붙이자면 '고독 비즈니스'다. 그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혼자 산책하기 두렵거나 친구 없는 사람으로 비칠까봐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자기 이야기를 누가 들어준다는 데 기뻐하며 다시 나를 찾는다"고 했다.

20~30대에서는 미혼과 만혼(晩婚), 40대 이후로는 이혼과 고령화 등으로 1인 가구가 빠르게 늘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고독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우리는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지만 관계의 응집력은 어느 때보다 느슨하다. '혼밥' '혼술' '혼영(나 홀로 영화)' '혼행(나 홀로 여행)' 같은 소비 패턴이 방증한다. 외로움을 감추기보다 즐기려는 경향도 나타난다. Why?는 예스24에 의뢰해 지난 1~5일 설문조사를 했다. 5864명(여성 4398명)이 응답했다. 고독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태도가 드러났다.

혼술은 고난도, 혼밥·혼영은 가뿐

설문조사 응답자는 30대가 2096명(36%)으로 가장 많았고 40대(32%), 20대(22%) 순이었다. 혼밥·혼술·혼영·혼행 가운데 가장 어려운 걸 묻자 2277명(51%)이 혼술이라고 답했다. 그다음으론 혼행(35%)을 까다로워했고, 혼밥(7%)과 혼영(6%)은 아주 쉬운 것으로 꼽았다.

집 밖에서 혼밥을 얼마나 자주 하느냐는 질문에는 '주 3회 이상'(1201명·20%)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주당 1~2회'와 '매월 1~2회'가 각각 18%로 뒤를 이었고 '해본 적 없다'가 20%였다. 또 2152명(48%)은 '최근 1년 사이 혼자 영화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최근 1년 사이 혼자 여행을 간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853명(19%)으로 높지 않았다. 집 밖에서 혼술은 '해본 적 없다'가 4512명(77%), '연간 1~2회'가 9%, '월간 1~2회'가 6%로 나타났다. 혼자 술집에 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혼술·혼밥에 대한 감정은 나쁘지 않았다. '매우 긍정적이다'가 14%, '약간 긍정적이다'가 18%, '아무렇지도 않다'가 53%, '약간 부정적이다'가 12%, '매우 부정적이다'가 2%였다. 혼자 영화 볼 때의 기분은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57%로 '부정적'(8%)을 크게 웃돌았다. 나 홀로 여행도 '긍정적이다'(43%)가 '부정적이다'(13%)보다 높았다. 최근 1년 사이 못 해봤을 뿐, 욕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1인 활동을 즐기는 이유로는 '전혀 불편하지 않으니까'(59%), '타인과 시간 조율이 어려워서'(21%), '함께할 사람이 없어서'(16%)가 1~3위로 조사됐다. 반대로 부담스러운 까닭으론 '혼자보다 여럿이 하는 게 더 좋으니까'(41%), '인간관계가 나쁘게 비칠까 봐'(21%), '외로운 걸 싫어해서'(19%) 등이 꼽혔다.

연령별 온도차가 나타났다. 혼밥·혼술·혼영·혼행에 대해 20대는 더 열려 있었고 40대는 좀 조심스러워했다. 예컨대 혼자 영화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0대가 67%인 반면 40대는 44%로 낮아졌다. 나 홀로 영화에 대한 감정도 '매우 긍정적이다'가 20대는 52%에 달했지만 40대는 절반 수준(29%)에 그쳤다.

혼자가 불안하기는커녕 편하다

회사원 손모(38)씨는 지난 4~6일 경기 파주의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에서 묵었다. 1박은 혼자서, 나머지 1박은 친구를 불러 함께 보냈다. 지난해에도 홀로 5박 6일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는 그녀는 "혼행은 동행자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뭘 먹고 어디에 들러야 한다는 강박을 포기할 수 있다. '무(無)계획'이 매력"이라며 "좀 허세 같지만 어느 카페에 앉아 반나절 동안 독서하는 자유도 만끽할 수 있다"고 했다.

사회적 시선이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혼술을 하는 여성도 늘고 있다. 그들은 "10년 전엔 여자 혼자 술집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고 용기도 없었다"며 "혼술이 하나의 문화로 떠오르면서 누가 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제 홍보팀장 최모(39)씨는 "30대 초반에 프랑스로 혼자 여행을 떠나 혼밥·혼술을 한 달 경험한 뒤로는 누군가와 어렵게 약속 시간 조율하느니 혼자 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사무실 후배들에겐 '관계 맺기의 스트레스'가 보인다고 했다. 일상을 공유하며 대화하느라 시간이 축나는 게 싫고 사생활 공개도 꺼린다는 것이다. 회식도 달갑지 않은 자리다. "저 또한 10년 전엔 인맥을 넓히려는 강박이 있었는데 이젠 더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어요. 가끔 외롭지만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오히려 거기서 안정감을 얻죠.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나 혼자 누리는 게 있구나 싶어 편안한 겁니다."

'좋아요'는 신경 안 써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앱은 페이스북이다. 앱분석업체 와이즈앱이 지난 4월 한 달간 전국 스마트폰 사용자 2만3663명을 조사한 결과 페이스북에 총 56억 분을 소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10대와 20대가 특히 페이스북에 오랜 시간 접속했고 40대 이상에서는 밴드가 인기였다.

10여 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페이스북을 이젠 세계 20억명이 애용한다. 현대인의 고독과 결핍을 파고들어 21세기의 금맥을 발견했다는 평도 받는다. 서로 친구가 되고 '좋아요'를 누르고 우정을 주고받는 인터넷 공간을 만들었을 뿐인데 엄청난 수익을 뽑아낸다.

이번 설문조사에는 소셜미디어가 1인 활동 증가에 기여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매우 동의한다'(17%)와 '동의하는 편'(37%)이라는 긍정이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5%)와 '동의하지 않는 편'(9%)이라는 부정을 크게 넘어섰다.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를 받을 때 그(그녀)는 외롭지 않다고 느낄까. '그렇다'는 응답은 774명(18%)에 그쳤다. '그렇지 않다'가 43%,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가 39%였다.

한국인은 소셜미디어도 타인을 의식하며 관계 맺는 도구로 쓸 것이라는 예상이 깨졌다. 고독이 꼭 부정적인 게 아니라 때론 필요하고 즐길 수도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회사원 손모씨는 "과거에는 소셜미디어에 내 감정을 어디까지 쏟아도 되는지 수위(水位)를 고민했지만 이젠 어느 냉면집이 맛있고 어떤 영화가 재밌다는 정보를 주고받는 그릇쯤으로 사용한다"며 "반응이 적거나 '좋아요'를 덜 받아도 대수롭지 않다"고 말했다.

"1인 가구는 우리 모두의 미래"

201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1인 가구는 전체의 27.2%인 520만3000가구다. 1990년(102만1000가구·전체의 9%)과 비교하면 5배로 늘었다. 나 홀로 가구가 폭증하면서 편의점 도시락을 비롯한 간편식 시장은 성장세가 가파르다. 4인용 식탁 대신 1인용 식탁을 찾는 고객도 많아진다.

'욜로(YOLO)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뿐)'의 줄임말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소비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번 조사에서 '당신은 욜로족인가' 묻자 '매우 그렇다'(11%)와 '그런 편'(36%)이라는 응답이 '전혀 그렇지 않다'(4%)와 '그렇지 않은 편'(15%)이라는 응답보다 2.5배 많았다. 20~30대에서 비중이 더 높았다. 미래를 위해 저축하며 행복을 미루기보다 현재에 충실한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템플 스테이도 고독 비즈니스의 한 종류다. 올 들어 예스24 국내 도서 판매 1위는 '자존감 수업'이다. 일본에선 한국보다 먼저 '나 홀로 문화'가 퍼졌다. 국내에 번역된 일본 에세이 중엔 '약간의 거리를 둔다' '퇴사하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50살이네요' 등이 인기다. 예스24는 "제목에 '혼자' '홀로' '고독'이 붙은 책, 혼밥·혼술과 맨손운동 관련 서적은 30대 남녀를 중심으로 판매량이 늘 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1인 가구 증가는 척 매카시가 증명했듯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일 수 있다. '욜로족'은 맥락 없이 등장한 돌연변이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변화에 적응하는 중이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쓴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는 "1인 가구는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길든 짧든 경험할 수도 있는 생활의 조건, 우리 모두의 미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