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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시인론·시평

단순함이 주는 시의 여백미 餘白美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2. 15. 01:47

단순함이 주는 시의 여백미 餘白美

나호열

1.

 

『산림문학』(2016년 가을 ․ 겨울호, 통권 24호)의 시단은 풍성한 잔치집과 같았다. 초대시 5편, 문학회 탐방 5편, ‘산림문학이 만난 문인’ 시 8편와 산림문학회 회원을 중심으로 한 44편의 시를 합하면 총 62편의 시가 게제된 것이다. 시단의 원로부터 지금 막 시인의 길에 들어선 신인에 이르는 시의 향연에 초대된 독자들은 시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각양각색의 시풍 詩風에 얹힌 시들을 읽다보면 시의 위의 威儀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소회가 우러나오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외부 청탁 원고에 해당하는 시들을 제외하고 산림문학회 회원 중심의 44 편의 시 감상을 통해서 오늘날의 우리 시단이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서정 抒情의 뼈대가 ‘단순함이 주는 시의 여백미 餘白美’에 있음을 소개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알다시피 오늘의 우리 시단은 말 그대로 군웅할거 群雄割據의 혼란에 빠져있는 듯 하다. 해독이 불가능한 난해시의 범람과 이를 우려하는 전통적 서정시단의 불화는 한 편으로는 우리 시단의 다양함을 표징하기도 하고 우리의 얼을 담은 모국어의 심각한 훼손을 가져 올 것이라는 우려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서정 抒情/ 반서정 反抒情의 구도, 언어의 구심력에 대한 순응과 탈언어 脫言語를 지향하는 원심력에 대한 실험의 간극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어째든 논의의 중심에는 ‘존재’를 증명하는 ‘표현’의 욕구와 이를 추동하는 ‘언어’의 두 축이 있음을 알게 된다. 표현은 자신을 드러냄이고, 그 존재의 드러냄을 운용하는 언어를 어떻게 작동시키느냐에 따라 시의 위의는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산림문학』은 전통적 서정성을 기반으로 하는 시들을 소개하는 매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전국의 산림 山林에 배포되는 『산림문학』은 문학을, 시를 쉽게 접하지 못했던 일반인들에게 남모를 신선한 감동을 전해 주었기에 2017년부터 계간지로 거듭날 수 있는 새로운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2

 

이 글의 앞머리에 ‘단순함이 주는 시의 여백미 餘白美’를 잣대로 시를 감상하면서 눈길에 담아본 작품들은 강인호의 「누군가 지어낸」, 「박꽃」(구자운), 「부메랑」(김관식), 「나무 구멍에 살게 되면」(김선아), 「벌목 숲에서」(김행숙), 「민들레 홀씨」(이근배),「완두콩을 까며」(임정현),「감나무」(장희한), 「내가 한 그루 나무라면」(조연한)등 이었다. 그밖에 작품들도 그러하지만 이 작품들은 생명에 대한 외경과 상상력에 기대지 않는 체험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삶의 지혜를 추출해 내고 있다. 사실 단순함이라 뭉뚱거려 말했지만 그 ‘단순함’은 형식의 장단 長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절제력까지를 포함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세계의 자아화(동화 同化)에 기댈 때, 주관적 인식이 대상(소재)을 끌어안을 때 시인(話者)의 의도는 뚜렷하게 드러난다.

 

언제인가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그 언덕에 피어난 어떤 풀꽃은/가느다란 고개를 젖히고 종일/먼 하늘만 바라본다는데요 /언젠가 거기 다녀간 빗물에게/마음 주어 그러는 거라는데요

 

- 「누군가 지어낸」 3연

 

가지마다/하얀 눈꽃을 피워/아름다운 시 한 편을 /써놓고/우쭐거릴 때/봄이 부메랑으로/ 가지 끝에 가득히/새싹을 매단다.

- 「부메랑」 마지막 연

 

길도 없는 풀벌레소리로 이어지는/초가을 농촌들녘의 적막한 곳에서/

저물녘부터 밤이 새도록 피어 있는/푸르무레한 고혹의 흰빛을 내뿜는/

달빛에 비취는 초가지붕 위의 박꽃

-「박꽃」 전문

 

유언장이 한 장 두 장 흩날린다/ 바람에 흔들리며

다 털어내고서야 홀가분했을 아버님이/툭툭/ 손을 털고 계신다

- 「민들레 홀씨」 마지막 연

 

위의 예문에서 풀꽃/ 빗물「누군가 지어낸」, 눈(겨울)/ 새싹(봄) 「부메랑」,달빛/ 박꽃「박꽃」, 민들레 홀씨/ 아버지의 유언 「민들레 홀씨」등의 이 항 二項 구도는 정형적 시의 얼개를 이루면서 독자와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장점도 있지만 현상(대상)에 대한 본질적 탐구의 부족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탐구의 부족함이 독자들에게 여백을 거닐게 하는 여유를 주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이와는 다른 측면에서 자아의 세계화(투사 projection)는 자아가 적극적으로 대상에 삼투되는 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임정현의 「완두콩을 까며」는 죽어야 만 생명을 얻는 순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여백을 남기기도 하는 것이다.

 

콩 콩 콩 노크한다 / 닫힌 문을 마주 여니/ 지상에는 없다는 평안들이/

새초록 눈동자로 / 대글대글 반긴다 / 어둠 속에서/빛나지 않는 빛으로 여물어/

첫 손님의 밥이 되어주는/들어본 일 없는 기쁨의/ 순절 殉節!

- 「완두콩을 까며」전문

 

3.

 

이와 같이 동화 同化와 투사 透射의 영역을 아우르면서 이야기(사건)에 중점을 두는 시들이 있다. 「나무구멍에 살게 되면」(김선아)은 킬리피쉬의 생존 방식을 통해서 이웅다웅하며 서로를 사랑하는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장희한의 「감나무」는 비유가 사라진 진술을 통해서 늙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적 이야기의 혜안을 던져준다. 벌목 현장에서 삼백년 된 소나무가 쓰러지는 모습을 그린 김행숙의 「벌목 숲에서」는 비장한 삶의 마지막을 추체험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몸체는 땅에 부딪혔다

산산조각 난 햇살이 튀어 달아났다

-「벌목 숲에서」2연 마지막 부분

 

마지막으로 조연환 시인은 늘 안정된 시법으로 삶의 진경을 보여주는 필력을 지니고 있다. 흔들리는 자아(주체)를 참나무의 속성에 빗대면서 ‘나도 참나무 될 수 있나 물으니/ 참나무 되기 전에 참 사람 되라고/ 제 옷 다 벗어주고 빈 몸으로 겨울 맞는/ 참나무 대답한다’( 「내가 한 그루 나무라면」부분)는 독백은 쉬운 듯 쉽지 않은 내성 內省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4.

 

평 아닌 평을 마치려 하니 오래 전 공부했던 내용이 새록새록 돋아 올라서 시를 사랑하는 여러분과 함께 여백의 미를 나누고 싶다.

중국 송대 宋代의 엄우 嚴羽 는 “이론에 치우치지 않고 -불섭이로 不涉理路-, 언어의 그물에 빠지지 않는 불락언전 不落言詮”을 강조했다. 전통적 서정시에 요구되는 축자적 언어의 기능에 도전하는 실험의식과 난해시가 유념해야 할 지나친 서구 이론에의 경도를 경계함을 두루 이르는 뜻이 아닐까? 시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야 할 여백의 미는 언유진의무궁 言有盡而意無窮에 숨어 있다.

시(언어)가 끝나고 난 후에 시의 느낌(意)이 시작된다!

 

* 계간 산림문학 2017년 봄호에 게재된 글임

 

언급된 시

누군가 지어낸 /강인호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그 언덕을 다년간 어떤 빗물은

구름 되어 여기저기 떠돌다가

그 언덕에만 내려온다는데요

거기 핀 어느 작은 풀꽃에게

마음 두어 그러는 거라는데요

 

언제인가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그 언덕에 피어난 어떤 풀꽃은

가느다란 고개를 젖히고 종일

먼 하늘만 바라본다는데요

안젠가 거기 다녀간 빗물에게

마음 주어 그러는 거라는데요

 

설마 정말 그럴 리 있겠어요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겠지요

그래도 어느 언덕에 가보면

그런 풀꽃 하나쯤 피어 있고

그 언덕으로 흘러가는 구름

한 조각도 있을 것만 같아요

 

박꽃 / 구자운

 

길도 없는 풀벌레소리로 이어지는

초가을 농촌들녘의 적막한 곳에서

저물녘부터 밤이 새도록 피어 있는

푸르무레한 고혹의 흰빛을 내뿜는

달빛에 비취는 초가지붕 위의 박꽃

부메랑/ 김관식

 

가을 산

활엽수들이

어깨에 멘 짐을 푼다.

 

발밑에 수북하게

풀어놓은 짐

나뭇잎 수천 개

열매 수천 개

함께 내려놓는다

 

가지를 모두 비우고

뿌리만을 위해

낙향하여

겨우 내내

매서운 북풍의 말로

증얼거리다가

 

가지마다

하얀 눈꽃을 피워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써놓고

우쭐거릴 때

봄이 부메랑으로

가지 끝에 가득히

새싹을 매단다.

 

나무구멍에 살게 되면 /김선아

가진 것 없는 집 아이들 같은

브라질에서 미국 플로리다 주에 이르는 대서양 서안의 맹그로브 숲에 사는 송사리과 아주 작고 볼품없는 물고기 킬리피쉬, 평소에는 홍수림 근처 물웅덩이에 살다가 건기가 되면 썩은 나무둥치 축축한 벌레구멍 속에서 산단다. 몸무게 0.1g 에 불과한 킬리피쉬, 드넓은 호수에 살 땐 제 영역 넓히려고 툭하면 싸움박질 피범벅 되다가도 좁디좁은 나무구멍에 살게 되면 오히려 사이가 좋아진단다.

 

원미동 시민아피트 1004호의 킬리피쉬 여섯 마리.

 

벌목 숲에서 /김행숙

 

전라도 완주 벌목숲에서 오래 된 소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큰 숨 한 번 내쉬지 않고 거대한 둥치가 쓰러지던 모습은 장엄했다

벌목꾼들이 잘라대던 엔진 톱 소리, 커다랗게 온 산을 울리고

 

애초에 거기서 싹이 났던 것일까

골짜기 속에 눕기까지 장하게 삼백년을 지켜온 기상

쿵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몸체는 땅에 부딪혔다\

산산조각 난 햇살이 튀어 달아났다

 

누워있는 소나무들은 할 일을 다 마친 사람 같았다

숙명처럼 대지를 끌어안으며 차지하고 있던 텅 빈 자리

대기 속의 공간을 하염없이 올려다본다

 

민들레 홀씨 /이근배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니 눔 농사짓는 꼴 안 보겠다던

추상같은 노여움 사그러들고

간당간당한 꽃대 끝에

유언장이 한 장 두 장 흩날린다

바람에 흔들리며

다 털어내고서야 홀가분했을 아버님이

툭툭

손을 털고 계신다

 

완두콩을 까며 / 임정현

 

콩 콩 콩 노크한다

닫힌 문을 마주 여니

지상에는 없다는 평안들이

새초록 눈동자로

대글대글 반긴다

어둠 속에서

빛나지 않는 빛으로 여물어

첫 손님의 밤이 되어주는

들어본 일 없는 기쁨의

순절 殉節!

 

감나무 / 장희한

 

내가 한 칠십 먹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여보게 자네는 어찌 구리 아직도 신세 한탄만 하고 있는가

그것도 한잔 술에 정선아리랑만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앞집 친구는 나이 칠십 삼세에 감나무를 심었지 않은가

내가 이런 말 했네

지금 감나무를 심어 언제 따먹겠다고 감나무를 심느냐고 했더니

나 없으면 다른 사람이라도 따먹지 하며 태연한 태도다.

아 글쎄 말이야 삼년 만에 한 개가 달리더니

육년 만에 한 점을 넘게 땄다는거야

그 친구 감도 먹지 못하고 얼마 못 살 줄 알았지

사실은 그 때 무슨 암인가 걸려 얼굴이 샛노랗게 해 있었거든

여보게 자네도 신세 한탄 그만하고 감나무나 심어 보게나

혹시 아는가 구십까지는 너끈할는지

 

내가 한 그루 나무라면 / 조연한

 

내가 한 그루 나무라면

참나무이고 싶다

굴참 졸참 갈참 떨갈 신갈 상수리나무.....

제 이름으로 불려지기보다

참나무라 불려지는 못난 형제들이다

사형제 구남매 우리 집보다 화목한 가족이다

 

내가 한 글 나무라면

참나무이고 싶다

더 높이 오르려 위만 바라지 않고

근육질 가지 펴서 땅을 보듬으며

박새 솔새 궁노루 멧돼지 쉼터가 되고

다람쥐 청설모 곳간이 되어준다

저 잘되는 것보다 다불어 사는 것을 더 행복해 한다

 

내가 한 그루 나무라면

참나무이고 깊다

나무 중 제일인 참나무를 몰라보고

꼬부랑 못쓸 나무 잡목이라 험담해도

왜 날 몰라주나 눈 부릅뜨지 않고

곧게 곧게 땅 속 깊이 뿌리 내린다

직근성 直根性 그 바탕을 본받고 싶다

 

내가 한 그루 나무라면

참나무이고 싶다

나도 참나무 될 수 있냐 물으니

참나무 되기 전에 참 사람 되라고

제 옷 다 벗어주고 빈 몸으로 겨울 맞는

참나무 대답한다

 

싸락눈 싸락싸락 내리는

이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