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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보는 종교개혁 500주년] [2] 장 칼뱅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1. 15. 23:55

츠빙글리 동상엔 성경과 칼… 칼뱅 紋章은 '순종하는 손'

 

입력 : 2017.01.10 03:04

[인물로 보는 종교개혁 500주년] [2] 장 칼뱅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2人

츠빙글리

스위스 종교개혁사의 첫 페이지는 칼뱅에 앞서 츠빙글리(1484~1531·사진)가 열었다. 츠빙글리의 무대는 취리히를 비롯한 스위스 내의 독일어권 지역이었다. 루터와 마찬가지로 로마가톨릭 사제였던 츠빙글리도 면죄부 판매와 교황 제도를 비판했으며 1522년 '사순절 소시지 사건'을 계기로 스위스 종교개혁의 선구자로 나서게 된다. 당시 사순절 기간에 몇몇 사람이 소시지를 먹자 가톨릭은 처벌을 주장했으나 츠빙글리는 사순절에 육식을 금하는 것은 성서에 근거가 없다고 맞선 것. 츠빙글리 역시 '오직 성서'였다. 이후 츠빙글리의 개혁은 스위스 특유의 공동체 정신과 합해지면서 '애국주의'적 요소를 띠게 됐다. 무장투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츠빙글리가 스위스 북부 독일어권을 중심으로 종교개혁 씨앗을 뿌렸다면 프랑스 출신의 칼뱅에겐 제네바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어권 서남부 지역이 무대였다. '종교개혁 사상의 완성자'라는 별칭답게 칼뱅은 선배 종교개혁가들의 업적과 프로테스탄트 신학을 종합하는 역할을 맡았다. 선배들이 비판과 투쟁을 통해 중세 가톨릭 전통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다면 칼뱅은 새로운 프로테스탄 트 정치·경제·사회적인 구체적 생활 규범까지 세워 제네바를 완벽한 이상도시로 만든 건축가였다.

상징물도 대조적이다. 가톨릭과 벌인 전투에 군목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츠빙글리의 기념 동상은 성경과 칼을 든 모습으로 형상화됐다. 평생 예배와 강의, 상담 등 목회자로 분주히 살았던 칼뱅의 문장(紋章)은 순종을 상징하는 마음(심장)을 바치는 손 모양으로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