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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舊石器의 사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2. 12. 01:12

구석기 舊石器의 사내

 

하루 동안 이 만년을 다녀왔다

 

선사 先史로 넘어가는 차령 車嶺에서 잠시 주춤거렸지만

돌로 도끼를 만드는 둔탁한 깨짐의 소리가

오수를 깨우는 강변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한 사내를 만났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강을 따라

목책으로 둘러싸인 움집 속

몇 겁의 옷을 걸쳐 입은 그의 손엔

날카로운 청동 칼이 번득이고

여전히 말이 통하지 않은 채

삼천년이 지나갔다

내가 노을 앞에서 도시의 불빛을 되내일 때

그 사내는 고인돌 속으로 들어가

뼈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 갔다

천 오백년 전 망한 나라의 나들목을 지나

하루의 풍진을 씻어내는 거울 앞에

수척해진 채 돌도끼를 만들 줄 모르는

구석기의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에티카』( 2014년 하반기), 시집 『촉도』(2015년, 시학)>에 수록.

 

 

아버지가 지천명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는 내 기억의 저 편으로 사라졌다. 화려했던 과거를 등에 진 채 초췌해져 가던 아버지를 가족 그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았으므로 궁핍해진 생활에 비례하여 자율을 잃어버린 몸과 마음은 제멋대로 울퉁불퉁하게 자라났고 세상을 향한 뾰족한 가시와 냉소는 미래를 향한 어떤 전망도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만일 내가 아버지가 된다면, 적어도 오십은 넘어 살아야겠다는 생각, 만일 내게도 자식이 생긴다면 그 자식들이 이소離巢하는 날까지는 살아야한다는 치졸한 희망이 드문드문 바람처럼 스쳐지나갔을 뿐이었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세상과 싸우면서 일가를 이루었고,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가르쳐 주는 사랑과 관용 또한 저마다의 방식으로 체화하면서 늙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지천명의 언덕을 넘어가고 있을 때 어렴풋이 아버지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고 그러하기에 가족사에 걸림돌처럼 불편했던 아버지가 내 삶의 어디쯤에서 더불어 살아 있었던 것이다. 존경은커녕 존중도 받지 못한 삶은 다 자업자득이겠지만 아버지와 나는 도플갱어doppelganger 가 되어 서로를 위로하고, 대화를 나누며 가장 家長이란 짐 속에 숨어있던 외로움이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집 밖의 패배를 집 안으로 들여놓아서는 안된다는 강박된 권위, 언제나 승자 勝者의 넓은 어깨를 자랑해야 한다는 어불성설 語不成說에 굴복한 두 사내는 이윽고 평화롭게 합체를 이루었다.

 

독일의 언론인 볼프 슈나이더Wolf Schneider는 이렇게 말했다. “ 삶에 너무 큰 기대를 갖지 마라! 쉰 살이 되었는데도 아직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맹수에 찢겨 죽거나, 이웃의 사나운 부족에게 맞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석기 시대에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러니 석기 시대 선조들보다 극히 적은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것에 기뻐하고 감사하라!” 그렇다! 아버지와 나의 잘못은 ‘삶에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던’데 있었다. 굶어 죽지도, 맹수에 찢겨 죽지도, 얼어 죽지도, 이웃의 사나운 부족에게 맞아죽지 않았으니 성공적인 삶은 아니었어도 패배한 삶은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가족이던, 더 큰 집단이던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분업과 협동, 그리고 협업이 현대 문명의 패러다임임은 분명하지만 그 연원을 따져 올라가 보면 수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모 에렉투스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는 동안 인간은 소규모 군집을 이루며 타제석기 打製石器를 만들어 수렵과 채취로 삶을 이어갔다. 불은 우연히 발견된 것이지만 석기는 머리속에 그려진 형상에 따라 만든 고유의 발명품이었다. 돌과 돌을 부딪친 다음 깨진 돌을 다듬어 예리한 주먹도끼를 만들고 그 주먹도끼로 나무을 자르고 창을 만들어 동물을 사냥했던 구석기의 사내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오천 년 역사 이전의 우리 선조들의 흔적은 경기도 연천 전곡의 한탄강변, 충북 단양의 수양개에 가면 감동 깊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이른 봄날, 또 하나의 구석기 유적지인 공주 석장리에 갔었다. 하루 일정으로 공주 무령왕릉을 비롯해서 부여 초촌면의 청동기 유적지인 송국리까지 다녀오는 하루 일정은 빠듯했지만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선사 先史를 더듬어 본다는 것은 남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백 만년 동안 저 아프리카에서 수 천 수 만 킬로미터를 걸어 파미르 고원을 넘고, 오늘의 중국을 지나 우리의 선조들이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것이 경이롭다고 하자 동행한 고고학자는 백만 년 동안의 이동은 하루에 1킬로미터씩만 걸어도 가능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동물의 먹이가 되기 일쑤였던 호모 에렉투스는 쉬임없이 이동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으나 도구를 만드는 능력을 가지게 됨으로서 정착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단단한 돌을 떼어내어 주먹도끼를 만들고 수렵이 용이하고 용수用水가 쉬운 물가에 자리를 잡고 움집을 지었을 것이다. 주먹도끼는 아무나 만들 수는 없어 기술이 뛰어난 제작자가 따로 있었을테지만 그 재주를 권력으로 삼지는 않았을 터. 집단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혼쾌히 마음에서 마음으로 주먹도끼를 쥐어주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오로지 오늘의 삶을 위해서 전력투구했던 호모 에렉투스는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크로마뇽인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일까. 어찌 되었던 간에 보다 정교한 마제 석기磨製石器로 무장한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들은 오로지 자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수렵과 채취를 통해서 경건이란 말 없이도 그 자체로 하루를 감사했을 것이다. 간단한 피륙으로 만든 옷을 걸쳐 입고 비좁은 움집 안에서 체온을 서로 덥히는 온 가족이 모여 그들은 무슨 이야기(신호)를 주고받았을까? 언어 言語밖에서 소통하는 그들의 몸짓은 얼마나 풋풋한 상징이었을까?

 

천안 논산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는 늘 차령고개에서 머뭇거리는데, 그 이유는 앞에 가는 차가 속도를 줄이거나 추월을 하게 되면 잠시 멈추는 조금의 그 사이, 연쇄적으로 지체가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타자로부터 방해와 상처 받고, 피해를 당하며 무엇 하나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나, 호모 루덴스Homo Ludens(놀이하는 사람)는 어느새 다른 부족의 공격과 약탈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긴 목책과 신분에 따라 주거지 움집의 크기가 차별화된 송국리 유적지에 닿는다. 앞에는 너른 뜰이 펼쳐져 있고, 사방을 조망하기 좋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수 백 명에서 수천 명의 이르는 사람들이 직분에 따라 각기 맡은 일에 종사하며 살았을 것이다. 이쯤에서 나는 생각을 고쳐먹는다. 자율적 삶과 타율적 삶의 경계는 과연 어디쯤일까? 생명의 유지를 위해서 나는 어느 만큼의 욕구를 힘 센 권력 앞에 내려놓아야 하는 것인가? 노을이 뉘엿뉘엿 깔리는 송국리 길 건너 산직리 평지에 두 기의 고인돌이 놓여 있다. 도굴되었거나 풍화되어 부장품 하나 없는 돌 밑에 누었던 사람은 성채 城砦를 호령하던 부족장이거나 그 일족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 보다 그들의 장례를 치르기 위한 노역의 풍경에 더 마음이 기울어진다. 채석 採石과 그 돌을 나르기 위해 동원된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 그들은 진심으로 사자 死者를 애도하고 온 마음을 다해 복종했던 것인가? 분업과 협동과 협업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고 외치는 21세기 자본의 스산한 풍경 속에 스며든, 甲乙이 으뜸과 버금이라는 아름다운 뜻을 버리고 지배와 피지배의 대립 항으로 받아들여진 오늘날의 골품 骨品의 재앙이 오버랩되는 까닭은 노안 때문인가? 결코 나는 볼프 슈나이더의 충고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오늘의 내가 구석기의 사내보다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언어의 속박을 몰랐던 그들이, 언전言詮의 미망을 몰랐던 그들이 나는 부럽다. 망한 나라 백제를 지나고 청동기를 거슬러 올라 하루의 풍진을 씻어내려고 이윽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놀이하는 존재인 나와, 신분이 낮아 고인돌 노역에 동원된 나와, 벌거벗은 채 내일을 모르는 구석기의 나와 그리고 스스로 무너져 내린 담처럼 무기력했던 아버지가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돌도끼를 만들 줄 몰라! 

 

 

계간 시와 경계 2016년 봄호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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