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유물과의 대화

김홍도 그의 畫帖 속을 노닐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7. 3. 22:37

김홍도 그의 畫帖 속을 노닐다

입력 : 2016.06.16 04:00

'단양팔경' 옥순봉

이미지 크게보기

 

‘단양 팔경’ 옥순봉과 김홍도 그림 ‘옥순봉도’(아래). 석벽(石壁)의 모습이 비슷하다. 퇴계 이황은 봉우리 모습이 옥빛 대나무 순을 닮아 ‘옥순봉’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한다. /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충청도 땅 남한강 흐르는 강변에 당대 최고 화가 김홍도(1745~1806)가 섰다. 1793년 또는 1794년 어느 날이었다. 강물은 산허리를 감고 휘돌아 나간다. 물에서 솟은 듯 우뚝한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옥순봉(玉筍峰)이다. 옥빛 바위가 대나무 순처럼 뻗었다 하여 단양군수였던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이름 붙였다 한다. 김홍도는 붓을 들었다. '병진년 화첩' 20폭 중 첫째 그림인 '옥순봉도'다. 보물 제782호. 화면 오른쪽 아래 조각배에 앉은 두 선비 중 한 사람은 김홍도 자신일 것이다.

인걸은 가도 산천은 의구(依舊)하다. 그림 속 절경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다. 옥순봉은 '단양팔경' 중 하나. 그런데 주소는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다. 제천시는 옥순봉을 '제천 10경'으로 부른다. 단양이 연고를 주장하는 데는 사연이 있다.

단양군수 퇴계는 1548년 어느 날 두향이라는 관기(官妓)가 청하는 말을 들었다. 옥순봉에 다녀왔는데 봉우리가 기이하고 아름다워 단양 소속으로 했으면 한다는 내용이다. 퇴계는 청풍(현 제천시 청풍면) 고을 원님에게 옥순봉을 단양에 넘기라고 했다. 이를 받아들일 리 없다. 퇴계는 바위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는 글씨를 써 새기게 했다. 단양의 관문이라는 뜻이다. 청풍부사는 남의 땅을 허락없이 경계로 정했다는 말에 화가 났다. 옥순봉에 갔더니 힘차게 살아 있는 네 글자가 보였다. 부사는 감탄하면서 옥순봉을 단양에 내주었다는 이야기다.

제천 청풍호(충주호) 남한강 줄기를 가로지르는 옥순대교를 건너면 옥순봉 쉼터가 나온다. 도로를 건너 가은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초입에 옥순봉 전망대가 있다. 작은 정자 위에 무료 망원경을 놓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보는 옥순봉은 옆얼굴이다. '옥순봉도' 같은 정면 모습은 볼 수 없다. 맞은편 가은산 쪽에서 바라봐야 할 듯했다. 40분쯤 산행하면 옥순봉 정면 맞은편에 해당하는 새바위가 나온다. 하지만 나무에 가려 조망이 어렵다. 물가 아래로 내려가야 김홍도가 본 듯한 구도가 나오겠지만 등산로는 막혀 있다. 위험한 절벽이라 출입할 수 없는 지역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방법은 하나. 단양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탄다. 역시 단양팔경 중 하나인 인근 구담봉과 옥순봉을 돌아오는 배다. 옥순대교가 멀리 보일 무렵 봉우리가 나타났다. 커다란 바위 덩어리에서 왼쪽 덩어리 하나가 갈라져 있는 모습까지 그림과 닮은 풍경이 보인다. 그림처럼 웅장해 보이지는 않았다. 유람선 노들1호 선장 손승봉씨는 "충주댐이 생기면서 남한강 수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충주호 물 깊이는 평균 60m. 수위가 높을 때 물이 들어차 나무나 풀이 자라지 못하고 누런 살갗을 드러낸 산 아랫도리 높이가 거의 150m에 이른다고 한다. 옥순봉 높이는 해발 286m. 김홍도가 찾았을 때보다 수면 위에 드러난 높이가 한참 줄어들었다. 퇴계 글씨는 물 아래 잠겼다. 심산유곡을 흐르던 한 줄기 냇물이었을 남한강은 지금 호수라 불릴 만큼 커다란 물줄기가 됐다.

김홍도는 이른 아침 옥순봉을 찾지 않았을까. 그림 속에서 물안개가 산 주위에 어른거린다. 이튿날 새벽 옥순대교 아래에서 낚싯배를 빌려탔다. 옥순봉을 바라보는 강 건너 자갈밭에 잠시 내렸다. 그래도 그림과 똑같은 구도는 아니다. 그림에서 나타나는 화가의 시선(視線)은 저 물속 깊은 곳 어디쯤일 터이다.

정작 옥순봉을 아니 오를 수 없다. 36번 국도 제천과 단양 경계를 알리는 표지판 서 있는 곳이 등산로 초입이다. 시멘트 도로에 이어 가파른 흙길을 30분(1.4㎞) 걸으면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왼쪽은 옥순봉, 오른쪽은 구담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0.9㎞ 남았다는 옥순봉 길을 택했다. 줄곧 내리막이 이어진다. 조금 전까지 가파른 길을 오르느라 턱밑까지 차올랐던 숨이 잦아든다. 마지막 흰 바위 구간은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다. 정상에는 '옥순봉'이라는 표석이 서있다. 정상 아래쪽 다른 봉우리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더 좋다. 오른쪽으로는 구담봉 절경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옥순대교 아래로 흐르는 남한강 줄기가 굽이굽이 이어진다. 이 물은 남양주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몸을 섞어 비로소 한강이란 이름으로 수도 서울을 가로질러 서해로 흘러갈 것이다.

김홍도는 '옥순봉도'를 '병진년 봄에 그렸다[丙辰春寫]'고 적었다. 1796년이다. 연풍(현 괴산군 연풍면)에서 현감 벼슬을 하다 파직된 이후다. 김홍도는 1792년 12월부터 1795년 1월까지 연풍현감으로 있으면서 단양·제천 일대 산수(山水)를 그렸다. 단양팔경인 도담삼봉, 사인암도 이 무렵 그렸다. 그는 옥순봉 스케치를 숱하게 했을 것이다. 옥순봉 그림은 병진년 화첩 말고도 간송미술관 소장 '옥순봉도'가 남아있다.

김홍도는 옥순봉을 그리면서 200여년 전 봉우리 이름을 지은 대선배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림은 다시 200여년 흐른 지금 우리가 보고 있다.

[그래픽] 단양 명소
■ 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평택제천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청풍호로→옥순봉로. 내비게이션 검색창에서 ‘옥순봉’을 친다. 약 3시간. 옥순대교 건너 옥순봉 쉼터에서 1분 거리에 ‘옥순봉 전망대’가 있다. 등산로는 단양과 제천 경계인 계란재 지킴터에서 시작한다. 오르막길은 가파르고 내리막길은 미끄럽다. 왕복 2시간. 월악산국립공원 단양분소 (043)422-5062

■ 구담봉과 옥순봉 등을 돌아오는 유람선은 장회나루에서 탄다. 약 1시간 간격. 손님이 많으면 더 자주 출발한다. 1만2000원. 충주호유람선 (043)422-1188. 힘든 산행 대신 인근 청풍문화재단지를 여행 일정에 넣어도 좋다.

더덕뽕잎 돌솥정식
■ 옥순봉 인근 도로변 식당 ‘가람’은 제천시가 인증한 한방 음식브랜드 ‘약채락’ 표지를 붙였다. 더덕뽕잎 돌솥정식(1만5000원, 2만원)을 낸다. 2인 이상 주문 가능. 청풍호에서 잡은 민물고기(잉어·쏘가리) 요리도 있다. (043)651-2264

단양 시내 ‘장다리식당’은 마늘정식으로 유명하다. 갖가지 소스를 올린 마늘 반찬이 다채롭다. 온달정식(1만5000원), 효자정식(2만원) 등. (043)423-3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