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를 앞두고 동온돌과 서온돌은 조선후기 당시의 모습대로 도배 및 장판이 교체됐다. 창에는 전통 커튼인 ‘무렴자’가 드리워졌다. 우리 전통 문화의 현대적 계승을 위해 활동하는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가 지난해 시작한 ‘덕수궁 함녕전 정비 프로젝트’ 덕분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궁궐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 시작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낡고 텅 비었던 함녕전 실내가 따뜻한 온기를 품게 된 과정을 중앙SUNDAY S매거진이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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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왕비의 침전인 덕수궁 함녕전 서온돌에는 누비 무렴자를 걸었다. ‘낮에는 돌돌 말아 고리에 걸어둔다’고 기록에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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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렴자를 든든히 잡아주는 나무틀에는 주석으로 만든 꽃모양 장석을 붙였다. 4 무렴자를 말아 걸어두는 고리는 김은영 매듭장의 매듭으로 장식했다. 5 서온돌 누비 무렴자 중앙에는 문자 문양을, 그 아래와 위에는 4 행복을 상징하는 박쥐 문양을 박음질했다.

어느 나라나 궁궐은 당대의 규범과 격식을 갖춘 최상의 건축물이자 최고 장인들의 예술혼과 기술력이 집약된 장소다. 따라서 궁궐의 전각 내부를 정비하고 여러 공예품과 집기를 재현하는 일은 전통의 맥을 잇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2014년 아름지기와 문화재청, 덕수궁 관리소, 문화유산국민신탁은 궁궐 전각의 내부를 정비하고 과거 궁궐에서 사용했던 기물들을 재현하는 사업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살아 숨쉬는 궁궐’을 만들자는 목표였다. 이름하여 궁궐 정비 프로젝트다.
여기에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지난해 7월부터 합류했다. 문화재청과 ‘한문화재 한지킴이’ 협약을 체결하면서 궁궐 정비 프로젝트의 후원을 약속한 것. 179년 동안 장인정신을 고집하며 최고 품질의 제품을 제작해온 에르메스가 한국 장인들의 전통문화 전승에 적극 참여를 천명한 것이다.

1997년 국내에 설립된 에르메스 코리아(대표 한승헌)는 그동안 한국 예술문화 지원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2000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제정해 현재까지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후원하고 있다. 2001년~2013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과 ‘아시아 영화인의 밤’ 프로그램을 돕기도 했다. 에르메스 코리아측은 “지속적으로 국내 장인들을 후원하고 문화재 정비·재현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무형자산이 동시대 뿐 아니라 후대까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서울 중심부에 위치해 시민과 관광객이 가장 가깝게 드나드는 대한민국의 대표 궁궐인 덕수궁 함녕전을 재정비하고 고증을 통해 당시의 생활문화공간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한국의 문화유산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궁궐들의 보존과 복원에 장인들의 기술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아름지기는 이를 위해 여섯 명의 장인을 모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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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에 사용된 ‘능화지’를 제작한 홍종진 배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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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목을 만들기 위해 실을 꼬고 있는 김은영 매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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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렴자를 잡아주는 나무틀을 만든 홍성효 소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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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온돌의 누비 무렴자를 제작한 유선희 누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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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온돌의 무렴자를 만든 김정아 아름지기 온지음 옷공방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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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정비 프로젝트에 참여한 장인들. 홍성효 소목장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용어도 낯선 전통 커튼 ‘무렴자’ 재현


덕수궁 함녕전 정비 프로젝트는 도배 및 장판 교체 공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동온돌과 서온돌 모두 방바닥을 한지 순지로 한 번 초배하고 양지로 두 번 중배한 뒤 1~2시간 물을 축인 장판지로 정배했다. 내벽은 도배지 초배 후 홍종진 배첩장이 새로 제작한 마름꽃 무늬 능화지(菱花紙)로 깔끔하게 도배했다. 능화지는 떡살처럼 무늬가 새겨진 판에 한지를 여러 번 눌러 종이에 올록볼록한 무늬가 생기도록 만든 것이다. 홍 배첩장은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들이 능화지를 즐겨 사용했는데 벽지는 물론 책 표지로도 썼고 집집마다 가문 특유의 무늬를 사용했다”며 “그 중 용과 봉황, 구름이 새겨진 것은 왕실에서만 사용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창호를 새로 바른 창문에는 ‘무렴자’를 드리우기로 결정했다. 무렴자는 전통 커튼의 일종인데 현존하는 유물이 남아 있지 않아 용어 자체부터 낯설다. 조효숙 가천대 부총장(전 한국복식학회장), 김소현 배화여대 전통의상학과 학과장, 아름지기 정민자 고문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단과 아름지기 온지음 옷공방의 김정아 선임연구원, 유선희 누비장인, 홍성효 소목장인, 김은영 매듭장인 등 집기 재현팀이 한자리에 모여 재현 물품과 왕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실증적 자료들을 뒤졌고 마침내 그 단초를 찾아냈다.

 

“왕과 왕비의 침실은 겨울이 되면 사방 벽을 초록 모본단에 솜을 두어 두껍게 누벼 방장을 쳤고 천장에도 마찬가지로 앙장이란 것을 쳐 찬 바람이 조금도 들어갈 수 없었다. 창문이나 방문에도 초록색 솜누비무렴자를 쳐서 그야말로 초록색으로 은폐된 아늑한 방이었다.”

-『낙선재 주변』, 김명길 저, 1977

 

“창에는 외풍을 막기 위해 문염자(무염자, 몰면자)를 치는데 두 쪽으로 되어 있고 낮에는 고리에 걸어둔다. 여름에는 무렴자 대신 발을 친다.”
-『한국주택건축』, 주남철 저, 1980

 

“왕실에서는 겨울에 방한용으로 사면 벽에 방장을 치고 창문과 출입문에는 청감색 솜 누비 커튼을 쳤는데 이것을 무렴자라고 했다.”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 김용숙 저, 1987

 

조선의 마지막 상궁이었던 김명길씨가 77년에 펴낸 책 『낙선재 주변』(중앙일보·동양방송)을 비롯한 기록들을 통해 겨울에는 왕과 왕비의 침실 창에 무렴자라는 커튼을 쳤고, 그 형태는 서양의 커튼처럼 가운데를 중심으로 반으로 갈라져 있으며 낮에는 둘둘 위로 말아 올려 동그란 고리에 걸어둔다는 것을 알아냈다. 서울역사박물관의 도움으로 운현궁의 방장(방문이나 창문에 치거나 두르는 휘장으로 겨울철에 외풍을 막기 위해 사용) 4점을 직접 확인한 무렴자 재현 팀은 소재와 색상, 문양을 참고해 복원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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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용 능화지에는 용·봉황·구름 문양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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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매듭장이 송곳을 이용해 매듭을 짓고 있다. 전통 매듭은 비단실 두께에 따라 오묘한 차이가 난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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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렴자를 잡아주는 나무틀을 만드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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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누빔은 실의 두께와 바늘땀의 폭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유선희 누비장이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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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융을 비단에 붙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바늘 한 땀, 실 두께 하나도 고민의 연속

현재 동온돌과 서온돌의 창문에는 왕과 왕비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두 종류의 무렴자가 걸려 있다. 동온돌의 무렴자는 아름지기 온지음 옷공방의 김정아 선임연구원이, 서온돌의 무렴자는 유선희 누비장이 각각 제작했다.

 

최근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어진에 옷을 입히다’에서 철종의 어의를 복원한 유씨는 “전통 누빔은 1cm 안에 바늘땀의 숫자를 얼마큼 넣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진다”며 “왕실의 품격에 맞는 분위기를 찾기 위해 바늘땀의 길이와 숫자를 많이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무렴자의 중앙에는 각각 용 문양과 문자 문양을, 가장자리에는 행복을 상징하는 박쥐 문양을 넣었는데 이 또한 녹록지 않은 작업이었다. 김 연구원은 “한국의 문양 넣기는 천의 시접을 안으로 밀어 넣어 감침질하는 서양의 아플리케와는 달리 천을 모양 그대로 오려서 그 위에 박음질 하는 형태”라며 “이때 실의 색깔과 두께 자체가 디자인의 요소가 되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문양은 검은 융을 사용해 만들었다. 원하는 질감의 검은 융을 찾지 못해 결국 흰색 융을 검정으로 염색했다. 박음질에 사용되는 실도 직접 꼬았다. 김 연구원은 “기존 구매용 실로 수십 번 실험해봤지만 원하는 느낌이 안 나왔다”며 “결국 얇은 명주실을 한 가닥씩 늘려가며 겹쳐 꼬아 몇 가닥으로 꼬았을 때 가장 아름다운 박음질 모양이 나오는지 하나하나 체크해가며 실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무렴자를 위에서 잡아줄 나무틀은 홍성효 소목장이 제작했다. 보기에는 평범한 일자형 나무틀로 보이지만 비단과 솜이 들어가 묵직한 무렴자를 단단히 잡아줘야 하는 만큼 두께와 넓이 등을 고려해 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무틀 위에는 얇은 주석으로 꽃무늬 장석을 달았다. 집기 재현팀은 이 장석의 두께와 꽃잎의 모양과 각도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를 5번이나 했다. 완성됐을 때 무렴자와의 전체적인 균형감을 위해서였다.

 

밤에는 길게 드리웠다가 낮에는 둘둘 말아 고리에 말아 올렸다는 기록에 따라 무렴자 고리도 만들어야 했다. 이는 무형문화재 김은영 매듭장이 제작했다. 매듭으로 길게 장식을 만들고 그 아래 쇠고리를 단 형태였다. 김 매듭장 역시 실을 직접 염색하고 여러 겹을 꼬아 적당한 두께의 끈목을 만들었다. 무렴자에 어울리는 두께의 매듭을 찾기 위해서다. “한국의 전통 매듭은 전후좌우에서 보아 문양이 똑같은 대칭미가 특징이다. 때문에 어떤 두께의 끈목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함께 어울리는 장식과의 균형미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게 김 매듭장의 설명이다. 말이 쉽지 60cm 끈목 한 줄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서너 배 길이의 실을 물레 같은 틀에 여러 줄을 걸고 꼬기를 하염없이 반복해야 되는 지난한 작업이다. 더욱이 끈목의 두께가 두꺼울수록 매듭을 당기고 조이는 작업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김씨는 “그래서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용한 장식용 매듭 장인은 모두 힘이 센 남자였다”고 설명했다.

 

보존 방법에 대한 협의는 남은 숙제

지난해 가을 논의를 시작해 도배와 장판이 바싹 마르기까지 한 달여가 소요됐다. 무렴자는 12월 초 완성됐다. 그리고 12월 16일 함녕전 동온돌과 서온돌 창문에 무렴자가 설치됐다. 창밖은 매서운 바람이 불고 냉랭한 온돌바닥은 발끝을 시리게 했지만 아름답고 튼튼한 바람막이를 드리운 함녕전은 포근해 보였다.

보는 이들에겐 그저 도배, 장판 다시 하고 창문에 커튼 하나 드리웠을 뿐인 작업으로 생각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통문화 복원이라는 작업은 시간 그리고 정성과의 싸움이다. 실 두께·바늘 땀 하나, 색과 문양 역시 당대의 문화를 반영하기 위해선 철저한 고증과 반복의 실험이 뒤따른다. 그 힘든 시간과 싸움하며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켜가는 이들이 바로 전통공예 장인들이다.

 

프로젝트 결과물을 보며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함녕전 실내는 여전히 휑하다. 사극에서 보던 것처럼 병풍을 두르고 보료라도 깔아두면 좋을 텐데(김명길 상궁이 쓴 『낙선재 주변』에는 “침실에는 세간을 절대로 놓지않고 이부자리만 깔았는데 아마 왕의 산변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고 적혀 있다). 함녕전 일반인 개방을 한시적으로만 하지 말고 꾸준히 지속할 순 없는 걸까. 하다못해 지금의 무렴자에 예쁜 조명 하나라도 비춘다면 분위기가 확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관리와 비용이 필요하다. 또 문화재 보존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섬유는 습기를 먹으면 썩게 마련이다. 때문에 온돌에 불을 때 실내를 적절한 온도로 유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전기온돌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온돌을 뜯고 전기배선을 숨기는 공사를 해야 한다. 문화재를 옛날 그대로 보존할 것인지, 현대적으로 정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다행히 아름지기의 궁궐 정비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이다. 다음 프로젝트는 덕수궁 석어당의 목가구 집기 재현이다. 현재 아름지기 자문위원단이 목가구 아이템과 장인 선정을 협의중이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우리 궁궐이 원래의 우아한 모습을 되찾을 때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볼 일이다. ●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아름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