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초부터 2년간 중앙일보의 ‘펜으로 복원한 한국건축문화재’ 칼럼에 27점의 복원도를 연재하면서 가장 그리고 싶었던 것이 황룡사 9층 목탑이었습니다. 신라가 백제 큰 목수 아비지를 초청하고, 장인 200여명을 동원해 646년(선덕여왕 15년) 준공한 황룡사 9층 목탑은 탑신이 총 80m로 요즘 27층 아파트와 같은 어마어마한 높이입니다. 신라가 3국 통일을 할 수 있게 만든 호국의 상징물로 세계 최고의 목조건축기술이 발휘된 세기적 건물이었습니다. 피뢰침이 없어 다섯 차례 벼락을 맞았고, 지진에도 피해를 입어 여러차례 중수공사를 합니다. 592년간 위용을 자랑하던 대탑은 1238년(고려 고종 25년) 몽고의 침입으로 황룡사와 함께 잿더미가 됩니다. 이후 1200여 년간 황무지였던 터에 남은 주춧돌로 알 수 있는 것은 1층 폭 22.2m로 7칸 건물이었다는 것뿐이어서 복원도를 그리기에는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고려 중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김극기는 “층계는 빙빙 돌아 허공을 나는 듯” 하고, “몸은 신선을 따라 밖에 나왔고”, “달 속 계수 향기는 난간 밑 바람에 나부끼며”, “굽어보니 동도의 많은 집들이 벌집, 개미구멍처럼 아득해 보이네”라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내부에 층계가 있었고, 층마다 보랑과 난간이 돌출돼 있어 9층 밖에서 서라벌을 내려다보았다는 증거로 삼고, 김동현 박사의 복원도를 참고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80m 높이의 대탑을 47.5cm 화면에 담는 작업에는 극 세밀 기법이 필요했습니다. 선 굵기 0.1㎜의 세계에서 가장 가는 매핑펜을 사포에 갈아 0.05㎜로 만들어 그렸습니다. 수백만 번의 펜 선을 그으면서 눈과 어깨에 생긴 고통은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8월 개관하는 경주시 황룡사 역사문화관 로비에 정밀스캐너로 확대해 가로 2.5m의 대형 작품으로 전시됩니다.

 

 

김영택 화백 penwhag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