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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名, 悲鳴, 碑銘의 시/ 문철수 시집『구름의 습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6. 16. 10:38

非名, 悲鳴, 碑銘의 시

 

나호열 (시인․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

 

 

만약 당신이 고통에 시달릴 만큼 외부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고 오히려 외부적인 것에  의하여 즐길 수 있다면 당신은 

 

 

 

내적 삶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며, 당신이 만약 내적 삶을 갖고 있지 않다면 당신의 시는 텅 빈 것이다.

 

                                                                                              - 막스 자콥 Max Jacob

 

시인은 누구보다 고통에 예민한 존재이다.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나그네의 슬픔을 느끼고, 풀섶에 피어있는 찔레꽃 가시에 가슴을 다치기도 한다. 자신과 무관한 이웃의 삶을 기웃거리고 무모한 열정으로 온 세상을 사랑하겠다는 의무감을 스스로 걸머지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규정할 수 없는 삶의 문제들을 자신만의 독백獨白으로 내뱉는 표현이 그의 시가 된다. 그러나 시인이 자신의 독백을, 표현의 의지를 표명하는 순간부터 시인은 시가 무엇이며, 자신의 시가 누구를 향해 가는지에 대해 되물어야 하는 과제에 부딪친다. 익숙한 시의 정형定型으로부터의 해방, 표현의 욕망이 야기하는 세속적 관심의 한계를 설정해야하는 일들이 시인의 글쓰기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의식儀式을 모든 시인들이 통과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문학 행위는 허구이므로 언어가 지닌 애매모호의 속성에 힘입어 언행일치言行一致라는 의무감으로부터 빗겨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참다운 시인이라면 시를 쓰기 위한 준비로서 시의 정형과 시를 써야하는 당위성에 대하여 마땅히 숙고熟考하는 의식을 치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非名의 시

 

시집『구름의 습관』은 문철수의 두 번째 시집이다. 팔, 구년 전에 첫 시집 『부드러운 과녁에 꽂힌 화살은 떨지 않는다』를 상재한 바 있으니 긴 침묵의 시간을 보낸 셈인데, 첫 번째 시집과 이번 시집 사이의 변모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그 전 과정을 이야기하기는 지면이 부족하므로 우선 첫 시집에 실린 시 한 편을 소개하겠다.

 

고목에 파편처럼 박힌 옹이

사투 끝 짜내지 못한 고름

 

네가 토한 삶의 비늘들은

살을 가르고 꺼낸 네 골수

가슴 속에서도 머물지 못하는

하얀 거즈에 배어드는

금빛

사투의 흔적

 

새벽녘 몸부림 끝 구겨진

발기하지 못하는 원고지더미

 

- 「시를 쓰다」 전문

 

문철수에게 시는 ‘삶의 고름을 짜내는 일’이며 ‘살을 가르고 꺼낸 골수’인 까닭에 곧바로 낭만적 서정을 향해 가지는 않는 것 같다. 첫 시집 해설에서 황정산은 ‘시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박히는 화살과 같다’고 정의하면서 고통을 감내하여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과 그 아름다움으로 타자와의 소통을 꿈꾸는 일이 문철수의 시업 詩業이라고 정리했다.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시집『구름의 습관』의 얼개를 살펴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밥같이 경험하고

똥같이 써라 쓰고

길고 긴 사족을 달다가

 

근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싶어

썩은 무 썰 듯 버린다

 

시는

그저

밥같이 경험하고

똥같이 쓰는 것일뿐

 

                - 「제기랄 시론」 전문

 

「시를 쓰다」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문철수 시인이 생각하는 시의 위의 威儀와 시를 써야 하는 당위를 밝힌 것이라면 「제기랄 시론」은 그의 시법詩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는 시이다. 산문화되고 부조리한 심리를 교직交織하는 당대 當代의 시의 풍문을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그는 그런 유혹으로부터 멀리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에게 당대의 유력한 시법들은 ‘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기준이 있’(「고추」부분)고, ‘빈 껍데기들 공허한 웃음으로 비껴가’( 「불편한 동거」 부분)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은 삶에 대한 냉소와 허무를 껴안을 때 더우 공고해진다.

 

지나온 길을 기억하지 않는다

지나온 날을 기록하지 않는다

지나온 삶을 기념하지 않는다

- 「바람의 이력서」 전문

 

사실 모든 예술 행위는 ‘기억’되고, 기억되기 위해서 ‘기록’되어야 하며, 기록됨으로 말미암아 ‘기념’되기를 추구하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기억되지 않고, 기록되지 않으며, 기념할 수 없는 일(시 쓰기)은 시인 문철수에게 어떤 전망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비명 非名은 - 필자가 임의로 만든 조어造語임 - 바람처럼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 명분이나 명예와 같은 잡을 수 없는 무지개나 물거품들에 대한 관심이거나 야유를 이르는 말이다. 문철수 시의 특징은 바로 이와 같은 헛된 것들에 대하여 눈짓을 보내는 자신에 대한 절규를 주저하지 않는데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런 점을 살펴볼 때 그는 철저한 현실에 등 돌린 허무주의자인 동시에 무모한 아나키스트anarchist인 것이다.

 

悲鳴의 시

『구름의 습관』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는 짧다. 짧은 시는 정교한 아포리즘aphorism이나 잠언 箴言의 격 格을 갖추지 못할 때 치졸한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짧은 시를 고수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를 우리는 ‘근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싶어/ 썩은 무 썰 듯 버린다’는 시법에서 발견할 수 있었고, 바람과 같이 소멸을 존재로 삼는 삶의 본질(「바람의 이력서」)을 체득한 시인의 기질로부터도 추출할 수 있었다. 시인에게 있어 삶은 ‘ 단순히 닳아 없어지는 줄 알았더니 / 제 몸을 끊어내는’( 어떤 삶)일이며, ‘넓고 깊은 두려움을 애써 외면하고/ 검푸른 파도에 미친 척 몸을 맡기는 것’( 「강이 바다가 되는 법」)과 같이 피동적 슬픔이기도 하고, ‘상처를 각오하지 않고는 나서지 말아야 하는’(「세 발 강아지」)세상에 던져지는 일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냄비」,「 꽃은」,「북」과 같은 『구름의 습관』의 많은 시들이 이러한 삶의 비극적 장면을 보여주고 있음을 볼 때 문철수의 세계관은 허무주의자의 시선으로부터 결코 자유스러울 수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뿌리를 뻗을 때마다

마주하는 통증을 기억하려

지상에 건물 한 층 올린다

외벽은 푸른 자존심

내벽은 투명한 종이로 도배하지만

입주는 절대불가

꺾이지 않으려 휘청이면서도

죽음이 지나고나서야 겨우

가슴을 열어 바람을 들인다

내벽을 떨어져 나온 발효된 통증

누렇게 툇마루를 노닌다

- 「竹기까지」 전문

 

 

대나무의 속성과 보잘 것 없는 남루의 삶을 유니크하게 빗댄 위의 시는 ‘죽음이 지나고나서야 가슴을 열 수 밖에 없는 발효된 통증’을 증언한다. 시인에게 있어서 이 발효된 통증은 허위와 허세가 무너지는 단말마의 절규로 튀어나오는 까닭에 그의 시는 어쩔 수 없이 새어나오는 신음을 기록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그의 시는 설명이 필요 없는 대나무 같은 느낌표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시에 또 다른 측면에서 - 동전의 양면과 같이 - 짙푸른 허무주의에 함몰될수록 허무로부터 벗어나려는, 속된 규범의 거부가 야기되면서 아나키스트의 전모가 드러나기도 한다. 시집의 표제이기도 한 다음 시를 읽어 보기로 하자.

 

밤새, 바람은 구름을

산골짜기 마다 심어 놓았다

순면 생리대 같은 구름은

까닭도 모른 채 골짜기 마다

납작 엎드려 졸고 있다

바람은 짐짓 외면하고

중천 태양도 지쳤는지 숨어버린 한낮

젖은 도로를 더듬는 타이어는

찢어지는 듯 얕은 신음만 뱉고

바다는 숨소리 거칠다

누구는 물안개라 하지만 본질은 같다

다만 다른 습관이 있다면

바람의 외면을 견디지 못하고

거칠게 세상을 흔들기도 한다는 것

마음이 무거워지면 울컥 쏟아내고

투명하게 사라진다는 것

- 「구름의 습관」 전문

 

존재에 대한 시인의 인식은 정처 없음, 존재하는 동시에 소멸하는 물활론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바람’과 마찬가지로 ‘구름’도 삶의 지경에서 포획할 수 없는 자유의 상징이다. 시인이 꿈꾸는 삶은 구름의 습관처럼 아무 곳에나 존재하며, 아무 곳에나 스며들면서 모든 존재의 거름(물)이 되는 것이다. 非名으로부터 悲鳴에 이르는 존재의 고통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개별적 존재의 탐구로부터 타자 他者와의 관계로 관심을 이끌어간다.

네겐 아름다움이겠지만 내겐

아픔이다

통증을 견뎌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바람 앞에

나서지마라

- 「외돌개」 전문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시피 ‘외돌개’는 제주도 바닷가에 서 있는 멋있는 풍물이다. 그러나 시인에게 있어서 외돌개는 고독의 표상으로 다가온다. ‘너’ 이든, ‘나’이든 우리는 서로에게 ‘외돌개’로 서 있다는 것. 외돌개로 서로를 아름다움으로 바라보는 동질성과 더불어 서로를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차이성 때문에 바람이 일으키는 바람의 통증은 서로에게 悲鳴이 될 수밖에 없다. 타자에 대한 관심이 커져갈수록 그 순간 ‘ 발 아래가 어두워지고 / 너도 보이지 않’( 등)게 되고, 그 타자에의 관심이 ‘사랑’이라는 의미로 확대될 때 오히려 ‘내 발 아래 밝아지면 그것이 / 길이 되고 소통이 된다’는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시인의 예리한 통찰력을 어찌 할 것인가.

 

碑銘의 시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희노애락의 풍상은 이와 같이 모두 마음의 작용으로부터 시작된다.

들고 있으면 너무

무겁고

내려놓으면 너무

가벼운

- 「마음」 전문

 

허무도 자유의지도 마음에 담겨져 있는 허상이다. 만약 시인 문철수가 시로서 드러내고자 하는 세계가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찬 허무나 그 허무로부터 벗어나고자하는 자유의지를 무모한 몽상에 의지했다면『구름의 습관』은 실패한 시집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들 수도 없고 내려놓을 수도 없는 ‘마음’을 무게가 아닌 크기로 의식의 전환을 이루지 않았다면 그의 마음은 생명성을 상실한 텅 빈 공간에 머무르고 말았을 것이다. ‘멀리 밝히려 마라 / 올라갈수록 발아래 어두워지고 /너도 보이지 않는다’( 등)는 인식으로부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룬 다음과 같은 시는 시인의 悲鳴이 碑銘으로 승화되는 순간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세상을 등지고 산 속에 산다는

일명 자연인이 나무에 거울을 걸었는데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볼 수 없단다

나무가 조금씩 자라면서 거울도 높아진 것

그럼에도 그 거울을 내려 걸지 않는 건

쳐다보려 다가서지 않고 한 발 두 발

물러나면 자기 몸 하나 쯤 볼 수 있어서

나무는 키로 크지만

사람은 마음으로 크는 것

 

- 「거울을 보는 법」 전문

 

다가서지 않고 물러서야만 들여다 볼 수 있는 자신의 얼굴처럼, 사람은 마음으로 큰다는 깨달음은 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에 담겨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확신하게 해준다. 간략하게 말해서 시인 문철수가 도달한 마지막 봉우리는 ‘사랑’이라는 높은 봉우리이다.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봉우리는 마음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는 시인의 각성은 돈오 頓悟가 아니라 삶의 신고 辛苦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산견되는 몇 편의 사랑을 주제한 시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시는「사랑론 2」이다. 이 시를 그저 남녀상열지사의 지극하고도 간절한 토로로 읽어도 좋지만 ‘사랑’이 단순히 감정의 움직임이 아니라 헤아릴 수없는 노동과 같은 수련을 거쳐야만 거두어들일 수 있다는 시인이 발언은 시집『구름의 습관』이 단순히 편편의 시의 집적이 아니라 아날로그적인 사유의 진지한 탐색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노동에 길들려면

써보지 않은 근육을

만 번이나 뒤척여야 한다

 

새로운 사랑에 길들려면

깃든 적 없는 낯선 마음을

만 번이나 흔들어야 한다

 

네게 그 사랑은

그렇게 찾아온 것이다

 

- 「사랑론 2」전문

 

시인의 마음에 들어가지 않고는 그가 마음에 새겨놓은 비명을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절절한 사랑의 노정을 헤아릴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밝고 따뜻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간략하게나마 몇 편의 시를 통하여 문철수 시의 노정을 살펴본 결과 그의 시는 현재 시단에 유행하는 시류를 벗어나 있는 파격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반면에 정교하고 현란한 비유의 미학을 현저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우려도 상존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름의 습관』을 사려 깊게 바라보아야 할 이유가 있음을 밝히지 않을 수가 없다. 박태일 교수가 시인을 심리적 시인관과 사회적 시인관으로 나누면서 시 창작에 있어 여느 사람과 다름없지만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사회적 시인보다 시인 안쪽에 시인이 됨직한 특질을 가진 심리적 시인을 좋은 시인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기꺼이 심리적 시인의 반열에 문철수 시인을 올리고 싶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구름의 습관』이후의 시적 변모를 예감할 수 있는 전조 前兆를 감지할 수 있음에 깊은 경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문철수의 시는 풍부한 비유와 미적 감각을 가득 품은 서정의 세계로 진입할 것이라는 확신이 바로 그것이다. 「상고대」와 같은 풍부한 감성이 치밀한 비유의 질감으로 승화된 시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예감은 즐겁고 상쾌하다.

 

청송을 지나 영덕의 하늘로 전입하는 시간

물속에 발을 담근 나무들 옷을 벗었다

계곡이 막히고 물길이 막히면서 뛰어오르던

물고기마저 사라진 후 아랫동네 소식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않았다

바람마저 댐에 부딪혀 허공으로 솟고

나무는 수위가 높아지면서 물족쇄에 묶여

껍질 벗겨져 죽음의 옷을 입었다

잎을 키우던 그리움 대신 젖은 몸을 가졌다

어느 날 부턴가 천상의 부고가 잦아들고

동상으로 온몸 얼어붙으면 그때마다 사람들

하얗게 피어오른 미련 또는 그리움을 찍는다

아픔을 인화시킬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하여 외로운 사람은 옷을 벗고

그리운 사람은 겨울마다 흰 꽃을 피운다

 

-「상고대」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