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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평 '삼지내마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2. 9. 11:10

구불거리는 물길 따라 흐르는 느림의 미학

노은주·임형남 가온건축 공동대표

 

입력 : 2016.02.04 04:00

[노은주·임형남의 골목 발견] 창평 '삼지내마을'

[노은주·임형남의 골목 발견] 창평 '삼지내마을' 
그림=임형남
전라남도 담양 인근은 무수한 정자와 많은 학자와 아름다운 자연의 이야기가 촘촘히 박혀 있다. 명옥헌, 소쇄원, 식영정, 독수정, 면앙정, 그리고 화순 적벽 등의 볼거리와 다양한 먹거리 등 발길을 이끄는 곳이 너무나 많다.

특히 창평은 김제, 정읍 근처같이 일망무제의 너른 들은 아니지만 무척 비옥한 곳이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그런 경제적인 여유는 예술과 철학으로 승화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창평의 들판을 보면 시원함과 더불어 애간장을 녹이는 듯한 리듬이 느껴진다. 다른 어떤 구경거리보다도 그런 리듬에 몸을 얹고 이곳을 거니는 것이 가장 즐거운 여흥이다.

그리고 창평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유명한 고경명(高敬命·1533~ 1592)이라는 사람의 후손들이 사는 동네 삼지내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세 곳에서 오는 물, 즉 월봉산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월봉천과 운암천 그리고 유천이 만나는 동네라는 의미라 한다.

그리고 이 동네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슬로 시티'로 지정된 마을이라는 것이다. 1999년 이탈리아 소도시에서 시작된 슬로 시티 운동은 "자연 생태를 슬기롭게 보전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기반으로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과 진화를 추구해 나가는 도시"의 가치를 찾는다는 뜻이다. 최초, 최고를 아주 좋아하는 우리네의 정서로 볼 때 이곳에 무슨 특별함이 있을까 궁금할 수도 있지만, 첫인상으로는 오래된 고택과 돌담이며 동네를 관통하는 실개천이 잘 보존된 곳이라는 정도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곳이 삼지내마을이다. 사람의 얼굴이나 인격이 다양한 것처럼 집도 그 느낌이나 품격이 다양하고, 마을 역시 아주 다양한 얼굴과 성격을 보여준다. 삼지내마을은, 아주 조용하고 성실하지만 굳은 내면을 가지고 있는 모범생 같은 느낌을 준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은 없지만 산이나 물이나 길이 모두 평범한 듯 비범하고 빠진 부분 없이 잘 갖추어진 곳이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인상을 주는 곳은 3.6㎞나 이어지는 둥근 화강석을 진흙으로 쌓은 토담길이다. 담은 마치 길고 긴 이야기를 풀어나가듯이 동네를 휘감으며 꿈틀꿈틀 기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담의 아래로 얕은 도랑이 같이 흘러간다. 구불거리는 도랑의 물길과 그 물길과 평행하게 이어지는 토담을 따라 길을 걸을 때, 정지용이 노래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생각난다.

동네에는 창평 고씨 집안의 오래된 집들도 여러 채 있지만 다양하고 자유로운 형태의 민가들도 볼 만하다. 특히 창평 면사무소 뒤에 있는 2층 한옥은 아주 특별하다. 지어진 지 80년 남짓 되었다니 아주 유서가 깊거나 건축적으로 대단한 곳은 아니지만, 필요에 맞게 자유롭게 변형해서 지어진 민가의 건강함이 보인다. 다만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시대에 맞게 적응하며 건강하게 유지되는 삼지내마을을 상징하는 듯해서 보기 좋다.

크지 않은 동네는 아무리 느릿하게 걸어도 이내 끝이 보이고 바로 넓고 유장한 전라도의 들판이 나온다. 멀리 인왕산이 보이고 가까이는 오똑하게 들판에 서 있는 2층 누각이 보인다. 옛 창평 관아의 문루를 옮겨 놓았다는 남극루이다.

창평의 그 너른 들은 고경명과 동문수학했던 정철(鄭澈·1536~1593)을 키워낸 곳이고 그를 보듬어 준 곳이기도 하다.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한생 연분이며 하날 모랄 일이런가

나하나 졈어 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졸 대 노여업다.

(아래아 표기는 'ㅏ'로 통일)

이 글은 사랑하는 임에 대한 애끓는 마음을 표현한 사랑 노래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임은 연모하는 이성이 아니고 한용운의 임처럼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지도 않은 바로 자신의 고용주이다. 조선시대 가사 문학의 백미인 이 글의 제목은 '사미인곡(思美人曲)'이고, 지은이는 조선시대의 유명한 정치인이자 문인인 송강 정철이다. 그러므로 그가 이야기하는 임은 바로 당시의 임금, 선조였을 것이다.

나는 이 글을 무척 좋아해서 가끔씩 소리 내서 읽어본다. 옛날 말인지라 내용은 알 듯 말 듯하지만 무척 애틋하고 특히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말의 맛이 아주 좋다. 좋은 글이란 마음을 건드리고 머리를 깨우치는 효능 말고도 입을 즐겁게 해준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송강 정철의 글들이 그렇다. 구운몽을 썼던 서포 김만중은 '서포만필'이라는 책에서 송강의 가사를 들어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이라고 칭송했다.

정철이 이 글을 지은 것은 치열하던 정치 활동을 잠시 뒤로 물리고 어린 시절 아버지와 같이 살았던 곳이며, 그의 학문과 정신의 고향인 창평에 머물 때였다. 정철의 인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했다. 궁궐이 가까운 장의동(청운동)에서 태어나고 누나가 임금(인종)의 후궁으로 들어간 덕분에 궁궐을 들락거리며 화려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열 살이 될 무렵 집안이 을사사화에 연루되는 바람에 귀양가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그의 운명은 고달파진다.

함경도를 전전하다 15세에 아버지가 유배에서 풀려나며 할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창평으로 옮기는데, 여기서 신비한 인연으로 김윤제라는 학자를 만나며 정철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열리게 된다. 이어 스승의 소개로 창평과 담양 인근의 훌륭한 학자들이 팔 걷고 나서서 그를 키운다. 정철을 가르친 스승들의 면면을 보면 놀랍다. 임석천, 임억령, 기대승, 송순 등 당대 최고의 학자·문인들이다. 이후 정철은 장원급제하며 화려하게 세상의 중심으로 복귀하여, 때론 낭만적인 문인이고 때론 냉철한 정치인, 혹은 유능한 지방관으로 아주 다양한 얼굴을 세상에 보여준다. 아마도 정철은 이곳의 풍경을 보면서 다시 아름다운 시인으로 돌아왔고, 고경명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굳건한 마음을 키웠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러나 나는 삼지내마을의 살풋한 돌담길을 거닐다 문득 창평의 너른 들과 품을 열어 푸근하게 안아주고 있는 무등산을 보고 있노라면, 단지 세상사 바쁠 게 뭐 있겠나 하는 여유로워지는 마음에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일어날 뿐이다. 땅이 깨어나며 화려하게 살아나는 봄에 다시 한 번 꼭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