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군에서 신라 진흥왕 때인 543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석문(金石文·쇠나 돌에 새긴 글씨)이 발견됐다. 금석문이 지금으로부터 1472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데다, 국보 242호인 울진 봉평리 신라비(524년 제작 추정)와 시기가 비슷해 보물급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잠정 평가를 받고 있다.
38자 중 30자 판독 “보물급 이상”
귀족 서열 10위 ‘대나마’ 글 추정
울진군은 16일 근남면 노음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155호인 성류굴(聖留窟) 입구 위 석회암 바위에서 가로 30㎝, 세로 20㎝의 금석문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에 고대 금석문이 발견된 건 국내 처음이다. 해서(楷書)체로 된 이 금석문은 세로 7행 38자며 글자 크기는 가로 3㎝, 세로 4㎝로 음각돼 있다.
지난 6일 성류굴을 찾은 고고학자인 박홍국(59) 위덕대 박물관장이 발견했고, 이후 세 차례 조사에서 543년(진흥왕 4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됐다.
새겨진 연대를 말해주는 첫째 줄은 비교적 또렷하지만 그 뒤 글자는 흘러내린 석회암 종유에 덮이거나 표면이 벗겨져 판독이 쉽지 않다. 울진군 측은 “현재까지 모두 30여 자를 판독했다”고 밝혔다.
박홍국 관장과 심현용 울진봉평신라비전시관 학예연구사가 공동으로 판독한 글자는 ‘癸亥年三月 八日△丑付智 大奈麻未△△ 此時我沂大思 △古(또는 右)五(?)持△ 知人夫息(또는 見)信 刀?△咎△’이다. 이를 해석하면 ‘신라 진흥왕 4년 3월 8일 축부 대나마(大奈麻, 신라 17 관등 중 10번째 해당하는 경위)가 울진 성류굴에 왔다 남긴 글’이란 의미다.
신라시대 금석문 기재 방식인 직명(職名)·부명(部名)·인명(人名)·관등명(官等名)의 순으로 돼 있다. 부명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나마’의 관등명이 울진 봉평리 신라비와 동일한 글자로 돼 있는 점, 간지(干支)로 글이 시작된 사실 등을 근거로 학자들은 금석문에 적힌 계해년을 543년으로 추정했다.
이 금석문을 조사한 학자들은 글자가 모두 판독되고 내용이 해석되면 6세기 신라의 관등·제사·지방통치 등을 연구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영호 경북대 교수(신라사)는 “성류굴 명문은 충북 제천 점말동굴 입구에 각석이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자료로서 보물급 이상의 가치가 있고 신라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박홍국 관장은 “명문을 통해 울진 성류굴이 삼국시대부터 즐겨 찾는 명승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면서 “이번에 발견된 명문 이외에도 종유에 덮이거나 마모된 문자들에 대한 추가 정밀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울진 지역은 1988년 죽변면 봉평리에서 발견된 봉평리 신라비에 이어 이번에 근남면 노음리에서 금석문이 확인됨에 따라 한국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울진=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