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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고래와 수증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3. 11. 23:28

 

"순정을 생각하며, 담백하게 썼다"

5년 만에 네 번째 시집 ‘고래와 수증기’ 낸 김경주씨

경향신문 | 정원식 기자 | 입력 2014.03.11 21:36

고래는 바다 깊이 자맥질했다 수면으로 올라와 수증기를 내뿜는다. 그 수증기는 고래가 내쉬는 숨이다. 고래는 이 일을 평생 반복한다. 시인은 고래를 닮았다. 시인은 감각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자맥질해 언어를 뱉어낸다. 이 일을 평생 반복하는 시인에게 시는 자신의 숨결이다.

< 고래와 수증기 > (문학과지성사)는 시인 김경주씨(38)가 5년 만에 내놓은 네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11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시집은 시 자체에 대한 순정을 생각하며 쓴 것"이라며 "순정이란 잃어버린 걸 회복하거나 탁해진 걸 고결하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큰 목소리로 떠들지 않는 것이다. 담백해지려고 했다"고 말했다.





사진 | 문학과 지성사 제공

▲ 이전의 난해한 산문시 대신
간결하고 담백함으로 포장
리듬과 형식의 전달에 집중


이번 시집에는 시쓰기와 시읽기가 무의미한 장식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시는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시인의 자의식이 투영돼 있다.

그에게 시와 시인은 모든 곳에 있지만 흔적을 감지하기 힘든 '입김'이다. "무대 위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입김이다/그는 모든 장소에 흘러 다닌다/그는 어떤 배역 속에서건 자주 사라진다/일찍이 그것을 예감했지만/한 발이 없는 고양이의 비밀처럼/그는 어디로 나와 어디로 사라지는지/관객에게 보이지 않는다."('시인의 피')

< 고래와 수증기 > 는 이전 시집들에 비해 간결해졌다는 느낌을 준다. '독해가 어렵다'는 평을 받았던 그의 시들은 이번 시집에 이르러 난이도 면에서 좀더 완만해졌다. 분량면에서도 긴 산문시가 주종을 이루던 이전과 달리 두 페이지를 넘는 시는 거의 없다.

대신 시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리듬과 형식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음악성, 간결함, 담백함을 전달하려고 했어요. 산문과 달리 시에서는 행간이 중요합니다. 시의 행간에는 언어로 쓰여져 있지 않은 언어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시를 곁에 두려고 하는 이유는 시에는 설명될 수는 없지만 전달될 수는 있는 여백의 느낌이 있기 때문이에요."

스스로 시의 '고유성'에 대한 감각을 보존하고 독자들에게 이를 전달하기 위해 그가 오랫동안 해온 일이 있다. 낭독이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소규모 낭독모임 펭귄라임클럽'이라는 모임을 꾸려 시를 낭독해왔다. 지금은 20여명 정도가 매달 마지막주 일요일 홍익대 부근 카페에 모여 자작시를 낭독한다. "시의 질감은 소리를 통해서만 전달됩니다. 이번 시집에 묶인 시들도 지면에 발표하기 전에 낭독모임에서 먼저 낭독했던 것들이에요."

그가 시의 고유성 회복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시인이 많으면서도 시 읽는 독자층은 가장 얇은 한국 사회의 역설적 풍경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그냥 눈물이 난다. "그런데 오늘 아침 기사는//시집은 쌉니다//그냥 눈물이 나/나, 그냥"('그냥 눈물이 나') 그는 "쓴소리를 한 것이 아니라 서글픈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들의 탓만은 아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시인들이 독자와 소통하기보다는 시라는 지적 은신처에 숨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가 소수만 누리는 마니아 문화의 일부가 됐어요. 2000년대의 시가 보편성보다는 개별성에 주목하면서 얻은 것도 많지만 시와 교감하는 독자층과 균열이 생겼습니다."

시인은 이번 시집 뒤표지에 "긍지와 고뇌, 외로움으로 세월에 남겠다. 그렇게 믿고 싶다"고 적었다. 시의 처지가 아무리 곤궁해도 오롯이 시인으로 남겠다는 뜻이다.

<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