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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3. 9. 10:53

 

박상진의 우리 땅 우리 나무 <7> 향나무

[중앙일보] 입력 2014.03.08 00:52 / 수정 2014.03.08 00:56

창덕궁에 700년 된 고목 … 제사 때마다 조금씩 잘라 향 피워

 

1 창덕궁 봉모당(奉謨堂) 앞에 자라는 700년 된 향나무. 2 경남 사천 곤양 흥사리에 있는 사천매향비(泗川埋香碑). 3 정원수로 흔히 심는 가이스카향나무.
훈풍에 실려 오는 상큼한 향내는 봄의 축복이다. 보통 꽃향내로 익숙해 있지만 나무 자체가 진한 향내를 내뿜는 향(香)나무도 있다. 꽃향내는 잠시 코끝을 스치는 정도인 것에 비해 향나무 향내는 몇 년에 걸쳐 두고두고 맡을 수 있다.

 옛날 종갓집에서는 고목 향나무 줄기에서 향내가 강한 속 부분을 작은 토막으로 잘라내어 베로 싸서 다락 속 깊숙이 보관해 둔다. 제사를 지낼 때면 향나무 토막을 얇게 깎아내어 불씨 담은 향로에 얹어 둔다. 몇 오라기 실처럼 가느다랗게 피어오르는 약간 파란 연기가 퍼지면서 은은한 향내로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제사에 필요한 향나무는 궁궐이나 서원(書院) 및 향교 등에 심어 특별히 가꾸고 보호했다. 창덕궁에는 700년이 넘는 향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궁궐의 각종 제사에 조금씩 잘라 쓰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고 품질의 향은 따로 가져다 쓰기도 했다. 정조 18년(1794) 강원도 관찰사가 울릉도를 조사하고 조정에 보고한 내용에는 ‘자단향(紫檀香) 두 토막을 올려보냅니다’라고 했다. 여기서의 자단향은 향나무를 말하며 울릉도에서 생산되는 향나무가 최고의 품질을 자랑했다. 향나무 목재는 불상(佛像)이나 고급 가구 등을 만드는 데 애용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알려진 해인사 비로자나불도 향나무이며,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러 갈 때도 향나무 수레와 보석으로 장식한 말이 30여 리에 이어졌다고 한다.

 향을 내는 재료에는 향나무 외에 침향(沈香)과 매향(埋香)이 있다. 동남아시아 아열대 지방이 원산인 침향나무를 베어 땅속에 묻고 썩히거나 줄기에 상처를 내어 흘러내린 수지(樹脂)를 수집한 것이 침향이다. 이를 의복에 스며들게 하거나 태워서 향내를 맡고 귀한 약으로도 이용했다.

 그러나 침향은 값이 비싸고 귀해 왕실이나 귀족들만의 차지였다. 일반 백성은 대신에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해안에다 향나무를 묻어두는 매향을 했다. 수백, 수천 년 동안 향나무를 땅에 묻어두면 진짜 침향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런 행사를 했으나 향나무가 침향이 될 수는 없다.

 제사에 향을 피우고 신성시하는 풍습은 종교의식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불교나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의 발상지는 대체로 아열대 지방이므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종교행사에는 찌든 옷에서 풍기는 땀 냄새가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냄새를 없애주는 수단으로 향 피우기가 가장 효과적이었다.

 우리나라에 향을 피우는 풍습은 신라 눌지왕(417∼458) 때 양나라 사신이 향을 가져오면서부터다. 처음에는 이름도 쓰임새도 몰라 어리둥절해할 때 고구려에서 온 묵호자란 스님이 “이것은 향이란 것입니다. 태우면 강한 향기가 나는데, 신성한 곳까지 두루 미칩니다. 원하는 바를 빌면 반드시 영험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차츰 향은 요사스러움을 없애고 정신을 맑게 함으로써 천지신명과 연결하는 통로라고 생각해 각종 의식에 빠지지 않았다.
 우리 주변에서 정원수로 흔히 만나는 향나무는 일본인이 개량한 ‘가이스카향나무’가 대부분이다. 가지가 나선 모양으로 뒤틀려 달리고 잔가지가 잘 발달해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기 쉽고 잎이 부드러워서 널리 심는다. 한편 향나무는 붉은별무늬병을 옮기는 중간다리 역할을 하므로 배나무 밭 옆에는 심지 않는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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