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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8. 18. 10:58

 

"반구대암각화 살려내야..." 문명대 교수

뉴시스 | 입력 2013.04.11 16:01

【울산=뉴시스】장지승 기자 = 11일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앞에서 열린 문화재청의 현장 설명회에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가 반구대암각화 발견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1년에 절반 가량 물에 잠겨 있는 반구대암각화를 최초 발견한 문 박사는 발견되기 이전 상황으로 수위를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jjs@newsis.com

 

 

 

<'가뭄이 좋아' 울산 반구대암각화 8월수몰 면해>
바닥 드러낸 반구대 암각화 암 대곡천
바닥 드러낸 반구대 암각화 암 대곡천
(울산=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국보 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 앞 대곡천이 18일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2013.8.18 <<지방기사 참조>> leeyoo@yna.co.kr

관광객 줄이어…울산시 '식수난' 걱정하면서 안도

(울산=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가뭄 장기화로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사연댐 물이 크게 줄면서 상류에 있는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가 8월에도 침수되지 않고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울산시민의 상수원인 사연댐에 물이 차지 않아 식수 공급에는 비상이 걸렸지만, 지역 문화계는 최근 침수훼손 논란에 휩싸인 반구대암각화가 올해는 '수몰'을 면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18일 반구대암각화 앞 대곡천은 댐 상류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폭 5m 정도의 자연개울로 변해 있었다. 수심은 20∼30㎝에 불과했다.

장마가 닥치는 매년 여름 이맘때 반구대암각화 앞 대곡천의 수심은 7∼8m, 너비 80m 정도로 불어나 암각화가 물에 잠기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반구대암각화는 지난 1965년 사연댐이 축조된 이래 매년 8월 장마 때 댐에 물이 차면 침수돼 이듬해 2월까지 수몰, 훼손이 가속화되는 일이 반복됐다.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된 1971년 12월 이후 8월에 침수되지 않는 것은 올해가 처음으로 나타났다.

 

바닥 드러낸 반구대 암각화 암 대곡천
바닥 드러낸 반구대 암각화 암 대곡천
(울산=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국보 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 앞 대곡천이 18일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2013.8.18 <<지방기사 참조>> leeyoo@yna.co.kr

울산지역의 이달 강우량은 3.6㎜에 불과하다. 이 지역 8월의 예년 평균 강우량은 240.3㎜였다.

이 때문에 사연댐의 수위는 지난달 10일 52m에서 최근 50m까지 낮아졌다.

반구대암각화는 사연댐 수위가 53m일 때 하단부에 물에 차기 시작해 수위가 57m가 되면 완전히 잠긴다. 댐의 만수위는 60m다.

사연댐을 관리하는 한국수자원공사 울산권관리단의 한 관계자는 "매년 장마와 태풍 때 집중호우로 사연댐이 만수위인 60m를 기록했다"라며 "보통 8월 장마때 암각화가 물에 잠겼는데 올해는 사정이 다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수위에서 비가 150㎜ 정도 내리면 댐 수위가 암각화가 물에 잠기기 시작하는 53m에 이르고, 350㎜ 정도 내리면 암각화는 완전히 물에 잠길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달 말까지 울산지역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으로 기상대는 예보하고 있어 당분간 반구대암각화가 침수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바닥 드러낸 반구대 암각화 암 대곡천
바닥 드러낸 반구대 암각화 암 대곡천
(울산=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국보 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 앞 대곡천이 18일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2013.8.18 <<지방기사 참조>> leeyoo@yna.co.kr

정상태 반구대포럼 상임대표는 "가뭄 때문이기는 하지만 반구대암각화 보존 측면에서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반구대 암각화를 견학할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반구대암각화가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학생과 시민, 외지인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암각화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암각화 방문객이 부쩍 늘어났다"라며 "물에 잠기지 않고 제모습을 드러낸 암각화와 아름다운 자연하천으로 변한 대곡천 주변 풍광을 보려는 시민과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가뭄 땐 물 부족으로 식수공급을 고민해야 하고, 장마 땐 반구대암각화의 침수로 훼손 걱정을 해야 하는 울산시는 일단 암각화가 잠기지 않은데 안도하면서 식수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울산시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우산장수와 부채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심정"이라며 "내년 6월에 대곡천에 '가변형 투명 물막이'를 완공해 반구대암각화가 장마에도 잠기지 않으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leeyoo@yna.co.kr

 

반구대 암각화의 슬픔

등록 : 2013.08.16 20:09수정 : 2013.08.17 07:32

 

[토요판] 커버스토리
댐으로 훼손된 유적에 또 ‘투명댐’ 토목공사
최초 발견자 문명대 교수와 찾은 울산 현장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있는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 대책으로 가변형 투명 물막이(카이네틱댐) 설치가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이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1971년 반구대 암각화를 최초로 발견해 학계에 보고한 문명대(72) 한국미술사연구소 소장은 7월30일 오후 반구대 암각화 현장을 찾아 카이네틱댐을 설치한다면 암각화와 암벽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글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유리병 속에 가둬 보존, 과연 솔로몬의 지혜가 될 수 있나
*유리병: <투명댐(카이네틱댐) 설치>

 

 

▶ 댐은 흐르는 물을 가둡니다. 물이 갇히면 수위는 올라갑니다. 댐으로 인해 높아진 수위는 아름다운 옛 기억까지 함께 삼키곤 하는데요. 울산시 울주군에는 48년 전 제대로 된 문화유적 조사 없이 건설된 댐에 갇힌 국보 제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를 구해낼 방법은 없을까요. 정부가 내놓은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은 무엇이고, 이를 둘러싼 논란은 어떤 것인지 함께 짚어봤습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숨어 있었다. 인구 117만의 대도시 울산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사람의 발길이 쉬이 닿지 않는 깊은 골짜기에 있었다. 지난 7월30일 낮 12시 무렵 울산광역시 울주군 대곡리, 숲길을 따라 걸었다. 졸졸졸 흐르는 대곡천 위로 한여름 뜨거운 금빛 햇살이 부서져 내리고 배추흰나비가 하늘거리며 길을 막았다. 녹색 터널을 지나 도착한 곳은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오지였다. 자연만이 머무는 곳, 평평한 바위 표면이 하얀 도화지처럼 눈에 들어왔다.

 

“‘저기다’ 하고 바로 알아볼 수 있었어요. 그때는 암벽의 색이 더 반질반질하고 맑았어요. 마을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저 바위 아래서 낮잠을 자다가 오후가 되면 나무하러 가곤 했지요.” 동행한 문명대(72·동국대 명예교수) 한국미술사연구소 소장이 정면에 보이는 큰 바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40여년 전의 청년처럼 70대 학자는 물이 빠진 대곡천의 바닥을 성큼성큼 걸었다. 천변을 따라 핀 파란 주름잎 꽃이 화사했다.

 

7월30일 오후에 찾아간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예년과 달리’ 물에 잠겨 있지 않았다. 한국수자원공사와 울산시는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특별히 사연댐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고 밝혔다. 암벽을 바라보는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 소장과 최우리 기자.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현존하는 암각화 중 가장 풍부한 고래 묘사

 

 

대곡천 수량은 바닥의 자갈을 드러낼 정도로 적었다. 마른장마가 이어지기도 했지만 한국수자원공사가 정부의 지시를 받고 ‘특별히’ 수위를 낮췄기 때문이다. 수자원공사는 대곡천 물살이 암각화의 하단부에 닿지 않도록 해발 52m 이하로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암각화가 그려진 암벽 바로 아래로 짙은 녹색의 물이 흘렀다.

 

모자를 쓴 듯 암벽은 윗부분이 튀어나와 있었다. 물결이 만든 여러 개의 가로줄무늬가 선명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해가 비치지 않는 북서쪽 암사면에서 고래의 꼬리 모양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가로 8m, 세로 4m의 이야기를 담은 바위,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였다. 층을 이룬 바위의 모양이 마치 거북이 한마리가 넙죽 엎드린 형상과 같다고 해서 암각화 앞에 ‘반구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 63종을 비롯해 호랑이·멧돼지·사슴 등 육지동물과 사람, 사냥 도구 등 모두 307점 이상의 표현물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범고래 등 현존하는 세계 암각화 가운데 가장 많은 종류의 고래 그림을 담고 있다. 고래의 생태 습성, 고래 사냥 모습 등이 아주 생생히 묘사돼 있다는 것도 반구대 암각화의 특징이다.

 

 

 

고래·육지동물·사람 그려진
신석기 유적 반구대 암각화를
1971년 문명대 소장이 발견했다
그러나 암각화 연구자가 없어
첫 논문까지는 10년이 걸렸다

 

1965년 사연댐이 건설되자
매년 4~8개월씩 물에 잠겼고
1999년엔 대곡댐이 만들어져
자갈과 모래가 암벽을 때렸다
암각화의 물고문은 계속됐다

 

 

 

반구대 암각화의 제작 시기는 신석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자를 갖지 못했던 그 시기의 선사인은 커다란 바위를 찾아 자신의 바람을 정성껏 새겼다. 작살을 맞은 고래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 멧돼지가 교미하는 모습, 사슴이 새끼를 거느리거나 밴 모습 등은 사냥감이 풍성해지기를 기원하는 선사인의 마음을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한 유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 일대가 인류사적으로 해양문화 발전의 요충지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역사적 증거이기도 하다. 반구대 암각화는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고, 문화재청은 2017년까지 정식으로 등재 신청을 할 계획이다.

 

한참 동안 암각화를 바라보던 노학자는 말이 적었다. 대곡천 바닥을 지나 언덕을 오르며 그가 말했다. “투명댐을 세운다고요? 유리병 속에 암각화가 갇혀 있는 형상이에요. (공사 과정에서) 아무리 진동을 막는다 해도 암각화가 상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문화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반구대 암각화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42년 전이었다. 당시 서른살이던 문명대 소장은 동국대박물관 연구원 신분으로 반구대 암각화보다 1년 전에 발견된 인근의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을 조사중이었다. 각석이란 그림이 그려진 돌을 가리킨다. 친구 사이였던 김정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장(당시 고려대 교수)과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당시 연세대박물관 소속)이 동행했다. 1971년 성탄절이었다.

 

과거를 회상하던 문 소장이 말했다. 불교미술이 전공인 그는 암각화 연구에만 매진하지 못했다.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노학자가 회한을 느낀 듯 말했다. “그때는 암각화를 연구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서양미술사 책에 나오는 동굴벽화 정도만 알고 뛰어들었죠. 러시아어를 몰라서 일본어로 번역된 시베리아 암각화 책을 읽으며 공부할 수밖에 없었어요. 논문을 쓰기까지도 10년 넘게 흘렀어요.”

 

 

바위 보며 시 한 수 짓던 아름다운 마을

 

 

문명대 소장에게 반구대에도 그림이 있다고 제보한 이는 대곡리 반구마을의 주민 고 최경환씨였다. 대곡리 옆 천전리 일대에 논을 갖고 있던 한학자 최경환은 각석을 연구하는 문 소장을 보고 “저쪽에도 그림이 있다”고 알려줬다. 경주 최부자의 후손이자 최씨 문중의 정각(기와집으로 크게 지은 정자) ‘집청정’의 주인이었던 최씨는 문 소장 일행에게 큰 나무배를 선뜻 내주었다.

 

7월30일 저녁 집청정에서 만난 최씨의 아들인 최원석(44)·이도경(43) 부부가 아버지한테 들은 당시 이야기를 전했다. “시골에 먹을 것이라곤 없었잖아요. 그래도 집에 온 손님이니 잘 대접하셨지요. 집청정 방 두개를 내드리고 주황색 주스가루로 전을 부쳐서 드렸다고 들었어요.”

 

문 소장이 반구대 암각화를 발견한 당시를 기록해둔 <반구대 암벽조각>(1984, 동국대출판부)을 보면 “이끼와 빗물에 덮인 거석, 문양이 이제껏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한 것이라 호기심이 일었다”고 적혀 있다. 현장에서 동쪽으로 1.5㎞ 떨어진 강바닥에서 석기가 다수 발견됐다는 기록도 있다.

 

문 소장이 오기 전 마을은 그 자체로 역사였다. 대문 밖으로 백일홍이 붉게 핀 ‘집청정’은 반구십영(반구대 주변의 10군데 비경)의 하나다. 대곡천 일대는 조선시대에 구곡문화가 꽃핀 곳이었다. 구곡문화란 물이 굽이치는 모습을 보고 주자의 성리학과 결부시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던 활동을 말한다. 대곡천 일대 곳곳이 문화재다. 반구대 절벽 아래 새겨진 학 그림, 포은 정몽주가 유배돼 지냈다는 포은대가 있고,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반구’의 배경이 대곡천 일대다.

 

생태경관도 빼어나다. 1급수 물이 졸졸 흐르는 대곡천은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꼽힐 만했다. 예부터 굽이굽이 돌아가는 물길마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고, 흐르는 여울 소리는 너른 바다에 이르러서야 멈출 듯 고요하지만 힘이 있었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12월에 낸 <대곡천 암각화군> 보고서를 보면 자생식물 267종이 대곡천 주변에 산다. 지난 3월 반구대 암각화 위 바위에서 담비가 발견되기도 했다. 10대째 집청정에서 나고 자랐다는 최원석씨가 말했다. “참 아름다운 마을이지요. 양반들이 바위를 보면서 시 한 수 지으며 쉬어간 곳이에요. 암각화에 대해서는 외숙모한테 들었던 것 같아요. 거기 그림이 있다고.”

 

마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암각화는 ‘귀신 그림이 그려진 곳’, ‘신성한 곳’이었다. 그림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고, 암각화의 종교적 역할에 대해서도 구전으로 전달됐을 것으로 보인다. 반구대 암각화 관리인인 마을 주민 손방수(47)씨는 암각화가 그려진 곳이 유독 기운이 센 땅이라고 말했다. “그곳은 물이 휘감아 돌고, 위아래 수온 차이가 크게 나요. 어릴 적에 어른들이 위험하니까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어요. 소리를 내면 공명이 되는데 그 앞에 서면 신성한 느낌이 들죠. 고기를 잡아 장사하던 아버지가 나중에 그림 때문에 여기 빌딩이 들어설지도 모른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나요.”

 

반구마을 안쪽에 사는 이상락(77)씨는 댐이 들어서기 전 마을 모습이 지금과 달랐다고 강조했다. 마을 규모가 더 컸고 암각화도 물에 잠기지 않았다. “저 위에 귀신 같은 그림이 산에 있다고 했어. 그림 주변에 지금은 없어진 큰 보가 있었어. 보 근처에 그림이 있는 건 다 알았지. 다만 그게 고래 그림인지는 몰랐어. 댐 생기기 전에는 물에 차지 않았으니까 사람들 다 알지. 보를 막아도 사람 키 정도밖에 안 됐거든. 그런데 댐이 들어온 후에 바위가 1년에 반 이상은 잠겨 있었다고 보면 돼.”

 

반구대 암각화 보존방법으로 떠오른 가변형 투명 물막이(카이네틱댐)의 개념도. 문화재 전문가들은 반원형의 댐을 고정하기 위해서는 암각화 주변 암반과 암벽을 시추해야 한다며 유적 훼손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함인선씨 제공

 

 

문화재 조사 제대로 하지 않고 지은 사연댐

 

 

반구대 암각화의 슬픈 이야기는 댐에서부터 시작된다. 48년 전 암각화는 물에 잠겼다. 문 소장을 통해 학계에 보고되기 6년 전이었다. 문화재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1965년 울산지역 공업용수를 대기 위해 대곡천에 사연댐을 세웠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하류로 4.6㎞ 떨어진 지점이었다. 대곡천 하류지역은 수몰됐고 반구대 암각화도 때때로 물에 잠겼다. 1999년 대곡천 상류에 대곡댐이 또 만들어졌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상류로 4.1㎞ 지점이었다. 대곡댐은 홍수 때면 가둬두었던 물을 흘려보냈다. 유속이 빠른 물을 타고 나뭇가지며 자갈과 모래가 떠내려와 암벽을 때렸다. 암각화에 대한 ‘물고문’은 이후 계속됐다.

 

<반구대 암벽조각>에 실린 1977년 조사 당시 기록에도 암각화는 물에 잠겨 있었다. “아직도 많은 부분이 물에 잠겨 있는 상태였으며 나타난 그림마저 언제 잠길지 모르는 형편이다. 조사 방침을 달리 세워 단기간에 조사할 수 있도록 했다…(중략) 3월18~26일에 걸친 조사기간 동안 18일 빼고 다 비가 왔다. 26일에는 최상부 사람과 거북이 그림밖에 보이지 않았다.”

 

보통 사연댐 수위는 만수위 기준 60m로 관리됐다. 반구대 암각화가 조각된 암반은 수위를 기준으로 53~57m 지점에 했기 때문에 해마다 4~8개월씩 물에 잠겨 침식과 건조를 반복했다. 암벽에는 항상 물이끼가 들러붙어 있었다. 수장된 암각화의 수명은 계속 줄어들었다.

 

2000년대 들어서야 암각화 보존을 위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2008년 문화재청을 포함한 정부기관에서는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52m 이하로 유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문화재의 원상을 보존하고 주변 경관 피해를 최소화하는 안이었다. 찬성하는 듯했던 울산시가 식수 부족을 이유로 반대했다. 2011년 울산시가 제안한 것은 대곡천 유로 변경, (반구대 암각화 보호를 위한) 생태제방 설치안이었다. 이 제안은 문화재청의 반대에 부딪혔다. 암각화 침수 가능성은 줄었지만 주변 환경 변경으로 경관 훼손이 불가피했고 굴착·폭발·진동 등 암각화의 훼손 가능성이 제기됐다. 암각화뿐 아니라 주변 형상이 변경될 경우 유네스코 등재가 안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지루하게 논쟁이 이어지자 올해 국무조정실이 중재에 나섰다. 대안은 수위에 따라 높낮이가 조절되고 외부에서 암각화를 볼 수 있는 물막이용 투명댐(가변형 투명 물막이) 설치였다. 반원형의 투명댐을 암벽에 부착해 반구대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게 하자는 한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국무조정실에 소개됐고, 울산시가 국무조정실의 투명댐 설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난 6월16일 국무조정실 중재로 울산시와 문화재청은 가변형 투명 물막이, 곧 카이네틱댐 설치로 반구대 암각화를 보전하기로 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문화재청 내부에서는 정치권의 요구가 있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울산시의 ‘식수 부족’ 논리는 타당한가

 

 

협약은 체결됐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적극적으로 투명댐 설치에 나선 울산시에 대해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과 환경단체는 의미없는 토목사업을 벌인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면 울산시민이 먹을 식수가 부족하다는 울산시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2008년 국토해양부의 검토 결과를 보면, 울산시는 60m에서 52m로 수위를 조절하면 18만t에서 15만t으로 줄어 3만t의 대체수원이 필요했다. 국토부는 사연댐을 통한 울산시의 생활용수 평균 사용량이 14.2만t이기 때문에 용수공급량은 부족하지 않다고 검토했다. 또 부족한 양은 낙동강 대암댐 물을 공업용수 공급에서 생활용수 공급으로 전환하면 3만t도 확보가 가능하다고 제시했다. 물이 부족하지 않다고 국토부가 인정한 것이다.

 

울산시도 물 부족이라는 기존 주장에서 슬쩍 발을 뺐다. 대신 낙동강 물(대암댐의 물)은 먹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이댔다. 울산시 관계자의 말이다. “설계상으로는 사연댐이 18만t의 식수가 확보되지만 실제로는 최대 15만t을 공급할 수 있다. 그래서 사연댐 수위를 낮추면 가져다 쓸 수 있는 물이 12만t으로 준다. 부족한 3만t은 낙동강 원수(대암댐)를 쓰라는 건데 낙동강 물은 안정적인 식수원이 아니라 더이상은 쓸 수가 없다. 식수로 쓰려면 청도 운문댐에서 물을 공급받아 섞어 써야 한다. 지금 울산시는 암각화 보전을 위해 일부러 한국수자원공사가 운영하는 사연댐에서 50억~60억원씩 더 돈을 내고 물을 사 먹고 있다. 식수 전용인 회야댐(울산시 소유) 물을 먹어도 되는데 사연댐 수위를 낮추느라 회야댐의 남는 물을 그냥 흘려버린다. 울산시의 손해다.” 울산시는 현재 시민의 식수로 사연댐에서 15만t, 회야댐에서 12만t, 대암댐을 통해 낙동강 물 6만t 등 총 33만t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2000년부터 보존 논의가 나왔다
전문가들의 수문 설치 제안에
울산시가 식수 부족하다며 반대
낙동강 대암댐 물 쓰면 됐지만
“낙동강 물 못 먹는다”며 또 거부

 

6월16일 국무조정실 중재로
투명댐을 설치해 침수 막는
카이네틱 댐 설치 합의했지만
“암벽 분명히 훼손된다”
문화재 관계자들 비판 이어져

 

 

 

오영애 울산환경연합 정책실장은 물 관리의 문제이자 돈 문제를 물 부족이라고 포장한 울산시의 거짓말을 꼬집었다. 문화재청 암각화 보존을 위한 정책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그가 말했다. “10년이 넘도록 ‘문화재 보존이냐, 식수 확보냐’라는 구도에서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어요. 그런데 사연댐 수위조절을 해도 식수 공급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물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의 문제잖아요. 100억원이 들어가는 토목사업에 돈을 쓰지 말고 물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 돼요.”

 

박창근 관동대학교 교수(토목공학)는 낙동강 물을 더 먹을 수 없다는 울산시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더이상 물 부족을 이유로 수위조절안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낙동강 물이 울산에 있는 댐의 물보다 깨끗하지 못하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있다면 울산시는 근거를 밝혀야 해요. 이미 울산시는 먹는 물을 생산하기 위한 고도정수처리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울산시는 7월 말 발표한 ‘2013년 수돗물 품질 보고서’를 통해 대암댐 물도 고도정수처리시스템을 통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고 홍보한 바 있다.

 

문화재 보존 방법을 결정하는 최고의결기관인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들은 수위조절안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추진한 카이네틱댐 설치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이수곤 교수(건축학·문화재위원회 건축문화재분과)는 암벽이 훼손되리라 본다. “암각화가 그려진 암벽은 시루떡 구조예요. 윗부분이 무르고, 반구대 암각화가 그려진 바위 표면은 조금 단단하고 아래는 다시 약한 구조예요. 카이네틱댐 시공을 이유로 시추하면 분명히 암벽에 훼손이 옵니다.” 울산암각화박물관에 소개된 반구대 일대의 지질구조는 사암과 셰일 등 모래로 이뤄진 퇴적암층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에서 하나뿐인 문화유산인 만큼 토목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쪽도 있다. 안동대학교 임세권 교수(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가 말했다. “승천하듯 위로 향한 고래나 죽음을 의미하는 아래로 향한 고래 등 고래 모양이 다양해요. 바위에 구멍을 뚫어서 설치하면 경관을 훼손하겠죠. 그런데 이건 경관미술이란 말이에요.”

 

울산시는 수위조절을 해봤자 홍수 때면 상류에 있는 대곡댐에서 많은 양의 물을 내려보내 암각화의 표면이 훼손될 수 있다며 하류에 있는 사연댐 수위조절이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울산시와 한국수자원학회가 지난해 6월부터 지난 3월까지 실시한 수리모형실험 결과 홍수 때 상류인 대곡댐에서 흘려보내는 물은 평소보다 최대 10배 빠르게 흐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307점이 넘는 그림을 보면 선사인들의 생활사를 알 수 있다. 한 면에 여러 개의 그림이 중첩되어 있어 여러 시기에 걸쳐 그려졌을 것으로 보인다. 암각화 바위 표면에 나타나는 형상을 색을 입힌 그림으로 덧씌워 표시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제공

 

청와대 행정관·정치인 등 잇따라 내려와

 

 

“개라고 하셨는데 개과 동물인 여우나 늑대도 있습니다. 여기 등에 작살이 꽂힌 고래가 보이시죠. 인류 포경 역사의 시작을 암각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동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은 암벽의 입자가 고왔다는 의미입니다.”

 

7월31일 울산암각화박물관을 찾은 관광객 중 따로 학예연구사의 해설을 듣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이 눈에 띄었다. 반구대 암각화 인근 천전리 각석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아버지가 물었다. “이건 물에 잠기지 않나요?”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다 듣고 박물관을 빠져나가는 길, 안내하던 박물관 직원들이 부자를 보고 90도 인사를 했다. 청와대에서 고향으로 휴가차 내려온 행정관이었다. 울산시청 소속 공무원 2명이 이들을 사무실로 따로 안내했다. 행정관이 오기 전에는 정동영 민주당 전 의원도 다녀갔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과 관련해 이목이 집중되자 울산시와 문화재청은 물론 청와대와 새누리당, 야당 정치인 등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 보였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은 서두르지 말고 보존 원칙을 세우자고 말했다. “8월 말에 용역을 수행할 업체를 선정해 11월까지 기초조사를 마무리하고 내년 6월까지 투명댐을 세우겠다면 너무 촉박해요.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투명댐을 세우는 전제조건이었던 울산시의 물 부족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나왔잖아요. 그러면 토목공사가 아니라 수위를 조절해 일단 암각화를 보존하면서 대책을 논의해도 되는 것 아니에요?”

 

7월30일 오후 대곡천 반구대 암각화 주변에는 휴가를 온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많았다. 문명대 소장의 기억 속 대곡천은 땔감이 부족해서 나무 한그루 없던 황량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무성하게 자란 나무와 풀이 우거진 숲의 원형을 볼 수 있다. 암각화를 보러 가는 숲길에서 나는 숲의 향이 선사시대로의 시간여행을 돕는다. 대곡천 한가운데에서 한가로이 물고기를 사냥하는 중대백로처럼 도시의 짐을 내려놓은 사람들이 반구대 암각화 주변을 서성였다.

 

손유선(12)·손유리(9) 자매는 암각화 앞에 설치된 쌍안경으로 바위 표면을 살펴보고 있었다. 가족과 온 여름휴가였다. 자매가 말했다. “쌍안경으로는 그림이 잘 보이지 않아요. 박물관에서 설명을 들었어요. 머리가 둥근 향유고래가 기억나요. 멧돼지 그림은 지금이랑 똑같고 호랑이는 말라 보였어요.” 최종기(43)·조은진(38) 부부와 13살 쌍둥이 아들은 고래를 닮은 모양의 울산암각화박물관에서 해설사의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구미에서 온 가족은 반구대 암각화에 투명댐을 설치한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했다. “문화재 보존도 중요한데…. 식수가 해결된다면 댐을 세워 막는 건 보기에도 안 좋고 문화재 보존에도 안 좋은 것 같아요.”

 

댐이 들어선 뒤 반구대 암각화는 물에 잠겼다. 물에 잠긴 지 48년 만에 나온 대안은 다시 댐이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가변형 투명 물막이의 설치는 원점으로 돌아가지만, 울산시와 새 정부는 투명댐 설치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과 관련해 답답한 마음을 쏟아냈다. “댐이 있는 한 방법이 없어요. 누군가 양보하지 않으면 암각화는 계속 물에 잠겨 있어야 해요. 한번 잠기면 수명이 수천년은 앞당겨져요. 애(암각화)가 두 동강 나게 생겼는데 솔로몬의 지혜가 어디 없나요!”

 

물 관리 문제에서 항상 토목사업이 대안이어야 할까. 댐 건설 이전의 유적 조사를 소홀히 한 채 댐을 지어버린 무지함은 반성한 것일까. 댐으로 쇠한 암각화의 운명이 투명댐으로 성할 수 있을까. 반구대 암각화는 슬프다.

 

울주/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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