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못배워.. 나, 김주영이 됐다"

34년 만에 '객주' 완간… 74세 현역 작가 김주영

 

조선일보 | 어수웅 기자 | 입력 2013.10.03 03:21 | 수정 2013.10.03 11:07

"최근에 아는 분으로부터 문자 메시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일본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마스시타 고노스케(1894~1989)의 3가지 성공 열쇠에 대한 내용이었죠. 첫째 가난하게 태어난 것, 둘째 허약하게 태어난 것, 셋째 초등학교 4학년에 중퇴한 것. 나는 그의 성공 열쇠에 100% 동감합니다."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34년 만에 완간되는 '객주(客主·문학동네)'의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작가 김주영 (74)은 이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가 말한 세 조건 역시 '소설가 김주영'의 뿌리가 됐다고 했다. "가난했으니 부지런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고, 허약했으니 무엇보다 건강을 소중히 여겨야 했으며, 배움이 짧았으니 세상 모두가 스승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그만의 화창한 웃음을 지었다. 74세의 현역, 34년에 걸친 완간 등 숫자가 주는 무게에 눌려 있던 분위기는, 노작가의 소탈함 덕에 금방 유쾌해졌다.

↑ [조선일보]작가 김주영은“대학 졸업장은 있지만 정말‘나이롱 졸업’일 뿐”이라면서“부족한 공부에 대한 부끄러움으로‘객주’연재 당시 정말 끊임없이 공부했다”고 했다. /김연정 기자

 

'객주'는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총 1465회에 걸쳐 서울신문에 연재됐던 작품. 당시 9권의 책으로 묶였다. 이번에 나온 책은 제10권. 행방불명됐던 주인공 천봉삼이가 울진에서 봉화로 가는 십이령 고갯길에서 혼절한 채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지하다시피 '객주'는 조선후기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중심으로 근대 상업자본의 형성을 그렸다. 왕조가 아니라 밑바닥 서민(庶民)이 주인공이 된 첫 역사소설이었고, 마스시타 고노스케 언급도 있었지만 상인이 중심인 우리 최초의 역사소설이다. 또 옛말과 속담은 우리말의 보물창고 수준이며, 질펀한 육담(肉談)의 불꽃놀이는 토속적 로맨스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당시에는 왜 완결을 짓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너무 힘들어서"라고 했다. '객주'가 책으로 나온 뒤에야 이 책을 참고문헌으로 적은 조선후기 상업사 논문이 나올 만큼, 연재 당시에는 자료가 거의 없었다는 것. 그는 "매번 공부하고 답사하며 연재하느라 진이 다 빠지고 스트레스 술·담배로 몸이 다 망가졌다"고 했다.

10권 집필의 계기는 이중환(1690~1756)의 '택리지'에서 울진과 봉화의 기록을 발견한 게 계기였다. 소금장수와 십이령 고갯길, 울진의 보부상 송덕비와 봉화 정착촌 등 자료를 확보하면서 나머지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문학평론가 황종연 동국대 교수는 "한국의 서민은 고향을 잃어버린 대신에 '객주'를 얻었다"라고 이번 10권 발간의 의의를 요약했다.

작가는 사인회나 북토크쇼 같은 일체의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과대포장과 허상 만들기를 경계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행사를 많이 할수록 말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지면 거짓말을 하게 된다"면서 "젊은 사람들이 읽어준다면 기쁘겠지만, 60~75세의 내 주변 독자들이 많이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또 한 번 직설법으로 말했다.

작가 김주영은 "대학 졸업장은 있지만 정말 '나이롱 졸업'일 뿐"이라면서 "부족한 공부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객주' 연재시 정말 끊임없이 공부했다"고 했다./김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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