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고 유익한 문화예술소식, 함께 나눠요"
21세기 들어 예술의 사회적 가치는 점점 더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단순히 예술로 아름다워지는 사회라는 구호를 넘어서 예술의 경제적 가치도 수치로 증명되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예술이 본연으로 가지고 있는 미적 가치와 더불어 사회와 함께하며 이루고 있는 변화는 여러가지 모습으로 우리 사회를 변모시키고 있다. 예술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제언과 예술나눔의 의미를 짚어 본다.
| 문화예술과 고부가가치 경제의 실현
글 : 박병원(전국은행연합회장)
현대사회에서 문화예술의 사회경제적 가치는 점차 그 크기를 더해가고 있다. 필자는 이제 벽에 부딪쳐 있는 한국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데에 문화예술이 어떤 산업분야보다도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주어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우리 경제는 이제 제조업과 수출만으로는 더 이상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성장과 발전을 지속하기 어렵다. 1992년에 516만 개로 피크에 도달했던 제조업의 일자리 수는 작년에 이미 409만 개를 기록하였다.(107만 개 감소) 작금의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본질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과잉생산을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들이 빚에 의존한 과잉소비로 상쇄해 주던 체제는 끝이 나고 수출 증가를 통해 성장을 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 우리 경제는 서비스산업의 발전과 경쟁력 향상, 그리고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내수 진작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 와 있고, 고품격 서비스산업의 하나인 문화예술 분야도 경제발전의 한 축으로서 새로운 성장동력의 역할을 분담해 주어야 한다. 문화예술이 모든 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경쟁력 향상의 기반이 된다는 면에서도 중요하지만, 그 자체도 중요한 산업이고 일자리의 원천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문화예술이 국가의 격을 높이고 다른 산업의 고부가가치화에 기본이 된다는 관점은 문화예술의 공급자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만, 문화예술도 하나의 중요한 경제활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문화예술 분야도 자발적 수요를 바탕으로 한 독자적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급자를 후원하는 방법의 한계를 필자는 공짜표의 부작용에서 본다. 기업이 공연을 후원하고 받은 표를 얻어서 공연장에 가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너무 많은 자리가 비어 있거나 많은 자리를 표를 받은 사람들의 자녀와 그 친구가 채우고 있는 경우를 흔히 겪는다. 이것은 우리 문화소비층이 얼마나 엷은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인데, 이런 상황에 부딪치면 무대 위의 공연자가 얼마나 김이 빠지겠는가? 공연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옆자리에 앉은 다른 관객에게도 예의가 아니다. 이는 또한 공급자 위주의 문화예술 지원정책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문화선진국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나라들도 정부나 기업의 후원이 큰 몫을 담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두터운 수요층의 자발적 지출이 없이 문화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우리 문화예술계도 기업, 정부, 개인을 불문하고 문화예술 수요를 진작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더 많이 연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정부가 불황에 직면하여 내수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자동차, 고급 가전제품에 대한 세금을 깎아 주는 대책을 내어 놓을 때, 문화예술계의 목소리를 모아서, 문화예술 소비지출에 대한 세제지원이 내수 활성화 효과가 더 크지 않은지를 묻고 문화예술 소비에 대한 지원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2004년 4월과 6월에 이러한 시도가 있었다. 공급자에 대한 지원책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개인의 문화비 지출에 대한 세제지원을 확대, 정부나 지자체, 기업의 업무추진비, 자산취득비 등의 항목에서 문화비 지출 허용 및 장려 등 수요를 진흥하는 정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이러한 제도 도입을 계기로 이를 문화예술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려고 하는 업계의 노력도 부진하였거니와 미진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정책당국의 노력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대부분의 분야와 마찬가지로 문화예술 분야도 공급과잉 상태이기 때문에 수요자의 자발적 지출 수요를 유발하는 것이 공급자를 후원하는 것보다 더 실효성 있는 문화예술 진흥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노력을 새로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자발적 지출을 늘리는 데에는 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학교에서의 음악, 미술교육에서 감상교육을 대폭 강화하여 녹음, 녹화된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실황 공연에 가보고 싶어하고, 인쇄물이 아니라 실제 예술 작품을 보고 싶어하고 사고 싶어하는 국민을 키워주는 것이 미래에라도 문화예술 향수계층을 두텁게 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감상교육은 예전에 비해 매우 여건이 좋아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세계 주요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을 거의 다 본, 어지간한 음악은 다 한 번쯤은 들어본 국민을 만드는 것을 음악, 미술교육의 목표로 삼으면 어떨까? 전혀 적성이 맞지 않는 아이들에게 실기교육과 평가를 고집하는 것은 음악, 미술학원에 다니게 강요하는 수단은 될지언정 문화예술의 애호가를 키우는 길이 아닐 것이다. 문화예술의 공급자를 키우는 교육과 수요자를 키우는 교육이 어떤 비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문화예술을 진흥하는 길인지, 그리고 어떤 것이 더 문화예술 진흥에 유효한 길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문화예술이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평소 필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인생은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 “삶을 즐기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 세상에 어떤 시가 있는지를 모르고서야 그 시를 읽고 싶어질 리가 없으며, 어떤 음악이 있는지를 모르고서야 듣고 싶어질 수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가 문화예술을 애호하는 수요자의 저변을 두텁게 하는 데에 성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노력하지도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인 만큼 지금부터라도 문화예술계가 모든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웹진 arko[기사 입력 : 201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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