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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지역문학의 보편성과 특수성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12. 11. 01:00

 

지역문학의 보편성과 특수성

 

나호열(시인, 문화평론가)

 

 

지역문학이란 무엇인가?

 

‘지역문학’이란 필자가 임의로 붙여본 용어이다. 겉으로 드러난 대로 이 말이 지역에서 행해지는 문학활동이나 어떤 유파적 특성을 함의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자연스럽게 몇 가지 의도하지 않았던 몇 가지 문제를 파생시킬 지도 모르겠다. 즉 ‘지역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역문학을 이야기하는 순간에 지역문학의 저편에 자리잡고 있는 ‘또 다른 문학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들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우선 이 의문을 간략히 풀어보기로 하자. 한 마디로 말해서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지역 地域’은 ‘지방 地方’을 대체하는 개념이다. 1990년대 문민정부에 의해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지방정부는 일정부분의 행정 및 재정 자치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후 2000년대 중반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민간기구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새롭게 출범하면서 변두리를 의미하는 ‘지방’이라는 용어를 버리고 ‘지역’이란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출범 1기 때 문학, 미술 등의 장르 소위원회 외에 ‘지역문화소위원회’를 두어 소외되고 낙후를 의미하던 지방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의욕적인 시도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도시 중심, 특히 서울로 집중되어 있는 유,무형의 문화지도를 평등과 균형으로 새롭게 재편하려는 시도는 문화예술회관, 도서관, 기념관 등의 건립과 전국적으로 20 여개의 문화재단의 설립으로 한층 구체화되었으며 지방정부의 자립과 자존, 특히 재정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지역 특성을 극대화하는 문화예술축제가 600 여개가 넘을 만큼 과열되기도 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균형과 평등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역’의 의미는 역사적, 문화적 연대의식을 강화하는 측면은 약화되고 행정 단위로 구분되는 특별시, 광역시, 도/ 시,군,구/ 읍, 면, 동 의 행정적 구분에 방점이 찍히면서 기계적이고 작위적인 모습을 지우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음도 사실이다. 전국적으로 200여개가 넘는 지방문화원의 편제가 그렇고, 한국예총, 민예총, 등 각 예술단체의 구성 또한 행정 단위의 구분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까닭에 지원체제 또한 지방정부의 예산가용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지역 단위 간에 편차는 여전히 존재하며 이 편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지역’의 의미는 타 지역과의 변별성, 특수성이 강조될 때 중앙(중심)/지방(변두리)이라는 오래된 관습과 타성을 극복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문학은 행정 단위로 구축된 한정된 지역에서 행해지는 문학활동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이는 한 지역 내에서 거주하는 문학인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문학활동으로서 단순집합적인 결과물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으로 눈을 돌리게 되면 단순집합적인 결과물이 지역문학의 활동이라는 정의는 뜻박의 국면에 마주치게 된다. 예산문학禮山文學이라는 단위가 충남문학忠南文學이라는 상위단위의 부분이 될 때 예산문학위상은 어떤 양상일까? 예산문학은 충남문학의, 더 나아가서 충남문학은 한국문학의 충분조건일까? 아니면 필요조건일까?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좋던 싫던 우리는 1일 생활권에 살고 있다. 교통수단의 확충과 전자통신의 발달은 시간적 격차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삶을 누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로 산간벽지와 오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도서 島嶼지역은 여전히 문화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인터넷 등 첨단 정보통신 수단에 익숙하지 못한 세대는 시대적 조류를 따라가지 못하는 소외에 놓여 있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우리 문학계에도 이와 같은 소외의 권역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 소외의 극복이 어떤 방식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난제가 앞으로 지역문학의 향방을 가늠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알고 있다시피, 전국적으로 300여개가 넘는 문학지가 발간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잡지들은 한결같이 한국문학의 주류, 즉 시대를 대변하고 예술적 성취를 고양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충남지역에도 대전을 중심으로 대 여섯 개의 유력한 문학잡지가 발간되고 있고, 그곳에 게제되는 작품이나 평론은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대체로 문학적 성취도가 높은 문학지일수록 지역문학의 한계를 탈피하여 전국적인 지명도를 지니거나 새로운 형식의 문학을 표방하는 필진들로 지면을 채우고 있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 한 지역에서 발간되는 잡지라고 해서 그 지역 내에서 활동하는 시인, 작가들에게 우선적으로 지면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이제 ‘시인, 작가들이 어디에 거주하는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새로운 문학적 담론으로 무장하거나 권력화된 문학계파에 속하지 않는 한 많은 문인들은 풍요속의 빈곤, 즉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지면을 확보하지 못하는 곤란함에 처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곤혹한 상황은 시인, 작가들이 자초한 측면이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예술은 창조의 힘, 새로움을 향하는 의지의 산물이다. 치열한 자기성찰과 성찰의 결과를 담금질하는 방법론의 탐구는 예술인임을 자각하고 있는 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불행한 덕목일 것이다. 거칠게 이야기한다면 오늘의 한국문학은 전통적 가치의 보존과 회복(인간성에 대한 신뢰)과 비이성적이고, 반이성적인 인간 행태에 대한 불신과 세계의 해체(노마드 nomad적 세계의 탐구)라는 두 축의 갈등과 대립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한국 시단의 현실을 비춰본다면 전통서정과 미래파의 각축이라고 간단히 설명할 수도 있다. 또 관점에 따라 사실주의와 낭만주의의 대립으로 진단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 한다면 이 모든 관점은 유효하며 존중받아야 할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고급문학과 하급문학이라는 심리적 관점이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다면 그들 간의 무관심과 불통은 마땅히 해소되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의 심성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서정은 도시화로 빚어지는 새로운 서정에 맞서야 하고 세계성의 분열과 해체를 목격하고 증언하는 전위의 문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믿을 수밖에 없는 희망의 손길을 거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서 지역문학은 단지 한 지역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결과물로 만족할 수 없으며, 지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많은 시인, 작가들이 이른바 중앙문단에서 인정받고 있음을 타신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스스로 만든 울타리에 갇혀 변화하는 세태에 반응하지 못하는 문학, 권력의 힘에 도취되어 자만에 빠진 문학은 서로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은 양자兩者 모두에게 요구되는 의무이다.

 

문학의 보편성

 

모든 예술 활동이나 작품이 지향하는 바는 영원성의 획득에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격언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무한한 생명을 보전하려고 하는 열망을 담은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숭고함과 미감 美感이라는 가치는 여러 형태의 예술양식을 통해 구현될 수 있으며, 이 영원성은 예술적 가치의 시공간적 時空間적 지속, 전승, 유지 보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 시대를 증언하거나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을 제시하거나 증언과 치유를 거쳐 득도의 경지에 이르는 경험의 집적물이야말로 우리가 열망하는 예술인의 자세가 될 것이다. 여과되지 않은 감정의 분출, 미시적이고 증오를 유발하는 문학은 개인적이고 당대에 그치고 마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급변하는 상전벽해 桑田碧海의 시대에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영감의 영토를 개척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런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 문학적 입지를 굳건히 한 출향 시인, 작가들을 다시 고향으로 재정착하게 하자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다. 혹여 타향 출신이라도 한 지역에 정착하게 함으로서 지역의 지명도를 높이고 예술의 저변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성공적 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실 앞에서 어떻게 하면 예술교육의 기반을 마련하고 신진작가들을 양성,배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라고 한다면 이는 무리한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일까?

 

지역문학이 한 단계 발전하려면 무엇보다도 지역문학인들의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급변하는 문학적 조류에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적어도 추세에 대한 조망과 비판의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필자의 견해가 부디 틀린 추측이기를 바라지만 도농 道農을 불문하고 지역의 문학(단체, 개인)은 폐쇄적인 경향성을 띄고 있다고 보여진다. 굳건한 개성의 옹립은 반드시 필요한 예술가의 덕목이지만 이것이 새로움에 대한 도전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으로 치우쳐버린다면 문학의 수월성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워지지 않을까? 문학적 성취와 지명도를 획득한 시인, 작가들을 초청하여 새로운 조류를 체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 문학 자체 내에 항시적인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활발한 지역문학인간의 토론과 연구의 활성화가 지역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촉매제가 되지 않을까?

 

문학의 특수성

 

현대문명의 특징을 도시화로 대변할 수 있고, 도시화는 생활양식의 획일화와 편리성의 도모와 성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고향의식의 상실이라는 아픔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생활양식은 평준화 될 수 있으나 지리적 환경과 풍토는 결코 동일화 될 수 없기에 지역의 특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다. 지역의 특수성은 역사와 문화, 삶의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한 두 가지 예로 지역의 특수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타지역의 개인 상호간의 이해와 소통의 원활을 기하기 위해 토속어(사투리)를 지양하고 표준어 사용을 권장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생의 근간을 허무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된 예로 제주도의 방언 사용을 들어보기로 한다. 제주도는 육지와 멀리 떨어진 까닭에 매우 다른 방언이 발달한 지역이다. 근래에 이르기까지 제주도내의 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표준어 사용을 적극 권장하므로서 소통의 원활이라는 목표를 충족했지만, 이는 제주도 방언 사용자들의 감소를 가져옴으로서 최근에는 다시 제주도 방언을 가르쳐야 하는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고 한다. 지역의 특수성에 기반을 둔 토속어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징검다리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 삶을 담아내는 정신의 그릇인 까닭에 지역 문학은 자신들이 발딛고 있는 고장의 언어를 보존하고, 문학작품에 활용하며 전파하는 역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에 덧붙여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에도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지역적인 것이 한국적인 것이다’라는 말로 바꾸어도 전혀 이상하거나 무리가 가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의 사투리를 작품에 투영하는 시인, 소설가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음도 지역문학이 간과해서는 안될 과제의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지역문학이 나아가야할 방향

 

지금까지 간략하게나마 지역문학의 실체와 당면과제를 살펴보았다. 오늘날의 지역문학은 중앙(중심)/지방(변방)의 구도를 타파하고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적 분권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이는 획일화된 균질성이 아니라 다양성을 기반하는 쌍방향의 소통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쌍방의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고 스스로 실체를 드러내기를 꺼려하며 고독한 성주처럼 각자의 성에갇혀 있다는 점이다. 그 누구도 한국문학에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혹자는 강력하게 그 실체를 부정하며 문학적 수월성이 유일한 잣대가 될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문학적 수월성(작품의 완성도)에 따라 시인, 작가의 우열이 나눠질 뿐이라는 그러한 주장은 ‘예술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한 마디로 논파될 것이다. 문학은 정량적 잣대로 평가될 수 없기에 시장성과 유통망에 따라 시인, 작가의 평판이 어느 정도 가려지는 형편인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문학 유력지나 언론에 의해 조명받지 않는 한, 학맥과 인맥에 의존하지 않는 까닭에 초야에 묻히는 시인,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역문학이 이런 상황을 타파하고 지역적 특수성에 입각한 다양성의 가치를 확보하려면 여가의 문학에서 필생의 문학으로 진입해야 하며, 시인과 수필가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국면을 전환하여 소설, 희곡, 평론 등 제 분야의 문학인을 양성, 배출하므로서 문학적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구체적 실행의지가 요구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지역문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출향 시인, 작가들과의 교류가 활성화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삶을 공유하고 작품으로 증언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예산예총 2012년 에 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