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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문화예술계 ‘넝쿨당’ 고리 끊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12. 29. 10:49

 

[노재현 칼럼] 문화예술계 ‘넝쿨당’ 고리 끊자

[중앙일보] 입력 2012.12.29 00:35 / 수정 2012.12.29 00:35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이쯤 됐으니 한번 따져 보자. 오늘로 대선 투표일로부터 딱 열흘이 지났다. 자욱하던 먼지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물론 아직도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터넷에서는 전자개표가 조작됐을 테니 재개표하자는 청원 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1960년대 윤보선 낙선자를 연상케 하는 ‘정신적 대통령’ ‘정신적 승리’라는 말도 돌아다닌다. “너희는 이겼고 우리는 옳았다”고 강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바둑판 주변을 둘러싸고 복기(復棋)를 지켜보던 이들 대부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문화예술과 대통령선거, 문화예술과 정치의 바람직한 ‘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기본적으로 예술가에게는 전복(顚覆)적 사고가 필수라고 믿는다. 다들 그렇다고 믿는 것을 의심하고 뒤집는 역심(逆心)에서 시대를 초월한 작품들이 잉태한다. 그러니 종종 당대(當代)와 불화를 겪는 건 당연하고 또 불가피하다. 정치권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치와 예술은 동네가 다르다. 거리가 있어야 한다. 어쭙잖게 저 옛날의 참여·순수 논쟁을 되풀이하자는 게 아니다. 예술가와 정치가는 정치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 무조건 거리를 두라는 게 아니다. 물리적 거리야 가깝든 멀든 간에 팽팽한 ‘긴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창조적 본능을 자극하는 긴장이다. 이번 대선에선 그런 긴장이 유지되었는가.

 대선 과정에서 멘토단 등의 형식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문화예술인은 문재인 후보 쪽이 훨씬 다수였다. 개인적으로 양(量)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압도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소설가, 그것도 사람만이 아니라 ‘작품은 더 좋은’ 문인들이 여럿이다. 어떤 분들은 진보 성향의 한국작가회의 측에 “단체 차원에서 문 후보 지지를 선언하자”고 요청했다가 정중히 거절당했다고 한다. 피날레는 선거 막바지인 이달 14일 시인·소설가 137명이 발표한 ‘우리는 정권교체를 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선언문이었다. ‘시와 소설을 쓰던 손으로 선언문을 써야 할 때의 열패감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이 세계의 몰락을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간절히 기다립니다.…그 답은 정권교대가 아닌 정권교체입니다’라고 했다.

 지지 선언이야 누가 어느 후보에든 할 수 있다. 한국작가회의에 알량한 보조금을 미끼로 ‘시위 불참 확인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게 현 정부에서의 일이니 사람에 따라 특정 후보가 당선되면 ‘세계의 몰락’이 올 거라고 우려할 수는 있겠다. 아쉬운 것은 긴장감이다. 한낱 대선 결과를 두고 선과 악을 가르는 것이 과연 작가적 긴장의 결과물일까. 나는 ‘시와 소설을 쓰던 손으로 선언문을 쓰는 열패감’이란 구절에 일말의 주저와 고백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당장 137명 선언문을 38년 전 ‘문학인 101인 선언’(1974년 11월 18일)과 비교해 보라. 김지하 등 수감 지식인 석방,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노동법 개정, 개헌 등을 요구한 74년 선언문은 자구 하나하나가 시대적 긴장감 그 자체다.

 왜 좌·우만 보고 앞은 보지 않는지 모르겠다. 시대를 앞서 치고 나가는 게 문화예술의 장기 아니던가. 예술이 정치와의 최소한의 거리, 긴장감을 잃어버리면 최악의 경우 권력에의 ‘역(逆)시녀화’ 현상이 빚어진다. 안 그래도 문화계마저 이미 진영화될 대로 진영화됐다.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진영의 이익·불이익이 정의·불의 논리로 포장돼 횡행하고 있다. 그 결과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일종의 고지 탈환전이 상례화됐다. “우리는 혁명을 하고 있다”며 문화계 물갈이에 나선 장관이 등장하더니 정권이 바뀌자 “코드 기관장들은 물러나는 게 자연스럽다”는 또 다른 물갈이 신호탄이 터져 올랐다.

 인기 TV드라마 제목을 빌리자면 요즘 문화계는 ‘넝쿨당’ 신세다. 당신의 당이 아니라 파당(派黨)의 당이다. 권력이 바뀌면 진영에서 호박 넝쿨처럼 기관장·단체장을 차고 앉는 5년 단위 블랙코미디 연속극이다. 현 MB(이명박) 정부에서 쫓겨난 20여 명은 ‘명쫓사(이명박에게 쫓겨난 사람들)’란 모임도 만들었다. 명진 스님이 좌장 격으로, 올해 3·5·11·12월에 걸쳐 네 번 열린 모임에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정연주 전 KBS사장, 용산참사 유가족, 쌍용차 노조관계자 등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언제까지 되풀이돼야 하는가. 문화예술계는 나름의 거리와 긴장을 되찾고, 정치권력도 “박 당선인이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는 약속대로 문화예술계에 포용력을 발휘해주셨으면 한다”(명진 스님)는 충고를 명심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