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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그림값 올라야지 살아 생전에 돈 지녀 무엇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8. 12. 13. 17:40

30년간 꽃 그렸지만 지겹지 않아"

'설악산의 화가' 김종학씨

40세에 설악산으로 들어가

"죽어서 그림값 올라야지 살아 생전에 돈 지녀 무엇해"

 

▲ ‘설악산 화가’김종학씨는“인생도, 예술도 관 뚜껑 닫아 봐야 안다”고 했다. 그는“앞으로 사람을 좀 더 그리고 싶다”고 했다. /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

'괴짜' 화가 김종학(71)씨는 괴짜가 특히 많다는 미술계에서도 최고 괴짜로 통한다. 1979년부터 30년째 설악산에 묻혀 산다.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들과 우뚝 선 산악을 그리는 김씨는 평안북도 사람 특유의 툭툭 끊기는 말씨로 이렇게 말했다.

"화 잘 내지. 신문 보다가도 화나고, 사람 만나다가도 화나고, 그림이 잘 안 돼도 화나고. 그럴 땐 자기와 전쟁이 벌어져. 살인자는 말이오, 칼을 꽂는 그 순간엔 '죽이고 보겠다' 빼고 다른 건 다 잊어. 엄청난 집중의 순간이야. 어찌 보면 화가도 비슷해요. 무당이 홀린 듯이 집중해서 그리고 나면 '아, 대단한 싸움을 했구나' 싶지."

김씨가 12일부터 내년 1월 17일까지 서울 신사동 예화랑에서 스무 번째 개인전을 연다. 그는 신의주에서 태어나 전쟁 때 월남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도쿄미대와 미국 프렛인스티튜트에서 수학했다. 미니멀 추상화에 몰두하며 30대를 보낸 뒤 남들이 '불혹'(不惑)이라는 나이에 이혼하고 입산했다. 그는 "죽으려고 폭포 위에 섰다가 산중의 할미꽃을 보고 '삶'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때 김씨는 "유명하지 않아도 좋으니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추상을 버리고 화폭 가득 원색으로 꽃과 새와 벌레를 그렸다. 2008년 현재 김씨는 보기 드물게 시장과 평단에서 일치된 지지를 받는 작가다. 지난해 미술 경매시장에서 그는 이우환·박수근·김환기에 이어 네 번째로 작품 판매액이 높았다.

50대 중반에 비로소 인기 작가가 된 김씨는 그림 팔아서 번 돈으로 목기 등 골동품을 샀다. 1989년 그렇게 모은 소장품 3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고, 그 뒤에 모은 소장품으로 2004년 금호미술관에서 전시회도 했다.

김씨는 "후배들 보면 대체로 두 부류입디다"라고 했다. "첫째, 진지한 이들.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는 이들. 둘째, 인기에 영합하는 이들. 가령 그림 팔아서 돈 벌면 예술품, 골동품 사는 게 아니라 재규어 자동차 사는 사람. 화가라면 이중섭, 박수근처럼 죽어서 그림 값이 올라야지 살아 생전에 돈을 지녀 무엇 하나?"

그는 "30년을 그려도 나는 꽃이 지겹지 않다"고 했다. "할미꽃 그리다 달맞이꽃 그리고, 금년 겨울과 다음 겨울이 다르고, 햇빛이 들면 그림이 또 달라. 나는 신(神)의 선물처럼 꽃을 봐요. 화가는 외로워야 돼. 휴대폰 들고 그림 그리면 끝이야. 외로워야 자연이 보이고 자기가 보여. 자연은 우리를 미치게(狂) 하려고 거기 있는데, 휴대폰 들고 있으면 자연이 안 보여. 못 미쳐."

그는 한용진(74·조각가)·송영방(72·화가)·윤명로(72·화가) 등 수십 년 지기 대여섯 명을 거명하고 "내겐 그들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젠 만나도 피차 술 마실 수 없는 나이가 돼서 그냥 노래나 합니다, 술 안 마시고." 그의 애창곡은 죽으려고 설악산 폭포 위에 섰을 때나 지금이나, 수십 년 여일하게 심수봉씨가 부르는 '얼굴'이다. (02)542-5543

입력 : 2008.12.09 22:34


▲ ‘설악산 화가’김종학씨는“인생도, 예술도 관 뚜껑 닫아 봐야 안다”고 했다. 그는“앞으로 사람을 좀 더 그리고 싶다”고 했다. /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괴짜' 화가 김종학(71)씨는 괴짜가 특히 많다는 미술계에서도 최고 괴짜로 통한다. 1979년부터 30년째 설악산에 묻혀 산다.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들과 우뚝 선 산악을 그리는 김씨는 평안북도 사람 특유의 툭툭 끊기는 말씨로 이렇게 말했다.


"화 잘 내지. 신문 보다가도 화나고, 사람 만나다가도 화나고, 그림이 잘 안 돼도 화나고. 그럴 땐 자기와 전쟁이 벌어져. 살인자는 말이오, 칼을 꽂는 그 순간엔 '죽이고 보겠다' 빼고 다른 건 다 잊어. 엄청난 집중의 순간이야. 어찌 보면 화가도 비슷해요. 무당이 홀린 듯이 집중해서 그리고 나면 '아, 대단한 싸움을 했구나' 싶지."


김씨가 12일부터 내년 1월 17일까지 서울 신사동 예화랑에서 스무 번째 개인전을 연다. 그는 신의주에서 태어나 전쟁 때 월남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도쿄미대와 미국 프렛인스티튜트에서 수학했다. 미니멀 추상화에 몰두하며 30대를 보낸 뒤 남들이 '불혹'(不惑)이라는 나이에 이혼하고 입산했다. 그는 "죽으려고 폭포 위에 섰다가 산중의 할미꽃을 보고 '삶'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때 김씨는 "유명하지 않아도 좋으니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추상을 버리고 화폭 가득 원색으로 꽃과 새와 벌레를 그렸다. 2008년 현재 김씨는 보기 드물게 시장과 평단에서 일치된 지지를 받는 작가다. 지난해 미술 경매시장에서 그는 이우환·박수근·김환기에 이어 네 번째로 작품 판매액이 높았다.


50대 중반에 비로소 인기 작가가 된 김씨는 그림 팔아서 번 돈으로 목기 등 골동품을 샀다. 1989년 그렇게 모은 소장품 3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고, 그 뒤에 모은 소장품으로 2004년 금호미술관에서 전시회도 했다.


김씨는 "후배들 보면 대체로 두 부류입디다"라고 했다. "첫째, 진지한 이들.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는 이들. 둘째, 인기에 영합하는 이들. 가령 그림 팔아서 돈 벌면 예술품, 골동품 사는 게 아니라 재규어 자동차 사는 사람. 화가라면 이중섭, 박수근처럼 죽어서 그림 값이 올라야지 살아 생전에 돈을 지녀 무엇 하나?"


그는 "30년을 그려도 나는 꽃이 지겹지 않다"고 했다. "할미꽃 그리다 달맞이꽃 그리고, 금년 겨울과 다음 겨울이 다르고, 햇빛이 들면 그림이 또 달라. 나는 신(神)의 선물처럼 꽃을 봐요. 화가는 외로워야 돼. 휴대폰 들고 그림 그리면 끝이야. 외로워야 자연이 보이고 자기가 보여. 자연은 우리를 미치게(狂) 하려고 거기 있는데, 휴대폰 들고 있으면 자연이 안 보여. 못 미쳐."


그는 한용진(74·조각가)·송영방(72·화가)·윤명로(72·화가) 등 수십 년 지기 대여섯 명을 거명하고 "내겐 그들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젠 만나도 피차 술 마실 수 없는 나이가 돼서 그냥 노래나 합니다, 술 안 마시고." 그의 애창곡은 죽으려고 설악산 폭포 위에 섰을 때나 지금이나, 수십 년 여일하게 심수봉씨가 부르는 '얼굴'이다. (02)542-5543


입력 : 2008.12.09 22:34  조선일보 김미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