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길 따라바람따라(여행기)

선운사 기행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8. 6. 8. 14:16
 

  선운사 기행

                          - 시인의 마을을 찾아서

  

   

 1.변산반도


 언젠가 우리가 지나왔던 길을 다시 되짚는다. 세월은 우리의 한걸음 한걸음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임에도 뒤돌아보면 바람처럼 흔적 없이 그러나 너무 멀리 저만치 서 있는 것 이다. 나는 그런 그대ㅡㄹ 본다



  그리웁다는 것은 그대가 멀리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함게 동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행하면서도 등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등 돌린 채로 등 돌린 채로

  아무리 불러봐도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웁다는 것은  아직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대가 있어 아름다운 세상 곁에

  나도 가만히 서 있어 보고 싶다는 것이다


                              - 떠난다는 것은



  우리가 처음 맞이했던 바다는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사랑의 실체이다. 그와 같이 푸른 것, 넓고 깊은 것, 그래서 까닭없이 눈물 나는 것. 지도책을 들쳐보며 더듬더듬 다가갔던 그 바다가 지금 다시 눈을 가린다. 발 밑을 적시는 파도소리를 그대에게 들려주고 싶다. 말 배우기 이전의 순수를 가슴에 담아주고 싶다.




  사막을 미치도록 그리워했던 그 여자가 울고 또 울고  또 세 번을  울었다는 바다, 그저 풍문으로 들었을 뿐인 그 사연은 알면 치정이 된다. 면벽하듯 바라보니 밀려오는 파도 속에 내가 풀어야 할 문제와 단박에 깨쳐야할 해답이 까무러치고 또 까무러치고  이 파도소리 들리냐고 잘 들어보라고 바다에 귀 들이대는 사람들이 보살같다.그대를 향하여 몇 겹으로 접은 가슴을 펼쳐내니 내가 배워야할 말들은 느낌표 하나 뿐, 돌아가서 그대에게 다시 펼쳐보일 때 까지 온전할 지 몰라 해무애 둘러싸인 섬을 향하여 멀어지는 배 사라질 때 까지 나즈막히 날아보는 갈매기 한 마리 그.섬.에.가.고.싶.다



                                                               - 격포에서



  싱그런 밤이 지나고 신새벽 내소사 전나무 숲길을 걸어갔었지. 마치 지난 밤의 어둠을 한꺼풀씩 들쳐내듯이 한 뼘 만큼 삐뚤어진, 약간 고개를 돌려야만 보이는 그대가 저만큼 대웅보전으로 빛나던 아침을 기억했지. 내가 이곳을 사랑한다는 것은 맑은 정적을 사랑한다는 것.저녁 무렵 곰소항으로 가득 밀려오던 서해의 노을은 이 세상의 모든 구석진 마을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편지처럼 씨불로 번져간다고, 그 어느 눈물 보다도 맑디 맑은 심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 눈물! 줄포에서 곰소항 까지 펼쳐진 소금밭!



  누가 뿌린 눈물이기에 이렇게 아리도록 흰 어여쁨이냐

  뿌리도 잎도 없이 열매도 없이 발가벗은 온몸으로 승천하는 것이냐

  언젠가 숙명으로 다가왔던 바다는 없고

  세월에 절은 이 짠 맛!

                                   - 곰소 염전



 2.선운사행



  다슬기를 줍던 냇가도 그대로인데 선운사 잡초 무성하던 부도밭은 말끔하게 머리를 깎았습니다. 올해의 동백 이미 져서 보지 못했고 철 일러 상사화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어둑해진 산길을 따라 바위턱에 앉으니 목이 쉰 범종 소리 아득하고 또 아득해져 길을 그만 놓쳐 버렸습니다. 도솔암에는 내원궁이있고 마애불이 있다는데 한 몸에 여덟 갈래 가지로 뻗은 장사송을 바라보니 마음만 울울해져 산길 내려오다 겨우 마애불을 만났습니다.



 두두둑 목 부러지는 동백도 아니 보고

  그리운 상사화 아직도 피지 않아

  발길 또 서운해지려 합니다


  마음 눈 맑지 않으면 바위 속으로 숨어버리는

  마애불 찾지 못하여 못내

  서운해지려 합니다


  동백도, 상사화도 마애불도

  너의 마음 속

  비결처럼 숨어있다고

  그립고 사무치는 일 조금은 서운히 남겨두는 것이

  사는 기쁨이라고

  저만치 올라오는 산객이

  모른 척 지나가며 일러줍니다

                            - 도솔암 가는 길


  사랑은 결핍의 감정 입니다.모자라고 아쉬워하며 안개와 같은 미궁 속을 함께 가자는 권유입니다. 사랑은 이유가 없습니다. 온몸으로 부딪치고 온몸으로 스러지는 것 입니다.어떤 전제도 없는, 형식도 없는 자유의 창조입니다.



 표지판 일러주는 대로 걸었다

  길 따라 마음은 가지 않았다

  높은 곳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 속에서

  조용히 자세를 세우는

  나무들

  죽은듯 살아라

  살아도 죽은듯 하라

  숨죽여 부리는 깊어지고

  둥글어지고

  머리와 멀어지는

  아득한 깨우침

  낮게 사랑하라


                            - 마애불 앞에서

 



3. 미당 생가와 고창읍성



  소요산 기슭 아래 열매 툭툭 떨어지는 살구나무와 백 년은 넘을 성 싶은 가죽나무, 마당 앞까지 밀려오던 바다는 저만치 물러가 버리고 소금 굽던 염막도 사라진 지 오래, 늙은 시인의 생가는 쇠락해 가고 있었다.


  복원이라는 말은 다시 되돌려 원상태로 놓는 것. 생각하니 끔찍하다. 우리의 삶을 되돌린다는 것, 상상만 해도 무섭다. 빈 틈이 많아지는 삶, 바람과 점점 가까워지는 그런 농투성이 삶의 흘러감. 흥부전 걸직하게 내지르는 남녘 고창에 닿았다.

  기억할까? 해미읍성에서 느꼈던 서늘한 적막, 비어 있으면서도 안온했던 느낌은 여기에 없다

  

  복원? 그 옛날의 아득한 사랑의 추억?


 

  무너지고 틈 갈라지고 그 사이에 잡초 우거지고 그래도 서운해 하지 말 일,꺾이고 깨지고 풀어지는 판소리 한마당이 가득하니 망루에 올라 할 일 없이 낮잠 든 노인들 어깨가 늘어진다

  손길 발길 닿지 않으니 사람 때 끼지 않아 벌서고 있는 공적비 부질없는 일이구나

  연막차 구석구석 흰 연기를 뿜어내니 죄 없는 날벌레들만 이리저리 쫓겨간다

  돌멩이 하나 머리에 이고 무병장수, 극락승천한다고 돌고 도는 여인아

  그런 믿음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얼마나 이쁜 일이냐


                                                        - 모양성에서 1



 나 이제 그대에게로 다시 돌아간다. 아니, 떠난 적이 없으니 돌아감도 없으리라!



 □메모

  

 고창읍에서 선운사로 가는 길의 고인돌군은 아득한 이 땅의 역사를 생각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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