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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과 착상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7. 12. 24. 14:39
 

편집위원들이 읽은 지난 계절의 좋은 시



폭설



하늘이 똥을 누신다

무량하게 경전을 기다리는 사람들 위로

몇날 며칠을 똥을 누신다

거름이다

말씀이다

사람들이 만든 길을 지우고

몇 그루의 장송도 넘어뜨렸다

아우성에도 아랑 곳 없이

부질없는 쇠기둥을 휘게 만들었다

하늘에 방목한 것은 조개, 양떼, 새털 이름을 가진

구름 뿐,

냄새나지 않는 똥을 누시는 까닭이다

무량하게 사람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아우성치지 마라

말씀의 거름 잘 새겨들어라


깊은 어둠에서 눈은 더욱 밝게 뜨이고

순백의 천지는 눈을 더욱 멀게 만든다


어둠을 두려워 하지마라

철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라


산은 그럴수록 더욱 우뚝하다

 


                                  시인시각 2007년 겨울호 게제



“폭설”을 “하늘”의 “똥”이라고 한 着想이 놀랍다. 하늘의 똥이므로 “냄새나지 않는”다고 한 착상도 놀랍다. 하늘에서 내린 것이므로 “말씀의 거름”이라고 한 착상도 놀랍다. 현대시는 靈感에 의해서라기보다 착상에 의해 쓰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영감은 일기가성, 혹은 일필휘지의 시를 만들지만 착상은 그렇지 않다. 착상이 시를 시작하게 하였지만 착상이 시를 끝까지 끌어가지는 못한다. 로댕이 조각품을 만들 때처럼 시인은 착상에 의해 구체화된 언어들을 빼기도 하고 더하기도 하면서 시를 짓는다. 시를 만든다.

 나호열의 「폭설」도 착상에 의해 시작되다가 ‘만듦’의 자국을 내며 끝나고 있다.



깊은 어둠에서 눈은 더욱 밝게 뜨이고

순백의 천지는 눈을 더욱 멀게 만든다


어둠을 두려워 하지마라

철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라


산은 그럴수록 더욱 우뚝하다

 


 마치 로댕이 조각품을 만들 때 진흙 몇 덩어리를, 혹은 철근 몇 덩어리를 추가한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미지에 거름을 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이 거름이 이 시를 튼실하게 할 수도 있고 부실하게 할 수도 있다. 정답을 지우고 오답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인생이다.

  

                        시현실 2007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