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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중얼거리다

숲으로 가다가 늪을 만나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7. 11. 26. 23:53
 

숲으로 가다가 늪을 만나다


                                  나 호 열



 나의 십대는 우울이었고 이십대는 절망이었다. 실체를 모르는 우울은 절망이었고, 원인이 불분명한 절망은 우울이었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이나 시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면서 우울의 절망과 절망의 우울과 화해하는 길을 문학에서 찾았다면 누가 믿을까?. 누가 말했던가! 영감 靈感이 출중한 자만이 시인이 될 수 있다고! 이 말처럼 나에게 치명적인 아픔을 주는 외침이 또 어디 있을까? 영감은 커녕 눈꼽만한 재주도 없으면서 무모하게 덤벼들었던 문학이었기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오는데 너무 먼 길을 우회했다는 느낌이다. 생활의 대부분을 글을 쓰고 글공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넉넉함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물컹물컹 느끼면서도 나는 여전히 목마르고 배가 고프다. 문학이라는 숲이 가지고 있는 무궁한 생명력과 화해와 공존의 미학을 찾기 위해서 나는 예상하지 못한 늪을 현재진행형으로 지나고 있는 중이다. 숲이 지니고 있는 약육강식과 먹이사슬의 위계 앞에서 나는 늘 고개를 숙이고 참회하지만 여전히 나는 진정한 숲의 일원이 되지 못한 채 변방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배회는 우울과 절망으로 빚어진 심한 낯가림인 것 같은데 이 낯가림으로 인해서 시를 쓰는 것은 아닌지 반문할 때가 많다. 의식의 밑바닥에 꿈틀거리고 있는 진정한 나를 올곧게 표면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까닭에 시라는 표현 도구를 차용하여 나를 표출하는 것이고 세상을 향한 존재의 발현을 욕구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현실적 발언은 왜곡되고 수사 修辭로 가득 차 있지만 오히려 시는 직설적이고 그만큼 왜곡에서 벗어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겉과 속이 얼만큼의 깊이를 지니고 있는 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시를 통해서 그러내는 나의 속 모습을 차마 대면할 수 없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숲의 진정한 일원이 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늪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허우적 대면서 나는 오늘도 소리친다.


영감 靈感이 찾아 왔기에 시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감을 얻기 위해서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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