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에 담긴 자연과 사람… 140년 한국 사진의 역사 한자리에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서울 창동에 개관
사진史 보여주는 전시 등 개관 특별전

서울 도봉구 창동에 검은색 콘크리트로 마감한 정육면체 건물이 들어섰다. 국내 최초의 공공 사진미술관인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다. 카메라 조리개가 열리고 닫히는 형태에서 착안한 독특한 외관으로, 직선을 층층이 쌓은 듯한 외벽은 검정과 회색으로 계속 변화한다. 사진이 빛과 시간을 포착하는 방식을 건축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2019년 건축 설계 공모에서 당선된 오스트리아 야드릭 아키텍투어와 한국의 일구구공 도시건축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사진 매체에 특화된 공립미술관이 지난 29일 개관했다. 2015년 건립 준비를 시작한 지 10년 만이다. 국내에 뮤지엄 한미, 고은사진미술관 등 사진전문 사립미술관이 있지만 공립미술관은 처음이다. 검은색 외피 한쪽을 살짝 들어 올린 듯한 출입구 속으로 들어가면, 높이 10m에 달하는 로비가 열린다. 연면적 7048㎡(2132평),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의 공간은 오로지 사진 전시와 필름 보존에 특화해 설계됐다. 전시장 4곳과 사진 전문 도서 5000여 권을 보유한 포토 라이브러리, 포토 북카페, 암실, 수장고, 교육실 등을 갖췄다.

한정희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장은 “광화문과 경복궁 일대에 집중된 예술 흐름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성을 선보일 수 있는 발판이 서울 동북권에 마련됐다”며 “한국 사진사(史)를 긴 호흡으로 연구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사진 예술 연구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공공 사진미술관으로 자리 잡겠다”고 말했다.
개관전으로 두 개의 특별전이 마련됐다.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은 한국 예술사진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든 정해창·임석제·이형록·조현두·박영숙의 작품을 조명하는 전시다. 미술관은 개관을 준비하면서 한국에 사진술이 도입된 1880년대부터 20세기 말까지 활동한 사진가들을 조사해 2000여 명의 목록을 정리했다. 이를 바탕으로 1920~1990년대 작품과 아카이브 등 총 2만여 건을 수집해 사진가 26명의 컬렉션을 구축했다. ‘광채’는 이렇게 수집한 작품 중 한국 사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다섯 작가의 주요작을 소개한다.


1929년 한국인 최초로 사진 개인전을 연 정해창(1907~1967)의 작품으로 전시의 막이 열린다. 6·25 전쟁 후 도시의 삶과 건설 현장을 리얼리즘과 조형 실험으로 포착한 이형록(1917~2011)의 사진엔 서민들의 삶이 생생히 담겼다. 해방 이후 노동자와 현실을 응시하며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미학을 정립한 임석제(1918~1996), 한국 모더니즘 추상 사진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조현두(1918~2009)로 이어진다. 특히 4번 연속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을 수상한 조현두는 사물과 풍경의 형상을 해체해 추상적인 시각 언어로서 사진을 탐구한 감각이 돋보인다. 전시는 1세대 여성주의 사진가 박영숙(84)의 1950~1960년대 초기작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미술관은 “2015년 건립 계획이 확정된 이후 10년간 축적된 수집과 연구를 기반으로 기획한 첫 전시”라며 “다섯 작가는 1880년대 한국 사진이 시작한 이후 사진이 예술로 입지를 굳힐 수 있도록 독자적인 언어를 구축한 주인공들”이라고 선정 기준을 밝혔다.


미술관의 건립 과정을 담은 또 다른 전시 ‘스토리지 스토리’도 동시에 개막했다. 전시 제목은 미술관이 있는 창동(倉洞), 즉 ‘창고가 있는 동네’라는 지명에서 따왔다. 서동신, 원성원, 정지현, 주용성, 정멜멜, 오주영 6명의 작가가 재해석한 저장소의 개념을 통해 사진의 본질과 역할을 묻는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사진미술관 개관에 이어 올해 11월 뉴미디어 전문 미술관인 서서울미술관이 개관하면, 서울시립미술관은 네트워크형 미술관 체제를 완성하고 여덟 개 분관 시대로 도약한다”고 했다. 두 개관전 모두 10월 12일까지. 관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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