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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 좌도(佐島)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3. 6. 13:56

매화 곁에 돗자리 펴고 누우니… 작은 섬의 봄날은 느긋하여라[박경일기자의 여행]

  • 문화일보
  • 입력 2025-03-06 09:16
  • 업데이트 2025-03-06 09:56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사령부가 있던 한산도의 제승당. 제승당 앞으로 깊이 들어온 만(灣) 안쪽의 푸른 바다가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다. 뒤쪽 바다 가까이 있는 누각이, 이순신 장군이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을 하던’ 바로 그 수루(水樓)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경남 통영 좌도 ‘탐매 기행’

팝콘처럼 백매화 터진 좌도
통영항서 배로 1시간40분 거리
육지와는 다른 우람한 매화 가득

1935년쯤 일본인 부부가 심고
해방뒤 주민들도 곳곳에 씨 뿌려

함께 들르면 좋은 한산도
이순신 학익진 보여주던 문어포
장작지~합포사이 윤슬 풍경 일품

연도교 건너 추봉도로 넘어가면
해수욕장 몽돌들 파도에 ‘차르륵’

좌도·한산도(통영)=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봄나들이의 첫 꽃이라면 매화다.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을까. 그것도 긴 겨울 끝에 피어난 봄꽃이라면. 그중에서도 기대와 설렘 속에 피는 매화는 특별하다. 겨울의 끝에, 바람 끝에 손톱만 한 봄기운만 깃들기만 해도 피어나는 매화는 상징이자 은유다. 매화가 전하는 건 머지않아 봄이 올 것을, 그리하여 길고 어두웠던 겨울이 끝날 것임을 전하는 위로와 희망이다. 화려하기로는 벚꽃이지만, 매화 꽃구경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겨울 추위를 이기고 기특하게 꽃을 피운 매화가 보여 주는 건 ‘감격적 아름다움’이다. 꽃이 ‘감격적’인 건, 매화가 유일하지 않을까.

                                                                           좌도에 핀 매화.



# 매화가 흐드러진 호젓한 섬

해마다 봄이면 매화꽃 피는 명소는 인파로 가득 찬다. 매화축제라고 가보면 꽃보다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개화가 절정일 때는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일대의 도로가 꽉 막혀 정체 중인 차 안에서 몇 시간을 보내는 것쯤은 예사다.

유독 매화에 사람이 몰리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의 첫 꽃이기 때문이다. 매화 개화 시기가 짧다는 것도 행락객이 한꺼번에 몰리는 이유다. 매화 명소가 벚꽃 명소처럼 많지 않다는 점도 있다.

이름난 매화 명소로 꽃구경을 가겠다면, 그것도 가는 날이 주말이나 휴일이라면 인파에 치일 각오쯤은 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는 어떨까. 마을 뒤 언덕이며 집 마당에 매화가 피는 곳인데, 찾아오는 이는커녕 아는 이들도 별로 없는 곳. 돗자리 하나 들고 가서 내키는 대로 꽃구경하다가 꽃향기에 취해서 돌아올 수 있는 곳. 이번 주는 그런 곳으로의 여행이다.

경남 통영에는 좌도(佐島)가 있다. 한산도 옆에 바짝 붙어 있는 작은 섬이다. 섬 이름으로 ‘도울 좌(佐)’를 쓴다. 본래 ‘왼 좌(左)’ 자에서 온 지명이다. 필시 임진왜란 당시 통제영이 있던 한산도나 통영을 중앙에다 놓고 붙인 지명일 터다. 그런데 웬걸, 지도를 보면 좌도는 분명히 통영이나 제승당이 있는 한산도 오른쪽이다. 그러면 좌도가 아니라 ‘우도(右島)’여야 하는 게 아닌가. 갸웃거리다가 짐작한 답이 이렇다.

지도는 보는 방향에 따라 방위가 반대가 된다.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좌도는 ‘한산도의 왼쪽’이 맞다. ‘지도를 거꾸로 본다’는 건,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지도에 좌도는 한산도 오른쪽에 있지만, 한양쯤이나 통제영에 앉아 있는 이가 한산도를 바라본다면 좌도는 제 시선의 왼쪽에 있다. 지도의 시선이 아니라 중앙에서 ‘자기의 시선’으로 좌도라 이름 붙였을 것이란 짐작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섬 이름이 다분히 상징적이다. 이른바 ‘중앙’에서 바라다본 시선으로, 지역이 재단되는 현실은 임진왜란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 완행 배 타고 가는 섬 여행

좌도는 통영에서 뱃길로 11㎞ 남짓 떨어진, 그리 멀지 않은 섬이다. 좌도로 가는 배편은 하루 두 번. 한산농협의 카페리호가 오전 7시에 출항해 용초-호두-죽도-진두-동좌-서좌-비산-화도를 들러서 간다.

여객선은 한산도를 중심에 두고 반시계방향으로 돌며 섬이란 섬은 다 들른다. 그야말로 ‘완행 중의 완행’이다.

좌도에 간다면 일정은 딱 한 가지. 이 방법밖에는 없다. 통영항에서 오전 7시 배를 타고 들어갔다가 오후 3시 35분 배로 나오는 것. 섬 안에는 잘 곳은 고사하고, 식사 한 끼 사 먹을 곳도 없다. 물 한 병, 과자 하나 살 구멍가게도 없다. 그러니 오전 배를 타고 들어갔다가 오후 배로 나오는 것이 좌도에 가는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이다.

이런 ‘드문 배편’이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 드문 배편이 만들어내는 ‘꼼짝없이 섬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섬 여행의 훌륭한 매력이 되기도 한다. 좌도 여행이야말로 그런 대표적인 예다.

배가 좌도에 당도하는 건 오전 8시 40분. 오후에 나가는 배는 오후 3시 35분에 있다. 그러니까 좌도 여행자에게는 ‘섬에서의 꽉 찬 7시간’이 주어진다. 작은 섬에서 하릴없이 느긋하게 보내는 7시간의 경험은, 바쁜 도시의 시간을 살던 사람들에게는 선물과도 같다.

좌도는 말 그대로 ‘손바닥만’ 하다. 섬에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이 빤히 보이는 마을 두 개가 전부다. 이 작은 섬에서의 7시간은 ‘여행에서조차 바빴던’ 일상을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다. 서둘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 좌도에서는 모든 게 느려진다. 걷는 것도, 보는 것도, 말하는 것도….

                         좌도 서좌마을에 만개한 매화. 지난해 봄에 찍은 사진이다. 김상현 작가 제공



# 돗자리와 도시락 들고 가는 꽃놀이

좌도에는 매화나무가 그득하다. 배가 닿는 동좌리 동좌교회 뒤쪽 구릉에는 봄이면 매화가 한가득 피어난다. 희고 깨끗한 꽃이 인상적인 백매다.

좌도의 매화는 육지의 매화농원에서 보는 매화와는 많이 다르다. 육지 매화농원의 매화는 대개 키가 작고, 가지도 낮다. 그에 비해 좌도 매화는 크고 우람하고 거칠다. 매화농원의 매화가 과수목의 느낌이라면, 좌도의 매화는 야생의 기운이 느껴진다.

좌도 매화나무는 늙었다. 평균 수령은 50∼60년 남짓. 숲 안쪽에는 수령 100년이 다 돼가는 노거수도 더러 있다. 노거수에서 피는 매화는 기품 있다. 늙고 거친 가지 끝에서 드문드문 터트린 꽃은, 다닥다닥 꽃을 피우는 매화농원의 젊은 나무들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그윽한 미감이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동좌리에서는 매화를 한 송이도 못 봤다. 그게 열흘 전쯤의 일이다. 양지바른 언덕의 매화나무 가지에 이제 막 꽃망울이 부풀기 시작했을 따름이었다. 음지 쪽의 매화나무에는 아예 꽃눈도 달리지 않았다. 겨울 막바지에 밀어닥친 추위 때문인 듯했다. 며칠 뒤에도 꽃 소식을 들을 수 없을 듯했다. 좌도 얘기를 밀쳐뒀다가 반가운 개화소식을 듣고 나서 내보내는 이유다.

좌도의 매화는 이번 주말부터 볼만하게 피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두 주 남짓. 섬으로 고즈넉한 매화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준비해야 할 건 도시락과 차를 담은 보온병, 그리고 돗자리 하나다. 좌도가 매화 명소로 알려지면, 이런 호젓한 꽃놀이를 더 즐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 그 섬에 100년 된 매화가 있다고?

좌도 매화의 내력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되기 10년 전쯤, 그러니까 1935년 무렵의 얘기. 동좌리 마을 끝에는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군락을 이룬 작은 언덕이 있는데, 언덕 뒤편에 일본인이 살았다. 가와우지(川河)라는 일본인 부부였다. 이들 부부는 마을 부녀자 5명을 고용해 수산물 가공, 유통업을 했다. 한산도 일대뿐만 아니라 거제도까지 손을 뻗쳐 해삼내장, 성게알젓 등을 사들여서 가공해서 출하했다.

부부는 집 뒤의 1000평 남짓 야산을 계단식으로 개간해 매화와 감나무, 벚나무를 심었다. 그 시절 기록에 ‘온 섬을 꽃 속에 묻히게 했다’는 표현을 보면, 꽃나무를 많이도 심었던 모양이었다.

가와우지 부부는 해방 직전 좌도의 집을 섬 주민에게 팔고 떠났는데, 그걸 산 주민이 친분이 있던 섬사람들에게 매화 씨앗을 나눠줬다. 동좌리의 아름드리 매화는 그렇게 주민들이 너도나도 심어 기른 것이다. 동좌교회 뒤편 늙은 매화나무가 가득한 숲에서 가지치기에 한창이던 김종면(67) 씨를 만났다.

“아버지가 일본인에게 땅을 산 이의 아들과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어요. 그 인연으로 매실 씨앗을 나눠 받았지요. 그걸 기른 게 여기 매화밭이에요. 매실 시세가 좋았던 시절에는 제법 소득이 됐는데, 지금은 그저 소일거리지요.”

김 씨는 “동좌리 매화는 꽃이 깨끗하기도 하고, 매실이 다른 곳보다 훨씬 더 굵다”며 자랑했다. 지금이야 그저 아는 사람들끼리 나눠 먹고 있지만, 시세가 좋던 시절에는 수확한 매실을 육지에다 내다 팔았는데 상인들이 매실 크기만 보고 동좌리 매실이라는 걸 알아봐서 가장 먼저 팔렸단다.

동좌리의 매화나무는 거개가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꽃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앉으면 푸른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다. 이만큼 운치 있는 꽃구경이 어디 또 있을까. 아직 피지 않은 매화나무 숲에서 매화가 꽃 구름처럼 피어나는 모습을 상상했다. 좌도에 다녀온 지 열흘쯤 지나 김 씨에게 다시 전화를 넣었다. “많이 피었어요. 이번 주말이면 꽃이 다 필 거 같아요.” 그가 ‘다 핀다’고 말한 게 바로 이번 주말이다.

                                        통영항여객선터미널 근처의 식당에서 받은 도다리쑥국.



# 서좌리에서 본 1.5송이 매화

좌도에는 마을이 두 개다. 섬의 동쪽에 있는 건 동좌리, 섬 서쪽에 있는 건 서좌리다. 동좌리에서 야트막한 고개 하나만 넘으면 서좌리다. 고개는 하나인데 이름은 두 개. 동좌리 사람은 ‘서좌리재’라 하고, 서좌리 사람들은 ‘동좌리재’라고 부른다. 같은 고개를 달리 불러도, 섬 안에 딱 하나뿐인 고개이니 헷갈릴 이유는 없다.

동좌리에서 고개를 올라서자마자 옛 폐교의 흔적과 만난다. 폐교라지만 학교 건물은 진작 사라졌고, 구령대 쪽에 1978년 6월에 세운 ‘충효(忠孝)’라고 쓴 돌 비석만 남았다.

없어진 학교의 개교 때 얘기가 눈물겹다. 좌도 학생들은 한산도가 가까운 서좌리에서 나룻배를 타고 한산초등학교에 다녔다. 그러다가 1950년대 말 통학하는 학생들이 탄 나룻배가 뒤집혀 4명이 죽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한이 맺힌 섬 주민들은 ‘우리도 학교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스스로 학교 부지를 매입하고 통영군청에 드나들어 마침내 1963년 9월 한산초등학교 좌도분교를 개교했다. 학부형은 물론이고 학생들까지 세숫대야로 모래를 담아 나르면서 피땀으로 지어낸 학교였다. 텅 빈 교정에 동백꽃이 빨갛게 피어났다.

고갯마루에서 서좌리로 내려서는 길에서 매화를 봤다. 이쪽의 구릉은 온통 매화나무다. 서좌리 매화는 진도가 좀 더 빠르다. 꽃망울이 잔뜩 부풀어 곧 터질 것만 같았다. 여기서 매화꽃 ‘1.5송이’를 봤다. 한 송이는 활짝 피었고, 다른 한 송이는 반쯤 피어서 1.5송이다.

동좌리에 대면 서좌리 매화가 좀 더 화려하다. 마을 가까운 쪽 구릉에 가지런히 심은 매화나무 군락이 여럿이다. 서좌리 매화는 동좌리 매화와는 기원이 다르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주민들이 경남 하동에서 서른 주의 묘목을 가져다 심은 것이 시작이다. 주민들은 매화나무를 비탈밭에 심거나, 텃밭이나 집 안에 몇 그루씩 심었다. 오래 돌보지 않아 칡덩굴이 감아버린 매화나무도 적잖지만, 꽃구경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 꽃보다 더 감동한 섬의 인심

사실 좌도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꽃보다는 인심이었다. 동좌리 주민들은 ‘꽃 보러 왔다’는 생면부지의 외지인을 반겼다. “아직 꽃이 안 피었을 건데….” 만나는 주민마다 걱정도 해줬다. “어디, 일찍 핀 꽃이 있는지 같이 찾아보자”며 앞장선 이도 있었다.

서좌리에서 매화나무 군락을 묻던 외지인을 다짜고짜 집 안으로 들인 정옥자(71) 씨는 호박죽을 내왔다. 정 씨는 “날이 추워 호박으로 넉넉하게 죽을 끓였는데, 먹어줄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처마 아래 육지에 산다는 딸 내외와 손주 사진을 걸어둔 툇마루에 앉아 먹는 호박죽 맛이 일품이었다. 호박죽을 먹고 있는데, 남편 김대웅(79) 씨가 들어섰다. 자기 집 툇마루에서 밥상을 받은 낯선 외지인을 보고 “누구냐”고 묻더니, 부인 정 씨를 쿡 찔렀다. “죽 말고, 밥도 좀 내와.” 손사래를 치고 인사하고 나서려는데, 김 씨가 삶은 고구마를 안겨줬다. 언제나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밥상을 내주든 그렇지 않든 좌도 주민들이 외지인을 대하는 방식이 대개 이런 듯했다.

동좌도 마을회관에서 만난 백윤일(77) 이장은 배가 떠나기 직전까지도 붙잡고 막걸리를 권했고, “꽃 피거든 또 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좀 더 있다가는 마을 주민들과 고스톱판이라도 벌일 분위기였다.

동좌리에 서좌리까지 좌도 주민을 다 합해도 50명이나 될까. 섬 어디서 어떻게 이들을 만나든 좋은 심성과 환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매화가 피었다면 더 좋겠지만, 꽃이 없는 계절이라도 ‘좌도에 꼭 가보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이 때문이다.

좌도 동좌마을의 폐교된 좌도분교 터. 나룻배로 통학하던 섬마을 아이들 4명이 배가 뒤집혀 익사한 뒤에 주민들이 눈물을 뿌리며 지었다는 분교다.



# 좌도에 간다면, 서둘러서 한산도까지

좌도에 간다면 이웃한 큰 섬 한산도까지 함께 들러보는 게 좋겠다. 좌도행 배가 통영항에서 오전 7시에 뜨니 전날 통영 숙박은 필수. 전날 통영에 좀 일찍 도착한다면, 시간을 쪼개 한산도를 다녀오기를 추천한다. 한산도까지는 배가 자주 있어서 쉽게 다녀올 수 있다.

한산도에는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인 제승당이 있다. 한산도는 또 임진왜란 해전사에서 가장 완벽한 승리인 ‘한산대첩’의 장소다. 한산대첩의 전설적인 전술 ‘학익진’의 현장이기도 하다.

한산도에 가서 제승당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 배에서 내려 제승당까지 이어지는 1㎞ 남짓의 길은 푸른 난대림의 숲이다. 초록의 숲은 계절을 잊게 한다. 제승당에서 인상적인 곳은 단연 ‘수루(水樓)’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하는 ‘한산도가’에서 이순신 장군이 홀로 앉아 있다 애가 끓었다는 바로 그 수루다. 바닷가 야트막한 언덕의 수루에서 보는 바다는 호수인 듯 잔잔했다.

지금부터는 제승당을 뺀 한산도의 매력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여행코스 제안이다. 통영에서 1인 미디어 ‘통영인뉴스’를 운영하는 김상현 작가가 도움말을 줬다. 김 작가는 사라져 가는 섬의 풍경과 음식 이야기를 담은 ‘통영 섬 어무이들의 밥벌이 채록기’와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 등을 썼다.

김 작가가 첫손으로 꼽은 곳은 문어포다. 문어포는 이순신 장군이 조정에서 내려온 사신에게 학익진의 해상훈련을 보여주던 자리. 그만큼 일대의 바다를 내려다보는 조망이 기막히다. 차를 가지고 한산도로 들어가 의항선착장에 차를 대고 문어포를 걸어서 다녀온다. 오가는 길에 삼나무가 도열한 울창한 숲 속을 걷는 재미가 있다.

의항으로 되돌아와서 차를 타고 반시계방향으로 한산도를 돈다. 드라이브 코스에서 풍경이 가장 좋은 곳은 장작지와 합포 사이의 바다다. 햇볕이 바다 물결에 반사돼 반짝이는 윤슬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이렇게 돌면 한산도 남쪽 한산면사무소에 닿는다. 면사무소 주변에 식당이 여럿 있다. 싱싱한 해산물로 끓여내는 해물탕이나 매운탕을 권한다. 김 작가의 추천은 추봉도로 이어진다.

# 망산에 올라 한려수도를 보다

한산도는 추봉도와 다리로 연결돼 있다. 연도교를 넘어 추봉도로 간다. 추봉도는 이웃 섬 용호도와 함께 6·25 전쟁 중에 설치된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무법천지나 다름없는 유혈 폭동사태가 잇따라 발생하자 유엔군사령부는 이른바 ‘악질 포로’들의 분산 수용을 결정한다. 이에 따라 1952년 6월 추봉도에는 9151명의 포로가 수용된다. 모두 친공 성향이 강했던 포로들이었다.

포로수용소가 추봉도 예곡마을과 추원마을에 들어서면서 거기 살던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땅과 집을 잃고 쫓겨났다. 포로 교환으로 포로수용소가 폐쇄되면서 주민들은 3년 만에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진짜 고난은 지금부터였다. 주민들은 주린 배를 움켜잡고 맨손으로 콘크리트를 뜯어내는 5년여의 고된 노동 끝에 포로수용소를 농토로 되돌려낼 수 있었다.

추봉도에서는 몽돌해변인 봉암해수욕장을 권한다. 파도에 밀려왔다가 밀려가며 내는 ‘차르륵’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몽돌 해변이다. 인근의 자그마한 절집 한산사도 들러보는 게 좋겠다.

추봉도에는 망산(望山)이 있다. 망산은 한산도에도, 추봉도에도 있는데 추천하는 건 추봉도 망산이다. 망산 정상에 올라서면 남쪽으로 섬과 바다가 어우러진 한려수도 경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장사도, 대덕도, 죽도, 용호도, 가왕도가 손에 잡힐 듯하고, 멀리 비진도와 매물도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봄날 남쪽 바다로 떠난 여정의 하이라이트로 오래 기억될 풍경이다.



■ 봄의 맛, 도다리쑥국

이즈음 통영에 간다면 놓치지 말고 꼭 맛봐야 하는 게 도다리쑥국이다. ‘도다리의 제철이 봄이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곤 하지만, 도다리쑥국은 여전히 남해안의 대표적인 봄철 별미다. 도다리쑥국의 또 다른 주연인 쑥의 제철은 딱 지금이다. 남도의 섬마을에서 재배한 향긋한 쑥이 이즈음 한창 출하되고 있다. 봄기운이 스며들면서 도다리쑥국에 제법 맛이 들었다. 통영항 주변에는 도다리쑥국 말고도 복국이나 장어탕처럼 몸을 덥힐 수 있는 뜨끈한 음식을 내는 식당 이 많다.